통일을 이룩해 낸 독일에서는 지금 기분좋은 공다툼 논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통일의 기폭제가 됐던 베를린장벽 붕괴 1주년을 맞아 「과연 누가 장벽을 열었는가」를 놓고 역사적인 개방의 공을 차지하려는 다툼이 그 논쟁의 발단이다. 이 논쟁에는 당시의 동독 공산당 서기장 크렌츠의 지시설과 국경수비대원의 자발적 개방설에 실수설마저 등장,불꽃튀는 열전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인데,아직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우리에겐 그 입씨름들조차 부럽기 그지 없다. ◆9일 저녁 우주중계로 KBSㆍTV 뉴스에 등장했던 실직자 크렌츠 전 서기장은 『당시 장벽에 몰린 인파를 강제로 막기보다는 차라리 개방하는 게 「인간적」인 것 같아 개방지시를 내렸던 것』이라고 우리 앵커와의 대담에서 분명히 말했다. 그는 또다른 회견에서도 『상응하는 지시없이 국경이 열렸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말했다는 것. ◆그러나 당시 장벽경비에 나섰던 비밀경찰 슈타시소속이었던 현장 지휘관들은 『당시 당국의 개방명령은 없었지만 여행자유화 소식으로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자 재량으로 장벽의 빗장을 풀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그 지휘관들은 또 심지어 사건이 터진 후에조차 상부로부터 아무런 지시도 명령도 없었다는 주장인 것이다. ◆실수설 주장이란 작년 11월9일 동독공산당에서 새로운 개인여행 및 이민에 관한 시책을 채택,그 다음날부터 발효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중앙위회의에 참석치 못해 발효일을 모르고 있던 당시의 당대변인이 회견에서 실수로 「즉각 발효」라고 말한 것이 언론을 통해 퍼져 결과적으로 역사를 창조하는 구실을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당시 「즉각발효」 뉴스를 들은 시민들은 『당장 문을 열라』고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고,명령여부에 상관없이 수비병들이 문을 열면서 결과적으로 장벽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자발적이었든 실수였든 간에 그 개방사건의 여파로 온 세계의 예상을 뒤엎고 독일 통일이 앞당겨졌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과정을 부러움 속에 지켜본 우리에게는 온갖 설과 주장에도 불구,분단국의 통일이야말로 이심전심 속에 결행되는 역사적 필연이라는 확신만이 더욱 굳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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