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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ㆍ서유럽 통합 아직 멀었다(동구변혁 지금도 계속중:4ㆍ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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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ㆍ서유럽 통합 아직 멀었다(동구변혁 지금도 계속중:4ㆍ끝)

입력
1990.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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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로 베를린장벽 붕괴 1주년/동구지원 논의 잊혀져/“서구 안정위협” 새 장벽/동구,중부유럽 편입… 독ㆍ소 신구축 본격화베를린장벽 붕괴와 독일통일로 이어진 동구권의 대변혁은 분명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동구 민주화와 독일통일은 유럽의 냉전적 정치지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국제질서의 기본논리를 수정케 하고 있다.

장벽붕괴 1년이 지난 지금,이 역사적 변혁의 실체와 방향은 아직 확연히 드러나지 않고 있는 듯한 상황이다. 동구변혁의 드라마에 집중됐던 스포트 라이트가 예기치 않게 돌출한 중동사태와 석유위기에 옮겨진 동안 그 역사성에 대한 관심이 퇴색한 결과다.

최근 동구변혁에 대한 외부세계의 주된 관심은 소련을 비롯한 동구전체의 시장경제 전환진통과 국내의 정치적 갈등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에 따라 「탈공산혁명」의 열기속에서 무성했던 찬사와 지원논의는 잦아들고 있다. 오히려 동구의 「와해」가 서유럽의 안정에 새로운 형태의 위협으로 대두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우려는 서구쪽에서 새로이 동서간 「장벽」을 쌓으려는 움직임으로 표현되고 있다. EC국가들은 최근 소련등 동구권에서 폭주할 것으로 우려되는 이주사태를 막기 위한 규제방안을 비공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베를린장벽 붕괴의 발단이 됐던 동독인들의 서방탈출 러시초기에 이들을 저지하고 있던 것은 체코ㆍ헝가리 등의 국경경비병력 이었다. 그러나 지금 다른 동구인들의 서방이주를 막고 있는 것은 서방국가들의 국경경비대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제는 사라진 「철의 장막」은 오히려 서구인들의 대 동구 인식속에 드리워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동구민주화에 따라 제기된 동구의 「서유럽 편입」은 외형적으로는 진전되고 있다.

지난 6일 유럽회의(Counsil of Europe) 23개 회원국 외무장관들은 헝가리를 24번째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한층 괄목할만한 진전은 이달말 런던에서 열리는 나토총회에 바르샤바조약기구 6개 회원국 대표들이 참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동서유럽 통합」은 형식에 머물고 있다. 헝가리만이 실질적으로 서구에 접목되고 있을 뿐,다른 동구국가들은 아직 서유럽의 바깥에 남겨져 있다.

지난달 28일 로마에서 폐막된 EC 특별정상회담은 서유럽 12개 회원국의 경제통합에만 관심을 쏟았을 뿐이다. 동구권의 경제ㆍ사회재건과,서유럽과의 통합문제는 서유럽 화폐통합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의 와중에 제대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전반적인 경기퇴조와 석유위기 등 경제여건 악화속에서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에겐 동구재건 지원문제는 진정한 관심도 적고,여력도 없는 것이다.

동서냉전 종식에 따른 유럽의 안보구조 개편논의도 현재로서는 혼미한 상태다.

소련의 군사적 위협이 사실상 소멸하고,바르샤바조약기구가 군사동맹체 기능을 상실한 상황은 나토의 개편 또는 성격변화를 당연히 최대 당면과제로 부각시켰었다. 그러나 이 문제 또한 중동사태가 새로운 변수로 작용,논의의 진전을 막고 있다.

나토를 대 유럽 영향력행사의 최대 연결고리로 삼고 있는 미국과 서유럽 보수진영은 나토의 전략변화를 통한 기능유지 주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 나토고수론은 소련의 위협잔존,소련 등 동유럽의 정치적 불안정,그리고 중동사태와 같은 역외로부터의 안보상 위협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유럽은 안보질서 개편과 관련,중요한 2개 국제회의를 앞두고 있다. 오는 19일 파리에서 열리는 34개국 전유럽 안보협력회의(CSCE) 정상회담과 다음달 15일 로마에서 열리는 EC총회다.

소련과 서유럽 국가들은 CSCE의 기능강화에 역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중동위기의 고조와,소련의 정치적 불안정이 강조되고 있는 상황은 CSCE와 EC총회에서의 공동 안보정책 논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독일이 동구변혁의 장래와 유럽질서 개편의 관건을 쥐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은 이미 지난번 로마의 EC 정상회담에서 조기 화폐통합 결정을 주도,「힘」을 과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결정에 반대한 영국외에도 내심 반대한 국가들이 있었으나,독일이 주도하는 대세를 거스르려하지 않은 것이다. 독일이 당초 예상보다 EC통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은 통일독일의 「서유럽동맹」이탈과 대 동구 경사를 우려하는 분위기를 무마,자유로운 운신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와 관련,9일 독일과 소련간의 「우호친선 협력조약」체결은 유럽의 장래에 지대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불가침조약 체결은 양국관계에 새로운 장을 공식 개막하고,냉전청산을 확인한 점에 역사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보다 큰 실질적 의의는 이로써 독소간의 이른바 「신 구축관계」가 본격화된다는 데 있다.

독일은 자세한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이미 통일의 반대급부격인 1백35억마르크 규모의 대소 지원외에도 재정차관 80억마르크와 95억마르크의 수출보증지원 등을 제공했다. 여기에 9일 함께 체결된 경제협력협정을 통해 소련의 유전개발 등에 막대한 자금과 기술을 지원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독 소 관계를 「신 구축」으로 규정하는 것은 이같은 경제적 협력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유럽 안보질서 개편 등에 소련과 이해를 같이한다는 묵시적 합의에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이와 관련,나토고수론자들의 전략변화 구상등은 무의미한 냉전적 발상으로 치부된다.

독일은 나토의 근본적 변화를 의도하고 있고,통일직후의 정리기간이 지나면 공개적으로 나토의 변화를 주장할 것이란 분석이다. 미국이 독일주둔 미군 일부의 단계적 철수를 계획하고 있는 가운데,프랑스군이 내년 1월 전면 철수를 서두르는 것은 변화의 대세를 앞질러 읽은 결과로 풀이되고 있다. 이미 독일은 중동사태와 관련,미국과 미묘한 갈등을 표출하고 있다.

이 「독소 구축」의 테두리안에서 동구권,특히 중부유럽 국가들은 독일의 시혜와 주도에 맡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유럽 국가들이 새로운 「장벽」을 쌓고 있는 상황에서,독일만이 동구변혁을 지원할 태세와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폴란드ㆍ체코 등 중부유럽 국가들은 역사적으로도 독일의 경제권속에서 생존해 왔다. 냉전종식이 통일독일을 중심으로한 중부유럽의 재형성을 가져올 것이란 예상은 유럽질서의 급격한 변화를 바라지 않는 서유럽과 미국의 자세로 인해 오히려 앞당겨 실현되고 있는 느낌이다. 독일과 소련이 역사적인 「우호협력조약」체결을 조용히 치른 것은 이같은 미묘한 상황전개 과정을 다치지 않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베를린=강병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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