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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파는 처녀」/김창열(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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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파는 처녀」/김창열(토요세평)

입력
1990.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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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이런 실망을 거듭해야 하는가­. 8일 판문점의 남북적 실무접촉이 성과 없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자니,이산가족들 심정에 생각이 미친다. 봇물 터지듯이 체육인도 남ㆍ북을 오가고,예술인도 남ㆍ북을 오가는데 정작 마음이 다급할 수 밖에 없는 이산가족들만이 오갈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인가.짐작했던대로,북측은 8일의 남북적 접촉에서도 「꽃파는 처녀」를 들고 나왔다. 우리쪽은 그 문제를 별도의 문화교류 차원에서 다루자는 대안을 제시했으나,저들은 「꽃파는 처녀」가 아니면 고향방문단도 있을 수 없다는 완강한 자세를 보였고,끝내는 「꽃파는 처녀」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다음 실무접촉이나,적십자 본회담도 있을 수 없다고 말을 잘라버렸다. 그것은 사실상 회담의 결렬선언이나 다름이 없다. 또 이산가족들의 재상봉 열망을 빌미로,자기네 주장을 관철하자고 드는 행태는 「인질외교」나 다름없다.

이번 남북적 실무접촉은 남ㆍ북 총리회담의 한 성과로 열린 것이었다. 제1차 총리회담을 마치며,양측은 유엔가입문제를 별도협의하며,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위한 적십자접촉을 촉구키로 합의했었다. 이에 따라 한적은 몇차례 실무접촉을 제의했으나,북적은 이를 마다하다가 11월15일의 접촉날짜를 제시,한적이 이를 앞당길 것을 요구해서 가까스로 이루어진 것이 8일의 판문점 접촉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접촉결과가 그꼴로 나왔으니,총리회담의 의미마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꼭 「꽃파는 처녀」,나아가 북에서 자랑하는 혁명가극의 성격이나 내용이 아니다. 「꽃파는 처녀」가 「피바다」「밀림아 이야기하라」「당의 참된 딸」「금강산의 노래」 등과 더불어 북의 5대 혁명가극에 드는 것이며,김일성 원작인 「불후의 대작」이란 저들의 허풍은 그냥 들어 넘길 수가 있다. 「꽃파는 처녀」를 가지고 「혁명투쟁의 진리를 밝힌 고전적 본보기」라는 저들의 자화자찬에 질겁할 것도 없다. 70년대 평양에서 「피바다」를 관람하고,영화 「꽃파는 처녀」를 감상했을 때의 내 소감도,저들의 허풍은 허풍,자찬은 자찬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꽃파는 처녀」의 서울공연쯤 마다할 것 있겠느냐는 일부의 주장을 수긍못할 것도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꽃파는 처녀」 쯤이 1천만 이산가족의 열망을 가로 막을 수도 있다는 지금까지의 남북대화 방식이다. 덩달아,저쪽이 원하니까 「꽃파는 처녀」를 받아 주어야 하고,저쪽이 반대하니까 유엔에 가입하면 안된다는 투로,한편의 강변과 궤변을 수용해야 한다는 「통일바람」도 마찬가지다.

적십자회담은 지난 20년간 많은 곡절을 겪어왔다. 그중 가장 밝은 국면이 85년의 「고향방문단 및 예술단」 교환이었던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 무렵의 드높았던 재회의 기대가,그만큼 더 큰 실망을 가져 온 것이 오늘의 현실인 것도 사실이다.

그때의 「고향방문단 및 예술단」은 한적 제안인 「방문단」과 북적 제안인 「예술단」을 접목한 것이었다. 그것이 하나의 타협방식임에는 틀림이 없고,당시에는 그로써 이산가족문제의 돌파구를 연듯이 여겨진 것도 사실이지만,지금와서는 오히려 그 타협의 결과가 교착의 원인,또는 구실로 되고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 실망스런 결과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85년의 타협은 접목할 수 없는 것을 접목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이른바 「단계적 접근론」의 반영인 한적의 「방문단」과,북의 「환경조성론」을 반영한 「예술단」을 한데 묶는다는 것이 무리였던 것이다. 더구나 이로 해서 우리측이 그토록 강조해 온 인도주의 원칙을 침식케 한 것,시와 비의 분간을 흐리게 한 것,문제의 주와 종을 혼동케한 것이 이산가족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책임의 일단은 우리쪽 협상자세의 미숙과 무원칙,그리고 가시적 성과를 너무 서둔데 있었다고 해야 옳다.

이와 같은 남북대화 방식의 문제점은 적십자회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총리회담에서 우리측이 제기한 남북교류가 「단계적 접근론」이라면 북이 내놓은 보안법폐지등의 전제조건들은 저들의 「환경조성론」을 반영한다. 적십자회담의 전감에 비추어서는,이들의 접목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를 생각해야 하고,대화의 원칙ㆍ시비ㆍ주종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적십자회담이 지금처럼 정돈상태에 빠진 이상,이산가족 문제는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 길은 이제 총리회담 밖에 없다. 총리회담의 합의와 촉구에 의하여 열렸던 남북적 실무접촉의 결렬은 당연히 다음 회담의 안건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이산가족들의 심정,문제의 심각성과 시급성,그리고 그들의 수적비중을 바로 헤아린다고 하면,마땅히 이산가족 문제의 우선토의를 긴급동의해야 옳을 줄로 안다. 「꽃파는 처녀」는 이와는 별도의 의제로 하건,남ㆍ북 문화회담등 별도의 대화통로를 트건,그것은 별개의 문제다.

거듭 말하지만,이산가족문제는 결코 남북 당국간 대화의 부수적인 과제가 아니다. 그런 뜻에서는 우리 정부가 제시한 의제중 이산가족문제를 인적교류의 한 항목으로 잡은 것은 인식부족의 나타남이 아닐까 한다. 마땅히 이 문제는 「교류」보다 우선하는 「인도」의 문제로 따로 제기했어야 옳은 것이다.

북이 앞세우는 정치ㆍ군사,우리가 앞세우는 교류와 정상회담,이 모든 것보다 앞서는 것이 「인도」임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그런 것을 정상회담만 열리면 다 해결된다는 투로 미룰 수가 있을까. 이산가족문제 하나 못 푸는 남북당국 대화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이산가족 문제야말로 총리회담의 성패,대화 당국자의 속마음을 가리는 시금석이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상임고문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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