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로 베를린장벽 붕괴 1주년/경제낙후ㆍ민주전통 결여/루마니아 구공산세력 재집권… 연일 시위사태/불가리아 현정권 불신팽배… 최악의 생필품난/알바니아 제한개혁 한계노출… 민중혁명 조짐동유럽의 외곽 발칸반도에는 아직도 열기를 잔뜩 머금은 민주변혁의 기운이 폭발직전의 불안한 상태로 팽배해 있다.
개혁의 진도에서 뒤쳐진 이곳 루마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 3국은 내일을 예측하기 힘든 혼미속에서 구체제 청산을 위한 혹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지난 겨울 유혈의 값비싼 대가를 치렀던 루마니아나 집권층내부의 반란만으로 비교적 순탄하게 개혁대열에 합류했던 불가리아나 혼란에 빠져있기는 마찬가지다. 두나라 모두 올해 자유총선에서 얼굴만 다소바뀐 구공산당세력의 재집권을 허용함으로써 과거의 청산에 실패하고 제2변혁의 불씨를 심은 결과이다.
알바니아는 루마니아식의 「유혈민중봉기」나 불가리아식의 「궁정혁명」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위로부터의 매우 제한된 개방ㆍ개혁조치로 변혁의 물결에 대처하고 있지만 밑으로부터 급격히 분출하고 있는 자유화 욕구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채 혁명전야의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
이들 발칸 3국이 유달리 험난한 변혁의 길을 밟고 있는 것은 대체로 동유럽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3가지 내부상황에서 비롯된다.
곧 이들 나라들은 예외없이 낙후된 경제,민주적 시민사회의 전통 결여,체코의 하벨 또는 폴란드의 바웬사와 견줄만한 강력한 반체제 지도자의 부재 등과 같은 불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세가지 상황이 얽여 개혁을 가로막고 있는 발칸 3국에서 올겨울 심각한 위기국면이 전개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루마니아◁
지난 5월 자유총선에서 의석 3분의 2 이상을 차지,사실상 재집권한 과거 공산당세력은 미온적인 개혁자세로 대다수 국민의 불신을 받고 있다. 수도 부쿠레슈티에서는 연일 반정부시위가 벌어지고 파업이 그칠새없이 일어나고 있다. 루마니아정부는 지난 6월 광부들을 동원,반정부 시위를 무차별 진압함으로써 농민당과 자유당 등 원래 허약한 야당세력을 침묵시켰지만 그 결과 서방의 경제원조가 끊겨 극심한 경제난을 자초했다.
지난 1일부터 정부는 화폐(레우)를 75% 평가절하하고 시장가격제를 실시하는 등 경제개혁을 단행했지만 국민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물가는 치솟는데 상점에는 물건이 없고 공장은 원자재가 없어 휴업중이기 때문이다.
야당이 유명무실해진후 학생운동권을 주축으로 「루마니아 레지스탕스」가 조직돼 정부의 인권탄압에 대항하고 있다. 희망적인 현상으로는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한 신당결성 움직임을 들 수 있다.
▷불가리아◁
구공산당인 사회당이 지난 6월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재집권했으나 이후 페트르ㆍ믈라데노프 대통령이 반정부 시위에 대한 무력진압지시와 관련,사임하는 등 국민들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불가리아의 경제난은 루마니아보다도 심각해 양말,레인코트,성냥,연료 등 겨울용품을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형편이며 치즈,설탕,식용유 등 생필품에 대한 배급제가 전국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소련으로부터의 값싼 석유공급이 끊김에 따라 많은 수의 공장이 생산을 중단해 올해 산업생산은 11% 격감했다. 그러나 총 1백10억달러의 외채를 지고 있는 이 나라의 경제가 개선될 가능성은 현재로선 희박하다.
▷알바니아◁
라미즈ㆍ알리아 인민의회 간부회의의장은 7일 무신론 국가정책과 공산당의 지도적 역할을 규정한 헌법조항의 폐기를 검토할 것이라고 발표,개혁ㆍ개방노선을 최초로 공식표명했던 지난 4월 이후 가장 주목할만한 개혁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알리아의장의 이날 발언은 다당제 실시와 같은 전면적인 자유화 개혁방침을 표방한 것으로 해석하기엔 미흡한 것이다.
40여년에 걸친 외교적 고립에서 탈피,CSCE(유럽안보협력회의)가입 등 유럽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하는데 주목적을 둔 알리아의장의 통제된 개혁노선은 빠르게 그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열어둔 개방통로를 통해 자유화물결이 세차게 밀려들어 실질적인 정치민주화를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보수와 개혁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고 있는 듯한 알리아의장의 다음 개혁조치에 따라 알바니아 현 정부의 운명이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김현수기자>김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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