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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의 시비/이장훈 외신부 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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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의 시비/이장훈 외신부 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0.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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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급박하게 돌아가는 한반도 주변정세를 두고 구한말 상황과 신통히도 닮았다는 얘기를 흔히 한다.한소 수교,북한의 대일 접근,한중 관계진전 등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이 놀랄 만한 변화는 전문가들조차 예상치 못한 일인 데다 구한말 아라사ㆍ청ㆍ일ㆍ미국 등이 앞다투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대한제국에 몰려왔던 때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40여 년간 냉전논리 속에서 「빨갱이」의 종주국으로 인식되던 소련과 한국과의 수교는 서울올림픽 이전만 해도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6ㆍ25남침을 사주했고 가까이는 지난 83년 민간항공기인 KAL기를 무참히 격추했던 사실은 아직 우리 국민들의 뇌리 속에 생생히 남아 있다.

그러나 85년 고르바초프 등장 이후 소련은 변신을 시작,급기야는 동북아의 「반공」의 보루인 한국과의 수교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북방외교의 첨병으로 정무협의차 일시귀국한 공로명 초대 주소 대사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일부 대목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한 데가 있다.

그는 6ㆍ25발발과 KAL기 격추사건에 대해 『소련측에 책임을 추궁한 적이 없느냐』는 질문에 『소련이 말로 하지 않더라도 행동으로 보이고 있는 우호적 태도와 조치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대답했다.

처녀지인 소련 주재 초대 대사이자 중차대한 임무를 맡은 외교사절로서 어느 정도 현실을 고려한 것으로 이해하면서도 진실은 언젠가 밝혀져야 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소련은 2차대전 당시 포로로 잡힌 폴란드군 수천명을 카친숲에서 학살한 뒤 이 사건을 나치의 소행이라고 발뺌하다가 폴란드의 끈질긴 진상규명 요구로 결국 최근 이 사건을 시인하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공식사과까지 했다.

구한말 세계 열강의 각축 속에 한반도는 일본에 넘어갔고 우리는 최근에야 일본 왕으로부터 「통석의 념」이란 사과성 발언을 들었으나 국민들의 마음 속엔 아직 앙금이 남아 있다.

마찬가지로 소련이 필요에 의해 우호적 태도를 보인다고 모든 역사적 사건을 「과거지사」이니 그냥 덮어두자고 하는 것이라면 그곳엔 분명 문제가 있다.

역사의 진실은 언젠가는 시시비비가 가려지기 마련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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