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전환 심각한 진통/실업ㆍ인플레 고통 안겨/권위체제 청산엔 성공/민족주의 돌출 갈등… 신안보 질서 과제로오는 9일은 베를린장벽이 무너진지 1주년이 되는 날이다. 냉전의 상징이던 베를린장벽의 붕괴는 독일통일과 동구공산권의 민주변혁이라는 정치적 지각변동을 일으키면서 이미 범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던 냉전질서 해체작업을 가속화,탈냉전을 되돌이킬 수 없는 세계사의 조류로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러나 통독으로 인한 유럽 냉전질서의 소멸이 냉전이후 질서를 자동적으로 보장한 것은 아니며 이러한 의미에서 동구의 변혁은 완결상태가 아닌 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베를린장벽 붕괴 1주년을 계기로 동구권 각국의 어제와 오늘,그리고 미래를 점검해 봄으로써 변화되고 변화돼가는 세계를 조망해본다.<편집자주>편집자주>
89년 11월9일 하오 7시(현지시간). 베를린장벽을 철폐한다는 귄터ㆍ샤보프스키 동독공산당 정치국원겸 대변인의 「돌연한」선언은 지난 45년 이후 동구와 서구로 분할되었던 유럽정치지도의 일대 개편을 알리는 신호였다. 물론 베를린장벽 철폐 이전에도 동구권에서는 변화를 향한 움직임은 있어 왔다. 위로부터의 변혁을 추구한 헝가리의 집권공산당은 이해 10월7일 사회당으로 이름을 바꿈과 동시에 탈공산을 선언했고 이보다 3개월 앞선 7월에는 폴란드에서 밑으로부터의 압력에 따라 자유노조 주도의 비공산연정이 출범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지엽적인 것이었으며 동구권 전체를 뒤흔드는 변혁은 바로 베를린장벽 붕괴이후부터였다.
불가리아는 궁정혁명에 의해,체코는 시민혁명에 의해,그리고 마지막으로 루마니아는 유혈민중혁명에 의해 각각 스탈린주의적 지도부를 교체했다. 동독을 포함한 이들 4개국에서의 정치변혁은 11,12월 등 불과 2개월 사이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졌고 변혁의 심도에 있어 개혁선도국 폴란드와 헝가리를 무색케하는 것이었다.
베를린장벽의 붕괴가 초래한 대사건은 뭐니뭐니 해도 서독의 동독 흡수통합에 따른 분단독일의 통일이다. 독일통일은 미소 양 초강대국에 의해 주도돼왔던 전후 냉전질서가 그 밑바탕으로부터 흔들리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음을 웅변해 주었다. 동구변혁을 주도한 것은 소련이지만 독일통일 과정에서 소련은 「수세적 위치」에 놓였던 것이 사실이다.
소련은 「유럽일가」 틀안에서의 독일통일이라는 당초의 구상을 잠시 접어둔채 통일독일을 나토의 틀안에 묶어두는 선에서 양보를 해야했다. 그러나 바르샤바조약기구가 급속도로 해체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볼때 나토의 영역확대를 의미하는 이러한 안전보장질서는 한시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소련은 소련과 동구,그리고 서구과 미국을 모두 한 울타리로 묶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체제에 따른 집단 안전보장 구도가 탈냉전시대의 질서를 이끌어 가길 희망한다.
이에 반해 미국은 EC통합과 함께 CSCE체제가 구안보질서를 대체할 경우 유럽과의 유대가 약화된다는 판단에서 이 구상에 지극히 미온적이다. 만일 새로운 유럽의 안보질서가 정착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냉전이후의 유럽질서는 약육강식이라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냉전 이전상태로 복귀할 가능성마저 있는 것이다.
독일통일 작업에 가려지긴 했으나 동구 각국은 올 들어 자유총선을 통해 정치변혁을 마무리짓고 제2단계인 경제변혁을 시행중이거나 준비중에 있다.
동구 각국의 정치변혁은 각국의 상황에 따라 그 진도가 다른 것이 사실이다.
후진적인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는 체코와 헝가리처럼 지배세력을 물갈이하는 단계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알바니아를 제외한 이들 동구권국가들 모두가 권위주의적 체제를 해체하는데 성공했고 또 법의 지배와 자유선거라는 동일한 목표를 갖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의 1년은 동구권 각국에 정치적 변혁보다 경제적 변혁이 더욱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알려준 한해였다. 시장경제로의 전환은 동구 각국에 실업과 인플레라는 고통을 안겨주었다.
공산주의 이념이 지배이데올로기의 위치에서 퇴장함으로써 그동안 잠재돼왔던 민족주의와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도 지난 1년간 동구에서 벌어진 중요한 현상중의 하나이다.
베를린장벽의 붕괴에 따른 동구권 변혁은 스탈린주의 체제의 종식과 아울러 동구가 서구와 통합할 수 있는 단서를 마련해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냉전체제가 보장해왔던 「안정」은 새로운 국제질서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관계로 시간이 갈수록 흔들리고 있다.
따라서 시장경제로의 조속한 이행과 민족주의의 적절한 통제,그리고 새로운 안보질서를 창출해야 하는 동구권은 여전히 변혁의 와중속에 있는 것이다.<유동희기자>유동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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