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표류… 야당은 아직 미미/당 대신한 관료조직 경직ㆍ무능/야당역 급진파와 연정 택할듯/개혁싸고 대립증폭땐 신독재 등장 가능성도모스크바의 중심가인 아르바트 거리에서는 최근 소련공산당 당원증이 기념품으로 30달러에 암거래 되고 있다.
한때 1천9백만명이나 됐던 공산당의 당원수는 올해 들어 매달 20∼30만명씩 탈당하는 바람에 그 수가 격감하고 있다.
권력의 상징이던 정치국 역시 매주 모여 정책결정을 하던 과거와는 달리 한달에 한번씩 당의 업무만을 논의할 뿐 내각의 기능은 상실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호칭도 전에는 당서기장임을 강조했었으나 이제는 당서기장을 겸임하고 있어도 결코 대통령 뒤에 당서기장을 붙이지는 않는다.
정치국원이면 당연히 정부의 관료였고 최고회의 대의원이었던 관례가 깨지고 당정 및 입법부가 분리되고 있다.
당의 기간조직인 지방소비예트와 국영기업 등의 세포도 더이상 당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있으며 많은 당료들도 당직을 사직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제 공산당의 권위는 완전히 땅에 떨어진 것이다.
헌법에 규정된 당의 일당독점 조항을 폐기한 이후 나타난 이같은 현상은 당연한 결과일 수 밖에 없으며 다당제로 향한 체제변혁의 과도기적 진통이라 할 수 있다.
고르바초프의 과제는 어쩌면 이런 과도기를 슬기롭게 넘겨 다음 지도자에게 새로운 소련을 물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려 73년간이란 긴 세월동안 길들여진 체제순응 체질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일 것이다.
당의 권력이 정부로 이양됐지만 당의 지시만을 맹종했던 관료사회는 주어진 권한을 집행할 만한 융통성이나 능력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전소 여론조사센터의 최근 정부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소련 국민중 단지 6%만이 정부를 믿고 있으며 50%는 완전히 불신하고 있다.
이같이 대정부 불신감이 팽배해 있는 마당에 정치국을 대신한 대통령위원회도 최근 구벤코 문화부장관의 가세로 개혁의 색깔을 보다 진하게 띠게는 됐지만 정부를 주도하고 장악할 만한 결정권이나 파워를 갖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의회해산권과 비상대권 등을 부여받아 미국이나 프랑스보다 강력한 대통령의 권한을 위임받은 고르바초프는 이론적으로 「행정독재」를 할 수 있으나 중앙권력의 분권화에 따른 정부내 관료집단의 조직적 반발과 독립적 결정권이 부여된 각 공화국 의회 및 지방위원회의 독자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정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여당 또는 야당역할을 하는 급진개혁 세력들은 러시아ㆍ우크라이나공 등의 의회와 모스크바ㆍ레닌그라드시 위원회 등을 장악,연방정부와 배치되는 독자적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세력들은 아직 공산당에 버금가는 전국적 조직을 결성하지 못하고 있는 등 지방적 성격을 띠고있고 조직이나 당원수에서도 걸음마 단계인데다 정책과 이념의 차이로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민주러시아운동」이라는 십여개 정당 및 정치단체의 연합체가 탄생하기는 했으나 그 세력은 미미하기만 하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소련에서는 4백여개의 정당이 생긴것으로 나타났으나 이들 세력들을 주도할 만한 힘있는 야당은 보이지 않고 있다.
고르바초프로서는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힘있는 야당이 등장,여당인 공산당과 정부의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하기를 바라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야당의 공격과 주장을 빌미 삼아 공산당내에 아직도 상존하고 있는 보수세력을 제거하고 급진적 정책을 택하고 있는 야당을 전위세력으로 삼아 자신의 정책을 실험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정치구도는 아직 필요충분조건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으며 야당의 존재가 미약한 상태에서 다당제라기보다는 다원주의하에 소련 정치가 표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또 각 공화국의 민족주의 대두와 확산이 예상된 속도보다 빨리 가고 있으며 경제난으로 인한 압력도 가중되고 있어 고르바초프의 정치구도에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현과도기를 효과적으로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은 옐친의 급진개혁파와 대연정을 하는 길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소련 최대의 러시아공은 지난 5월 옐친의 취임이후 발빠른 개혁으로 주민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고 있으며 소장 엘리트들이 모여들어 강력하면서도 효과적인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소련의 「제2의혁명」은 바로 옐친으로부터 나올지 모른다고 관측하고 있을 정도다.
차기 대통령으로 손꼽히는 옐친은 과감한 추진력과 참신한 인재등용으로 소련정치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와 옐친은 이미 지난번 샤탈린의 경제개혁안 합의로 연정의 실험을 한바 있으나 고르바초프의 온건개혁 세력내의 일부 견제로 더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옐친에게 약점이 있다면 군과 KGB의 지지를 못받고 있으며 자신의 지지세력 역시 아직은 힘이 모자란다는 점이다.
다당제 속에서 일부 야당과의 연립정부가 가장 바람직한 정치형태이지만 아직 발아단계의 야당세력 대신 비록 공산당은 반대하지만 개혁이란 배에는 동참할 수 있는 야당성 급진개혁 세력과의 합작이 최선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만약 개혁에 대한 대립이 증폭된다면 소련 정치는 파국을 면하기 어려우며 이때에는 신독재주의가 재등장할지 모른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지난 1848년 마르크스ㆍ엥겔스가 「공산당선언」을 집필한지 70여년 후에 탄생한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그로부터 또다시 70여년 후 일당독재에 종지부를 찍고 시장경제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역사의 오산일까.<이장훈기자>이장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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