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부족… 스카우트 경쟁 필연/외부제작에 크게 의존 재벌들 개입재촉 우려 높아/기존 방송사 벌써 어수선… 낭비ㆍ프로질 저하 걱정새 민방의 지배주주로 선정된 태영건설이 독자적인 방송운영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방송계의 시각은 매우 부정적이다. 방송과 전혀 무관한 기업,그것도 자금여력이 충분하지 못한 업체가 거대한 설립비용이 소요되는 방송사를 1년이란 짧은 기간에 출범시킨다는 계획은 방송을 알고,운영해본 사람이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눈감고도 짐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태영」은 처음부터 정부의 정책적 지원에 의존해서 방송을 설립하고 운영할 수밖에 없다는 게 방송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새 민방지배주주로 결정되던 날 「태영」의 윤세영 회장은 기존의 방송사와는 달리 소규모 인원만을 채용해 주로 보도기능만 맡고 나머지는 외부제작으로 프로그램을 충당하겠다고 밝혔다. 보도국 기자를 제외한 나머지 인력은 최소화하겠다는 뜻이다.
새 민방은 현재 각 언론사에 있는 기자 일부와 석사학위 이상의 고급인력 1백50명을 확보,이들에게 기존 방송사의 3배 가량에 해당하는 급료를 주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리라는 소문이 방송가에 나돌고 있다.
앵커나 인기MC의 경우도 거액의 출연료를 제의,기존 방송사에서 빼내간다는 소문이다. 이에 따라 방송계에는 정부가 기존방송사의 낭비를 견제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민방을 허용해 놓고 오히려 스스로 낭비를 부채질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벌써 MBC나 KBS내에서는 『늦게 가는 게 값이 높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방송가는 고임금에 대한 기대심리에 말려 있다. 이는 정부가 갑자기 새 민방주체를 선정,무리하게 방송개국을 추진한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
1년 안에 TV방송국을 만들어 방송을 시작하자면,신입사원을 뽑아 교육ㆍ연수를 거쳐 운용하기보다는 단기적 인력확보를 위해 우선 기존방송인을 거액으로 스카우트할 수밖에 없고,이것이 기존방송사에 적잖은 충격과 혼란을 주게되며 전반적인 인력부족은 결과적으로 방송의 질을 떨어뜨리게 되는 것이다.
지난 69년 MBC TV가 개국할 때 KBS와 TBC에서 마치 대탈출을 하듯이 인력이 빠져나가 방송계에 대혼란이 일어났던 때와 같은 일이 되풀이될 것이 분명하다.
특히 KBS의 경우는 3TV인 교육방송이 문교부로 넘어가고 그동안 정부의 홍보로 마치 인력이 남아도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으나 KBS 경영진들의 견해는 정반대다. 3TV나 교육라디오방송 종사인원이 20명 정도에 불과한 데다 모두 1.2TV 제작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MBC 역시 현재 인원에서 몇 십명이 자리를 뜰 경우 당장 제작이 어려워 방송에 차질이 생기게 돼 있다.
더구나 프로그램 제작을 위한 자회사를 설립하고 이에 따른 인력확보를 추진중인 MBC는 새 민방에서 인력을 빼갈 경우 자회사는 간판만 남게 될 수밖에 없다는 자조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다른 업종과 달리 방송은 입사 후 5년 정도 돼야 제작을 맡길 수 있을 만큼 장기훈련이 요구되는 분야이고,그 핵심요원은 현재 방송사에서도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빠져나갈 때 오는 후유증은 방송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방송계의 분석이다. 따라서 급조되는 새 민방은 정부가 말하듯이 방송의 선의적 경쟁에 의한 프로그램 질향상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모한 인력확보 경쟁으로 인한 낭비와 질적인 하락을 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표면상으로 드러나지는 않고 있지만 KBS내 과거 TBC 출신 일부와 MBC의 몇몇 PD들이 움직일 기미를 보여 방송사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있다.
또 태영이 방송과 전혀 무관하고 노하우도 없는 데다 재정적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대재벌의 자본지배를 필연적으로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점이 또다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대재벌 자본의 방송지배 형태는 구체적으로 대기업의 외부제작 개입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분석이 그것이다. 새로 개정된 방송법에 이미 외부제작에 의한 방송이 의무사항으로 돼 있고,이에 따라 태영이 보도ㆍ일부 교양물을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을 외부제작으로 충당하겠다고 공언한 것은 결국 대기업에 의존하겠다는 뜻과 직결된다.
왜냐하면 지난달 「여의도클럽」이 마련한 토론회에서 심현우 제일영상대표가 밝혔듯이 현재 외부제작사의 실정으론 전체 TV방송의 5%로 제작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당연히 대규모 외부제작사 설립이 필요하고 여기엔 대기업이 자금이나 기술면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그중에서도 기존 광고회사나 외부제작사를 갖고 있는 재벌들의 참여가 확실하리라는 전망이다. 이렇게 될 경우 기존의 영세 외부제작자는 경쟁에서 탈락하고 방송사가 주문하는 외부 제작물을 재벌이 독점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뿐 아니라 새 민방으로 늘어나는 광고제작과,유선TV시대의 개막과 함께 쏟아질 프로그램 공급까지도 모두 맡게돼 장차 재벌이 방송관련 산업을 독차지하도록 해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게 학자들의 관측이다. 방송계에서는 『이미 모 재벌그룹 경우는 내부적으로 이 작업을 추진해온 것으로 안다. 방계기업의 H전문가가 이 일의 책임자로 알려지고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더구나 지방사가 독립되면서 지방MBC가 이들 프로그램을 공급받는다면 방송구조 개편에 의한 새 민방은 전국적인 규모로 대기업의 영향 아래 놓이고 KBS의 기간방송이란 기능도 현저히 약화될 것이 분명하다.
자율이 생명인 방송이 이처럼 구조적으로 대자본의 참여에 의해서만이 생존가능한 형태로 개편되고,태영과 같이 객관적으로 방송을 맡기기에 결격사유가 많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는 업체가 방송국 설립주체로 선정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선의의 경쟁에 의한 개선보다는 방송환경을 혼탁하게 만들고 프로그램의 질적 저하와 재벌의 방송독점을 재촉하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게 방송인들의 공통된 의견이다.<이대현 기자>이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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