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농어민후계자협의회 이경해 회장의 자살기도는 매우 충격적이다. 이 회장이 우리 농민을 대표해 우루과이라운드(UR) 농산물협상을 참관중이었을 뿐 아니라 자살기도 장소가 우루과이라운드로 세계의 시선이 집중돼 있는 제네바의 가트본부여서 파장이 더하다.이 회장의 자살기도는 우선 UR 농산물협상이 오는 12월 종료되는 결과로 농산물수입이 전면개방될 경우 파탄을 맞을 수밖에 없게 된 우리 농민들의 절박한 실정과 심경을 세계에 대변하려 한 것임을 충분히 짐작할만하다. 농정부재를 채찍질해야 할 정치까지 실종돼 있는 어려운 상황에서 농민들의 절망감과 울분은 사실 심각한 상황인 것이다.
UR 농산물협상은 진작부터 예고된 것이어서 협상에 나선 당국과 당사자인 농민들간에 충분한 의사소통과 합당한 대책마련이 기필코 이뤄졌어야 했었는데 결과적으로 노력이 미흡해 이같은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어 당국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세계가 교역과 경제교류의 시대여서 어느 나라건 홀로 설 수는 없다. 제각각 남다른 사정과 애로가 있으면서도 가트에 가입하고 UR협상에도 참가하지 않을 수 없음은 누구나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국제간의 협상에는 언제나 국내의 이해당사자들에 대한 충분한 배려와 대책이 앞서야 한다. 그런 자상하고 치밀한 준비과정을 통해 국론을 통일하고 전략을 마련한 뒤라야 비로소 협상에 나서는 게 순서인데,이번의 돌발사건으로 미루어 과연 그런 준비단계를 제대로 가져보기나 했는지 의심스러워지는 것이다.
지난 8월의 제2회 농어민후계자대회가 당국에 의해 서울서 열리지 못하고 사실상 무산됐던 점 등으로 볼 때 그동안 당국의 태도는 말로만 설득과 홍보를 한다고 했지 강압과 일방통행의 정책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살을 기도한 이 회장도 중농이었지만 나날이 피폐해져 가는 버려진 농촌사정으로 울분이 쌓였고,8월대회가 무산된 뒤 단식농성 등으로 앞장서서 농정의 문제점을 지적해왔다고 한다.
어찌보면 우리 농정의 허점과 협상전략 미스를 극명하게 드러낸 이번 사건이 수입개방을 강권하는 강대국 협상대표들에게 어떻게 비쳐질지를 생각하면 착잡한 심경이다. 우리 농촌사정의 절박함에 대한 이해를 하는 계기로 삼기보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라는 즉석 반응을 보이고 있다지 않은가.
사실 UR 농산물협상 파동은 우리만 겪는 고통은 아니다. 이웃 일본을 비롯,EC 등에서도 보조금 삭감문제로 이견이 속출,합의가 어려워 일정이 늦춰질 우려도 있다는 보도이고 보면 국론통일과 협상전략의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지 않을 수 없다.
이 회장의 자살기도는 결국 우리 농민들의 울분의 발로이자 농성과 농민간의 거리감을 여지없이 드러낸 불행한 사건이다. 하루빨리 합리적 대처와 대안있는 설득으로 감정의 격랑으로 빚어질 후유증을 막고,종반에 이른 협상전략에 차질이 없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특히 이런 절박한 문제를 내동댕이친 채 정쟁에만 열중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각성을 거듭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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