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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목의 교훈/임철순 사회부차장(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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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목의 교훈/임철순 사회부차장(메아리)

입력
1990.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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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린다. 미국땅은 넓다. 단풍에 물든 동ㆍ중부에서 비행기로 몇시간 안걸려 넘어온 서부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는 백설이 바람에 휘날린다. 폐가 작은 것이 아쉬울 만큼 공기는 맑고 밤이면 오리온좌를 비롯한 별들이 쏟아져 내릴 것처럼 가깝고 밝다.와이오밍주의 북서쪽에서 몬타나,아이다호주에까지 8천9백여㎢에 미치는 미국 최고의 국립공원. 이미 1872년에 공원으로 지정된 이곳은 미국이 자랑하는 국민휴식처이다. 산림을 누비고 흐르는 맑은 물,솟아오르는 분연이 장관인 열천,바다라고 해야 알맞을 호수. 옐로스톤에서는 아직도 지열이 숨쉰다.

유유히 도로를 가로질러가는 들소와 사슴의 무리도 한가롭다. 먼곳을 바라보면 파란 하늘과 눈덮인 산봉우리,산중턱의 푸른 나무들,누렇게 물든 땅­이 청백록황의 조화가 선명하다.

그러나 그런것들보다 한결 인상적인 것은 눈을 이고 서 있거나 흰눈밭에 쓰러져 있는 수많은 소사목들의 모습이다. 88년의 「붉은여름」에 타죽거나 질식사한 나무들이다.

유례없이 건조했던 그해 여름 옐로스톤에서는 6월 하순부터 자연 발화와 인간의 실수로 크고 작은 산불이 50건 이상 일어나 5개월만인 11월중순 완전히 꺼질때까지 전체면적의 36%가 불에 타거나 그을렸다.

이 엄청난 불을 끄기 위해 8억5천여만원이 투입되고 군대와 미국전역의 배테랑 소방관 등 연인원 3만5천여명이 동원됐으며 헬리콥터로 약품을 품고 48만여ℓ의 물을 뿌렸다. 그 과정에서 헬기조종사 1명이 숨지고 큰사슴 등 5종 4백8마리의 포유동물이 소사했다.

그러나 인간은 불이 번지는 것을 약간 늦추긴 했지만 끝내 속수무책이었으며 불을 꺼준 것은 9월에 처음 내리기 시작한 눈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옐로스톤은 다시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불타고 그을은 숯땅에서 새싹이 돋고 불에 터져나간 나무의 씨앗들이 새로운 생명으로 자라났다.

공원의 안내책자는 1만2천년전 이곳에 식생이 나타난 이후 수천번의 화재가 났다가 저절로 꺼졌으며 이들 화재는 생명의 진행과정으로서 자연의 생성ㆍ소멸법칙은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연은 인간에게 영감을 주는 교사이자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공원관리사무소는 88년의 대화재와 그 이후 새롭게 태어나는 자연의 모습을 자랑하면서 자연의 위대함과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밑둥부터 시커멓게 탔거나 가지가 떨어져 나간채 군더더기없이 수직의 본질만 남은 나무들은 자연 앞에 겸손할 것,군더더기없는 삶을 살 것을 일러주려는 것처럼 쓰러지지 않고 곧게 서 있다.<엘로스톤 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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