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10여일 다녀왔다. 지구반대켠이 BA의 서울런던직항로탓에 16시간의 지척이었다. 영국에서도 변두리라 할 수 있는 북아일랜드와 웨일스지방을 여행한 게 오래 잊고 있던 자연과 풍물의 정취를 새삼 일깨워줘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흔히 해외여행이란 이국의 모습과 인정을 맛보는 재미라지만,기실은 사람됨됨이 웅졸한 탓인지 남들의 사는 모습이 우리를 또렷이 비추는 거울이 되고만다는 평범한 이치를 또한번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눈으로는 남을 보면서 마음속으로는 우리가 더욱 생각키우는 그런 철없는 만각이 있었던 것이다.
영국은 우리의 일기예보처럼 매일 TV화면에 그날의 실업률이 수치로 나타나는 그런 나라였다. 마그나 카르타로 자유의 길을 연 민주전통,근대 산업혁명을 일으켰던 선진국의 원조,해가 지지 않는다고 했던 번영의 제국에도 어느덧 사양의 낙조가 깃든 증좌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자의 눈에는 반드시 그렇게만 비쳐지지는 않았다. 부분취업인구가 전체의 23%인 5백만여명에 이르러 실업률해소가 그 나라의 지상과제이긴 하다지만 매일 TV에 그날의 실업률의 증감을 낱낱이 밝히며 정부당국과 국민이 걱정을 함께하는 자세는 또다른 차원의 문제여서 돋보이기도 했던 것이다.
오늘의 세계에서 과연 우리네 집안처럼 정치가 그렇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야하는 것일까. 해가 지지않던 나라도 이제는 자존심을 버린채 허황한 정치보단 일상의 삶을 훨씬 앞세워 발버둥치는데 우리는 소중한걸 잊고 오늘의 세계 현실을 외면하는 것만 같아 안타깝기도 했던 것이다.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엔 조선경기사양으로 일감을 잃은 거대한 골리앗 크레인이 녹슬고 있었고,세계굴지의 탄광지대 웨일스의 광부촌에는 정적만 깃들고 있었다. 울산 현대조선의 크레인이 세워지기전에는 세계최대를 자랑했다는 그 크레인이 이제는 냉엄한 경제전쟁과 경쟁력상실의 산 증거로 잔해처럼 남아있는 그곳에서는 한편으론 재기의 삽질도 요란함을 볼 수 있었다.
기존기간산업이던 조선과 리넨직조의 사양으로 야기된 불황과 대량실업여파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라와 주정부가 진력한게 해외기업의 유치였고,그같은 노력이 차츰 결실을 맺어 우리 대우전자를 비롯,세계의 56개(미국 27 유럽 19 일본 2 한국 1 기타 7) 대기업들이 그곳에서 가동을 이미 시작했다는 것이다.
노동력의 70%를 흡수했던 석탄산업의 퇴조로 대량실업의 늪에 빠졌던 웨일스도 해외로부터 2백50개 대기업을 유치하는데 성공했다는 데 이중 일본기업이 20개나 된다.
북아일랜드의 인구가 1백50만명이고,웨일스도 2백80만명에 불과함을 생각할때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노대국의 또다른 노력이 실감됐다.
이들이 그처럼 엄청난 해외기업을 유치할 수 있었던 저력과 세일즈 포인트는 과연 무엇일까가 궁금했다. 이같은 의문은 당국자와의 대화,대우전자 현지공장 방문등을 통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벨파스트근교 라덴로산업기지에 자리한 대우전자 현지공장은 4백20명의 현지인을 고용,VCR를 만들어 영국과 동구를 포함한 유럽대륙에 수출하고 있었는데,가동 1년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겼다는 성공담이었다. 그곳 관계자의 말중 인상깊었던 것은 현지 근로자의 명목임금은 우리보다 높지만 국내의 생산력 수준이나 명목외의 과다한 지출을 생각하면 높은 것만도 아니라는 것. 또 92년으로 예정된 EC통합에 따른 현지수출 발판구축의 이점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고보면 EC통합을 앞두고 점차 가열해지는 국제무역전쟁에 따른 지리적 이점과 호기에다 수백년 쌓여온 민주산업사회의 안정된 전통과 현대산업을 지원할 교통ㆍ통신ㆍ인력 등의 짜임새 있는 하부구조가 노대국의 새로운 자산이 되고 있는 셈이다. 법과 도덕을 준수하는 신사의 나라이면서 복지병과 노조병도 앓을 만큼은 앓아본 뒤의 현실 자각도 플러스요인으로 작용하는듯 했다.
우리속담에 「급히 먹은밥에 목이 멘다」「급하면 바늘허리에 실매어 쓸까」라는 경구가 있다. 어찌보면 이제 값싼 노동력만으로 급히 챙겨먹거나 투기로 떼돈을 벌던 시대는 지나간 것 같다.
세계가 정치와 이념의 광풍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면서 보다 안정된 사회와 축적된 전통,실질적인 자세와 기술이 제값을 받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거대한 대세변화를 우리도 형편이 더 어려워지기전에 깨우쳤으면 하고 생각되는 것이다.
여행중 현지서 만난 아일랜드 사람들은 과거의 고통과 현재의 핏줄끼리의 유사한 갈등등으로 어쩐지 한국사람이 낯설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작가 제임스ㆍ조이스와 극작가 사뮈엘ㆍ베케트를 낳은 정신적 전통이 역사깊은 한국과 맥을 같이 할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한국에도 널리 소개된 그 작가들의 작품과 억센 아일리시 정신을 생각하면서,우리도 이제는 바삐 달리느라 미처 잊고 있던 것을 되찾아 건실한 일상으로 차근차근 돌아가는 길이 있을 뿐이라는 건방진 소회가 짧은 여정에서 앙금처럼 남을 뿐이었다.<논설위원>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