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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사업」/박무 경제부차장(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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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사업」/박무 경제부차장(메아리)

입력
1990.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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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명의 종업원을 데리고 서울 장안동에서 조그마한 봉제공장을 하고 있는 오수철(가명ㆍ46세) 사장은 나라 걱정때문에 잠을 못 이룰 때가 많다고 한다. 애국자라고 내세울 것도 없고 정치가도 아닌 오사장이 잠을 설칠 만큼 나라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은 『요즘 돌아가는 나라꼴』이 소규모 봉제공장을 하는 조그만 사업에도 구체적이고 심각한 영향을 미쳐 어려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오사장의 나라걱정은 도둑을 맞으면서 시작돼 종업원들과의 회식사건 이후 심각해졌고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에 회의가 싹트면서 잠을 설치는 단계로까지 발전됐다고 한다. 『도둑사건』은 장안동 공장의 기계를 몽땅 털린 것인데 오사장이 충격을 받은 것은 공장기계를 뜯어서 트럭에 싣고 달아나는 이렇게 노골적이고 대담한 도둑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벼베기해서 야적해 놓은 나락까지 훔쳐가는 세상이라 하지만 공장에 장치해놓은 기계설비를 도둑 맞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예삿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 얼마후에 있었던 종업원들과의 『회식사건』은 20% 봉급인상 방침이 냉소와 야유를 받은 사건이다. 재난이 겹친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연례적으로 하던 봉급인상을 안할 수가 없어서 오히려 큰 맘 먹고 20%의 『대폭』인상을 해주기로 하고 고참직원들과 회식자리를 마련해서 그 방침을 발표했는데 그 자리에서 의외의 반응이 나온 것이다.

술이 좀 취한 직원 하나가 『사장님 제 월급이 50만원인데 20% 인상이면 10만원입니다. 그 10만원이 어떤 돈인지 아십니까. 친구들과 어울려 마시면 하루 저녁 소주값입니다.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해도 하루일당이 5만원입니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봉급을 20% 올려주자면 얼마나 힘이 드는데 비록 취중이라고는 하지만 『하룻저녁 소주값』이라고 면박해 버리니 박수를 받을 것이라던 은근한 기대감이 분노로 변해버리더라는 것이다.

그 후 봉급인상에 기계설비 보충에 이리저리 돈이 많이 들어 연줄을 찾아 은행대출도 부탁해보고 급전도 돌려쓰고 했지만 그동안 『사업』하면서 시달려온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분당아파트에 당첨된 마누라 친구네는 살고 있는 아파트가 2억원에서 4억얼마로 올라 분당에 이사만 가면 집을 팔아 최소한 2억 이상의 현찰을 손에 쥘 수 있다고 하는데 3년전 『이놈의』사업하느라고 집까지 줄이면서 1억원 가까이를 쏟아부었지만 지금 정리하면 현찰로 남는게 2천만원도 안된다고 한다.

오사장은 이제는 만사가 귀찮아 사업할 의욕이 없고 회의만 생긴다고 한다. 경제 돌아가는 꼴이나 정치판의 역겨운 대권싸움,들끓는 범죄속에 문란해터진 어지러운 사회상 같은 걸 생각하면 『이제 무얼 해먹고 사나』하는 막막한 느낌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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