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북방문화정책 왜 없나(사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북방문화정책 왜 없나(사설)

입력
1990.11.03 00:00
0 0

한동안 잠잠했던 대학가에서 지난달 31일 또다시 소동이 벌어졌다. 전국 14개 대학에서 일제히 시도된 북한영화 상영을 둘러싸고 학생과 경찰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됐던 것이다.돌멩이와 화염병 그리고 최루탄이 뒤범벅이 되고,일부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쌓아놓은 바리케이드에 불이 붙어 난장판이 되기도 했다. 대학가에서 시위를 벌이는 학생과 시위를 막으려는 경찰 사이에 공방전이 벌어지는 것은 흔히 보아온 일이었다. 그러나 이날의 공방전은 지금까지 없었던 「북한영화 상영」을 둘러싼 것이어서 대학가에 새로운 문제가 제기됐음을 뜻한다.

이와 비슷한 사건으로 지난해에는 서울의 일부 대학에서 북한의 혁명가극 「피바다」를 공연하려다 경찰의 제지로 실패한 일이 있었다. 북한의 예술작품을 무대로 올린다는 점에서 영화상영도 혁명가극 공연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손쉽게 복사할 수 있는 비디오테이프형태의 영화는 보다 전파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대학가와 운동권에서뿐만 아니라 범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애초에 29개 대학이 참여할 예정이었던 「북한영화 상영」은 지난 26일 서총련이 『북한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는 명분을 내세워 결정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당국은 「공연법에 규정한 정부허가」와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을 들어 상영을 막았다.

적어도 표면상의 명분만으로 본다면 상반된 이 두 입장은 모두 그럴 법한 근거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유럽의 탈냉전에 이어 한반도에서도 긴장완화 움직임이 이제 막 시작되려는 상황 속에서 이런 공방전이 벌어졌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바랍직스럽지 못한 것이 확실하다.

모처럼 시작된 남북대화를 위해서는 법절차의 테두리를 무시함으로써 요란한 공방전을 벌이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설혹 『이해도를 높인다』는 학구적 의도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학생들은 당연히 먼저 법절차를 존중하고 북한의 매체는 원천적으로 정권과 체제의 정당화 도구라는 우려에 대해 합리적인 입장을 밝혔어야 했을 것이다.

우리는 변화해가는 국제적 환경과 정부 자신의 북방정책에 걸맞게 일관성있는 「북방문화정책」을 마련하지 못한 정부당국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북방정책이 우리의 체제적 우위에 대한 자신감을 반영하는 것이라면,그에 걸맞게 북한의 공연물 등 문화적 산물에 대해서도 보다 현실적인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남북대화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서도 일부 학생들의 자중을 촉구하면서,동시에 정부도 한시바삐 분명한 「북방문화정책」을 국민에게 제시하기를 기대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