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랄 만큼 명쾌한 판결이 나왔다. 지난 80년 언론통폐합 때 보안사에 의해 포기,강요당한 지방 MBC주식을 원래주주에게 되돌려주라는 서울지법 남부지원 민사합의4부의 판결이 그것이다.우리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 같기도 한 이 판결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불과 2년 전에 있었던 언론통폐합청문회의 답답했던 과정을 지켜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청산을 한다면서도 똑소리나는 게 별로였던 정치권에 비해 사법부의 이번 처리는 비록 더디긴 했지만 국민의 법감정에는 사실상의 첫 청산조치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어서 감회가 남다를 수가 있는 것이다.
이번 판결이 지닌 가장 큰 의미는 이처럼 언론통폐합 조치에 대해 최초로 불법행위라는 사법적인 결론을 내렸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보안사의 위협사실을 인정하고 원고들이 위해를 두려워한 강박상태에서 체결한 매매계약은 취소되어야 한다고 명백한 이유를 밝힌 것이다.
재판과정에서 돋보인 것은 언론통폐합과 같은 중대한 헌법 및 법률위반행위의 불법성을 인정하며 보인 재판부의 전향적 자세였다. 이번 소송의 공소시효기산일을 5공시절에는 소송이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이유로 국회언론청문회가 열린 88년 12월로 인정한 점이 그것이다. 과거 사법부가 독재권력의 시녀화하거나 지나치게 형식논리에 사로잡혀 본의 아니게 중심을 잃었다는 평판이 없지도 않았던 만큼 이같은 자세전환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이번 판결의 또다른 의미는 정치부재나 사회적 혼란의 와중에서나마 사법부를 비롯,각 분야에서 민주의식과 법 질서가 내밀하게 정착되어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국민에게 주는 점일 것이다. 언론통폐합의 주역들에 대한 엄정한 단죄나 책임추궁은 비록 유야무야로 끝났으나 그로 인해 초래됐던 왜곡된 결과만은 바로 잡아야겠다는 사법적 판단이나 사회적 분위기만으로도 국민들은 신선한 격려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최종심이 확정된 것이 아니어서 아직 절차가 남아 있긴 하나 언론통폐합을 불법행위로 보는 사법적 대세만은 되돌리기가 어려울 것이어서 일파만파의 파급효과를 미칠 것임이 예상된다.
우선 같은 내용의 소송을 제기해놓고 있는 3개 지방MBC 대주주 등에 대한 판결에 영향을 줌은 물론이고 아직 소송을 제기치 않고 있는 방송 및 신문의 옛 주주들의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앞으로 생겨날 소송사태에서 피해를 당했던 원고측이 계속 승소할 경우 불법행위로 초래된 부당한 조치의 취소나 손해배상청구소송행위 등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이번 판결로 언론통폐합에 대한 사법적 청산은 바야흐로 지금부터가 시작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같은 일은 역사에 오점으로 남아 있는 일을 고쳐나가는 것인만큼 국민들도 남다른 관심으로 지켜볼 것이다. 사법부의 노력과 자세에 격려와 기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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