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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멱살/임철순 사회부차장(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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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멱살/임철순 사회부차장(메아리)

입력
1990.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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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의 연작소설 「관촌수필」에는 열차에 탄 미군들이 창밖으로 고수레한 비스킷 따위를 줍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중 한 남자는 무엇인가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캑캑거리며 뱉는다. 미국인들은 오물도 과자같다는 말을 믿고 주워먹었다가 망신을 당하는 것이다.일리노이주 상류층 농촌가정의 화장실 변기에서 나는 처음으로 미국인의 그것을 발견하고 이 소설을 떠올리며 고소했다. 그들이 우리와 하나도 다를바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일까.

코가 크면 무조건 미국놈이었다. 신작로에 먼지를 일으키며 지프를 몰고 가던 코쟁이 중년부부는 아이들이 『헬로 헬로』하고 소리치자 차를 세우더니 먹던 사과를 던져주었다. 그들을 불러놓고도 겁먹은 표정이던 아이들중 숫기좋은 녀석이 사과를 주워 옷에 썩썩 문지르고 먹자 다른 아이들은 한쪽이라도 얻어 먹으려고 아양을 떨었다. 양키들이 차를 타고 지나갈 때 아이들은 주먹밥을 먹이거나 벼를 훑어 뿌리곤 했다.

「은인의 나라」「영원한 혈맹」 미국에 대한 유년시절의 기억은 이밖에도 「미국 국민이 보내준 물건」,밀가루부대에 그려진 한국과 미국의 악수하는 손,학교에서 끓여주던 분유 등 다양하고 선명하다. 그리고 정조가 조선의 몇대왕인지 모르면서 에이브러햄ㆍ링컨이 미국의 16대 대통령이라는 것을 잘 알게 교육을 받아왔다.

지금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가. 배미 숭미에서 연미 친미로,그리고 비미를 거쳐 배미 반미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생각하는 일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멱살을 잡으러 미국에 온다. 또는 미국에 온 김에 미국의 멱살을 잡고 가려 한다.

그러나 미국의 멱살은 쉽게 잡히지 않으며 어느 한 사람의 멱살을 움켜쥐었다고 해서 미국 전체가 흔들리지도 않는다. 미국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는 무용담에는 해소되지 않은 식민의식과 열등감이 배어 있다.

돈많은 우리 유학생들의 허송세월,한국인들이 미국체재중 거뒀다는 성과의 허구,우리 국회의원님들의 치기와 무지를 현지에서 듣는 것은 더욱 고통스러운 일이다. 45∼48년의 해방공간을 연구하는 운동권 출신의 한 여학생은 미국의 멱살을 잡으러 왔다가 미국의 배려와 자료에 의존하고 미국 신세를 질 수 밖에 없는 현실에 갈등을 겪고있었다.

미국의 멱살을 잡으려면 우리는 이제 보다 치열하고 논리적이어야 하며 세계인으로서의 시각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양키 OK」든 「양키 고홈」이든 철지난 감상을 떨쳐 버려야 한다.

밤늦게 기어나온 큼직한 미제 바퀴벌레를 잡아 죽이면서 나는 「미국놈들 믿지마라. 소련놈에 속지마라. 일본놈들 일어선다」는 해방 직후 우리 민중의 말을 다시 생각했다.<프리포트(일리노이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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