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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이 뚫은 사시의 벽(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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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이 뚫은 사시의 벽(사설)

입력
1990.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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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위반죄로 유죄가 확정됐던 서울대 운동권출신 학생이 제32회 사시에 합격했다고 한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들어볼 수 없는 뉴스여서 사회의 점진적 변화를 실감한다. 이번 일은 한때의 어두운 전력을 각고로 딛고 일어선 운동권학생 개인의 영광일 뿐 아니라,그런 젊은이들을 포용하려는 우리 사회의 성숙도가 익어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어서 의미가 있다. 아울러 이번의 낭보가 아직도 참여의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갖가지 차별과 제한에 고통당하고 있는 수많은 운동권 전력의 학생들을 사회가 수용해 사회인으로 복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문제를 다시한번 생각케 한다.우리는 운동권학생들의 전력이 어떤 내용이었던가를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더러 체제나 정권을 부정하고 화염병 폭력을 행사하는 등 실정법을 위반,기존질서를 깨려거나,깼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제적과 복역 등의 호된 응징도 받았고 아울러 사회참여의 길도 막혀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우리 사회의 미래를 짊어질 소중한 자산임을 인정치 않을 수도 없는 것이며 그들의 희생을 언제까지나 묵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찌보면 그동안 양산됐던 운동권 학생들의 존재는 독재와 분배정의의 미흡 등으로 정도를 벗어나 흔들렸던 우리 사회의 또다른 얼굴일 수가 있다. 젊은이 특유의 이상주의가 기성세대와 제도마저 불신하는 성급함에 불을 질러 수많은 똑똑한 젊은이들이 부모와 스승,그리고 사회의 품을 벗어났던 것이다. 5공때 대학의 제적생이 모두 11만7천명에 이르렀다는 당국의 통계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입은 손실을 잘 일깨워준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그 손실을 알면서도 현실에 쫓겨 운동권학생의 단속과 격리에만 급급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젊은 세대의 탈선과 반발에는 분명 기성세대의 무한책임이 따르는 것인데,책임을 챙길 여유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 동안에 버려지다시피한 우리의 운동권 2세들이 겪은 고통과 좌절은 짐작되고도 남는다. 지난 9월 성남에서는 서울대 재학중의 시위 전력 때문에 각종 취직시험에서 6번이나 낙방한 젊은이가 끝내 사회참여의 길이 막힌 것을 비관,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도 있었다.

이번에 사시에 합격한 27세 이흥구군도 그동안 입사시험에선 번번이 전력 때문에 낙방,운명에 정면도전하려는 각오로 사시에 응시하기에 이르렀다는 회고이다. 그런 이군이 자신의 합격보다 우리 사회가 이제는 보안법 위반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풍토가 된 것이 더욱 기쁘다고 말한 것은 의미심장하고 한편으론 우리를 낯 뜨겁게 한다.

혼란을 겪고있긴 하지만 우리 사회도 하루하루가 다르게 성숙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사람들을 얽매었던 체제대결의 광기도 점차 누그러져가는 마당에 그동안 우리가 버려뒀던 소중한 자식들을 챙기고 포용하려는 자세야말로 전향적인 신사고의 발아가 아닌가 기대마저 갖게 하는 것이다. 사회의 포용력이 넓어지는 것과 비례해 운동권출신 학생들이 정상인으로서 사회에 복귀하려는 노력도 배가해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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