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내락” 성문서 방송계 퍼져/경영형태ㆍ운영방식 정부입김 개입설도/명백한 해명없인 「6공 비리」 배제 못할 듯민방설립추진위(위원장 이승윤 부총리)가 31일 지배주주로 「사전내정설」이 나돌았던 태영건설을 선정하는 등 31개 기업을 민방주체로 확정함에 따라 KBS 파행사태ㆍ방송법 날치기통과 등 온갖 우여곡절을 겪어온 방송구조개편 작업의 막이 일단 내리게 됐다.
이로써 한국방송구조는 60년대 국ㆍ민영 혼합,70년대 공ㆍ민영혼합,80년대 공영시대를 거쳐 90년대의 공ㆍ민영 혼합체제로 복귀하게 된 것이다. 10년 주기로 큰 변혁을 겪어온 한국방송계는 특히 지난 80년 「언론통폐합」이라는 정치적 편의에 의한 강제적인 구조변경을 당한 바 있어 민방탄생을 골간으로 하는 이번 구조개편에 대해서도 그 추진배경과 향후 추이에 대한 석연치 않은 시선을 늦추지 않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방송구조개편이 일단락 된 상황이지만 사전내정설 등 민방주체 선정 과정을 둘러싼 무성한 소문과 의혹들이 꼬리를 물고 있어 막을 내린 뒤에도 심각한 후유증을 이미 예고해 놓고 있다.
더구나 사전내정설의 대상기업으로 지목된 태영건설이 지배주주로 선정돼 민방설립 추진위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는 「결과론」과 함께 각종 의혹들이 계속 증폭,후유증의 진폭은 계속 확대될 가능성도 많다.
○…새 민방은 형식상 수도권을 대상으로 하지만 출력을 높일 경우 대전을 포함한 충청일원 등을 모두 가시청권역으로 해 전국 인구의 절반 가량을 커버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민방은 실제로 준 전국방송이 되며,정부방침에 따라 지역민영 TV가 생기면 전국 네트워크의 틀까지 갖출 수 있게 된다.
민방은 출범초기에는 기자재 마련ㆍ인력충원ㆍ프로그램 구입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사용할 것인만큼 초반에는 다소 적자를 보겠지만,그 이후에는 현 광고시장의 확대 추세로 볼 때 5백억원의 순이익이 예상된다는 것이 방송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처럼 막대한 이윤이 보장돼 있기 때문에 민방은 처음부터 「6공 최대의 이권」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참여 기업들이 줄을 선데다 자연 허가권자인 정부의 입김도 강하게 작용했으리라는 추측은 상식.
이런 함수관계 하에서 「사전 내정설」 등의 각종 의혹이 확증만 없다 뿐이지 앞뒤가 맞는 그럴 듯한 논리를 갖추고 있어 정부의 민방주체선정 발표에 개운찮은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민방설립추진위가 민방주체 선정을 위해 막바지 작업에 분주하던 30,31일 방송계에는 민방참여 신청자에 대한 상세한 분석이 담긴 괴문서가 나돌고,몇 가지 유력한 소문들은 거의 「사실」로 퍼져있었다.
괴문서에는 신청기업의 내용과 역사 및 기업주의 개인적 사항까지 적혀 있었으며,민방 지배주주로 선정된 태영건설에는 「내락설이 있다」는 내용까지 적혀있었다.
이와 함께 사전내정설,민방의 동종기업 잠입설,재벌의 뒷돈설 등 유력하게 나도는 의혹들도 이번에 선정발표된 일부 민방 주체들에 관한 것들이어서 향후 정부의 명료한 해명작업이 없을 경우 「6공 최대의 이권」은 「최대의 비리」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되어 있다.
○…한편 민방주체가 확정 발표되기도 전에 방송가에서는 새 민방의 경영형태 및 운영방식에 대해 「정부의 의도」가 그럴싸하게 퍼져있는 실정.
우선 기존방송사들이 방만한 경영과 노조입김 때문에 지나칠 정도로 대정부 비판성향을 보이고 있다는 전제 아래,민방은 강력한 통제력을 가진 소유주에 의해 운영될 것이며 정부도 이를 지원하리라는 얘기. 이 풍문은 민방의 본격 가동시기인 91년 말이나 92년 초가 이른바 「선거정국」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상당한 신빙성을 갖추고 있다.
이에 곁들여 『선거정국에 필요한 정치자금이 5천여 억원에 달할 것인데,이중 30∼40%는 민방 주체들이 조달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또하나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은 민방의 인력운용 스타일은 기존방송과 전혀 다르리라는 후문들이다. 이런 방침은 최병렬 공보처 장관이 사석에서 개인 견해임을 전제로 천명한 바 있어,새로운 인력운영 스타일이 민방에 도입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 내용은 새 민방은 뉴스제작과 편성기능만 갖고 일반 프로그램은 외부제작으로 충당한다는 것. 이 경우 민방의 인력은 편성관련 전문가들 만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므로 기존방송사보다는 훨씬 작은 규모이다.
또 대부분의 사건성 뉴스는 통신 등으로 간단히 처리할 계획이므로 보도국 기자 역시 각 분야별로 석사학위 이상의 전문가,신문사의 전문분야 기자들로 구성하리라는 것.
이처럼 방송계와 공보처 주변을 떠다니는 「민방의 새 운영 스타일」이 사실로 귀착된다면,정부가 민방설립의 「전후」를 치밀한 계획에 따라 주도했다는 설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이와 함께 정부가 그토록 부인했던 「민방주인의 사전내정설」이 현실화될 뿐 아니라 민방의 탄생이 6공비리와 등식화된다는 논리가 성립하게 된다.
언론통폐합의 후유증에서 볼 수 있듯 공익성이 그 어떤 업종보다도 높은 방송 등 언론문제에 있어 정부의 특혜 내지는 자의적 의도가 개입된다면 그 파장은 장기간 우리 사회에 부의 영향을 끼쳐왔다. 이번 민방주체 선정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도 이러한 부의 파장을 줄인다는 차원에서 철저하게 검증되고 해명돼야 한다는 것이 방송계의 일치된 뜻이다.<이영성 기자>이영성>
◇민방추진 일지
▲89년 1월=문공부,국가방송발전제도 연구기구설치 계획안 마련.
▲89년 2월17일=최병렬 문공장관,국회본회의에서 『이제 민간방송설립을 검토할 단계가 됐으며 각계 전문가들로 국가방송 발전 연구위원회를 구성해 검토할 것』이라고 답변.
▲89년 5월=방송제도연구위원회(위원장 김규) 발족.
▲89년 7월3일=방송제도연구위,5개 분과별 위원 및 연구계획 발표.
▲89년 8월23일=방송제도연구위,방송제도개편 5원칙 제시.
▲89년 11월21일=방송제도연구위,문공부에 중간보고서 제출. 현행 공영체제의 공민영 체제전환 및 방송광고공사 폐지 등 건의.
▲90년 2월14일=최병렬 공보처장관,청와대 업무보고에서 민영 TV 방송신설 허용과 케이블 TV 도입 방침 표명.
▲90년 4월2일=방송제도연구위,민영 TV 신설허용 등을 골자로 하는 최종 보고서를 공보처에 제출.
▲90년 5월6일=중소기업중앙회의 민방참여 의사발표 등 민방에 대한 각계의 관심 표출.
▲90년 6월14일=정부,민방TV 허용 등 방송제도 개편안 공식발표.
▲90년 7월7일=여야,방송법 개정안 싸고 대립. 민자당 최재욱 의원,평민당 김영진 의원이 던진 명패에 맞아 부상.
▲90년 7월12일=방송관계법 개정안 국회본회의 상정. MBC,일부 프로그램폐지ㆍ단축 등 항의 표시.
▲90년 7월14일=방송법 국회본회의 통과. 방송사 연대제작거부 돌입.
▲90년 7월16일=방송사 제작 복귀.
▲90년 8월27일=정부,제1차 민방추진실무기획단회의 개최. 자본금 규모 등 결정.
▲90년 9월10일=민방참여설립신청 접수개시(10월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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