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ㆍ공화 당내 공론화 성공 민주 「시간벌기」 일단 달성/계파 감정 더 악화… 2차 대회전 폭발성 잠복/YS “기강확립” 내세워 권한확대 요구할 듯내각제 합의각서 파문으로 폭발 직전까지 치닫던 민자당의 내분사태는 막바지 단계에서 청와대측의 적극적 개입으로 고비를 넘겼다.
당사 출근을 거부해오던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은 지난 29일 김동영 정무1장관을 통한 청와대와의 「대화」 결과에서 수습의 맥을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또 반대편 당사자였던 민정ㆍ공화계 역시 김 대표와 민주계의 응전방식에 맞대응을 계속할 경우 최악의 사태로까지 이를 수 있음을 심각히 인식,대통령 「지시」 형식의 양측 합의를 수용했다.
이번 파동에서 민정ㆍ공화계와 민주계 양측은 피차간에 동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수단을 통해 배수의 힘겨루기를 해왔고,이는 민자당 출범 이후 그간 있어왔던 대소 분규와는 분명한 질적 차이를 갖는 엄청난 폭발성을 지닌 것이었다.
이번 파문은 당 수뇌부인 3인이 내각제 합의에 이어 서명까지 한 문건이 확인됨으로써 김 대표의 당내 지위에 대해 누적돼온 견제기류와,합당의 기본틀에 대한 유지여부의 근본문제들이 뒤엉킨 대회전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따라서 「내각제의 연내 공론화 유보」라는 기존당론을 재확인하고,「국민이 반대할 땐 내각제 개헌이 불가능하다」는 노태우 대통령의 언급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이번의 사태진정은 정면충돌의 시한을 일단 유보하면서,갈등해소를 위해 외생 변수를 상정해둔,어디까지나 휴전이라 해야 할 것이다.
특히 파동과정에서 민주계와 민정ㆍ공화계,더 좁게는 김 대표와 김종필ㆍ박태준 두 최고위원간의 감정의 골은 치유불능상태로 악화됐을 것으로 여겨져 휴전이 깨질 가능성은 상존한다는 지적들이다.
김 대표로서는 더군다나 합의각서의 유출경위에 자신을 겨냥한 공작이 개재돼 있다는 심증을 강하게 갖게 됐다.
이번 파동이 이처럼 계파갈등의 심화 등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긴 했지만 당내갈등의 뿌리였던 내각제문제에 대해 상호 속셈을 남김없이 주고받은 계기가 됐다는 점은 내각제 추진의 향배에 있어 음양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합의서명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내각제 추진을 일방적으로 기피시해올 수 있었던 김 대표는 이에 대한 정당한 설명작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새로운 부담을 안게 됐다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해 김 대표는 내각제의 당내 논의를 억제하기에 분명한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됐으며,이는 그에게 당내 행보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재조정」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케 했을 것이란 관측이다.
합의각서 공개를 계기로 내각제 연내 공론화의 강성기류가 지배하던 민정ㆍ공화계로서는 민주계의 극한 반발을 꺾지 못할 경우 합당의 의미를 날릴 만한 중대국면이 언제든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재인식해야만 했다. 파동과정의 잇단 당정회의나 민정ㆍ공화계의 설득을 주도해온 김윤환 원내총무는 『민자당이 내각제 개헌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김 대표의 앞장이 필수적』이라는 말로 조기공론화론자들의 온건 선회가 어차피 불가피했던 측면을 설명했다.
역으로 이번 파동이 적정선의 「문제이월」로 그칠 수 있었던 것은 이같은 결과들을 상호 대입할 경우 얻어질 이해의 공유대가 도출됐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민정ㆍ공화계는 마치 터부시돼오던 내각제문제를 최소한 당내에서 공론화시킨 성과를 거두었으며,민주계측은 특유의 배수단합을 재과시,내각제 조기공론화 기류를 저지함으로써 시간벌기를 「공식화」시킨 셈이 됐다.
그러나 내각제를 둘러싼 계파간의 본질적 대립은 전혀 해소되지 못한 상태로 계속돼 제2차 대회전의 폭발성은 여전히 잠복하고 있다. 특히 파동의 원인과 전개과정에서 갖게 된 「인식」으로 인해 김 대표가 「당내 기강」 강화를 위한 더 큰 권한을 요구하고 나설 움직임. 때문에 노 대통령의 부담은 갈수록 커갈 수밖에 없으리란 지적들이다.<조재용 기자>조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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