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세 할머니 부시장인구 9천명이라면 한국의 면쯤 되는 규모다. 노르트키르헨은 독일 연방공화국의 수도 본을 둘러싸고 있는 노르트하인ㆍ베스트팔렌주의 한 자그마한 면소재지인 셈이다.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뚱뚱보 시장 요제프ㆍ뷔얼링은 인심좋게 생긴 기민당 소속의 철물공장 사장님이시다. 종업원 50명의 작은 공장으로 자물쇠등을 생산하고 있다 한다.
뷔얼링아저씨는 명색이 시장일뿐 전용으로 쓰는 사무실도 없다. 사실 그는 시 의회의 의장님으로 시장을 겸하고 있다. 그러니까 시장이란 명예직이고,의회에서 선출한 행정관이 실제 행정을 맡아서 한다. 정식 공무원은 8명. 그밖에 65명의 고용직원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쿰대학의 마르틴ㆍ그랄러 교수도 시 의회의 의원님이다. 말하자면 명문대학 교수님이 「내고장」 면의회의 의원이란 얘기다.
노르트키르헨은 학생이 1천명인 세무공무원 학교에 매달려서 먹고사는 고장이다. 농업인구는 10%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 한해 예산은 2천만마르크라니까 96억원 꼴이다. 자체 세수입은 이 가운데 40%에 지나지 않는다. 소위 「재정자립도」가 40%라는 얘기다. 나머지 60%는 연방정부에서 넘겨주는 교부금이나 특정사업 보조금 등으로 메운다.
노르트키헨뿐만 아니라 독일 전체 기초자치단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50%선이다. 그러니까 재정자립도 때문에 지방자치가 어렵다는 식의 얘기는 한국에서나 듣는 소리다.
수도 본에서 서북쪽으로 한시간쯤 달리면 그림엽서에서 보는 것 같은 아름다운 동네가 나타난다. 개울에서 꽥꽥 청둥오리들의 우는 소리가 들리는 휴양ㆍ관광도시 빌시다. 마침 자민당 소속의 베커ㆍ블로니겐 시장이 출타중이라 뚱뚱한 할머니가 인구 2만4천의 49개 마을을 거느린 빌시의 부시장님이라고 인사를 한다. 시라고는 하지만 한국으로 치면 자그마한 읍소재지라고 할 수 있다.
부시장 슈티츠 할머니는 지난해 환갑을 지낸 가정주부다. 『젊어서는 가난해서 대학에 못갔고,일찍이 결혼해서 아들 둘을 뒀다』고 털어놓는다. 이들이 크고 보니 대학에 갈 나이는 지났고,정치에 발을 들여놨다. 기술자로 은퇴한 남편은 67세이고,자신은 집안 내력이 할아버지때부터 사회민주당원이라 그 전통을 이었다.
○각 정당이 오순도순
시 의회의원은 모두 39명. 사민당(19),기민당(15),자민당(3),녹색당(2)의 차례로 돼있다. 그러나 빌시의 살림을 꾸리는 데에는 각당 사이의 협조가 잘 돼 어려움이 없다고 행정관은 설명한다. 『자기주장의 관철을 요구하기 보다는 의회를 통한 협상이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빌시는 동독의 작센주에 있는 한 시와 자매결연을 했다.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읍이다. 자동차 부품을 공동생산해서 납품하는 것 같은 경제적 도움도 주지만,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ㆍ스포츠ㆍ행정 등의 교류를 통한 「인간적 교류」라고 행정관은 설명한다. 철저한 통제사회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보다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삶을 알게 한다는 것이다.
빌시는 자매시 지원을 위해 12만마르크(5천7백60만원)의 예산을 짜놓고 있다. 그러나 통일이후 연방정부로부터의 교부금등 지원이 줄어 시의 예산이 1∼2%쯤 줄 것 같다는 얘기였다.
통일직전까지 서독에서는 약 5백개의 시가 동독쪽과 자매결연을 하고 각종 지원을 했다. 그러니까 연방정부와는 따로 통일을 위해 한몫을 단단히 한 것이다.
○상식이 살아나야
지난 13일부터 9일동안 독일의 나우만재단이 조직한 독일지방자치 시찰(한양대학교 지방자치연구소 공동주관)은 상당히 흥미있는 교훈을 주는 학습여행이었다. 사실은 새로운 교훈을 배웠다기 보다는 우리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상식」을 재확인했다는 쪽이 옳은 말일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지방자치야 말로 민주주의의 뿌리요,지방자치 없이는 민주주의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것을 페터ㆍ슈뢰더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지방정치는 민주주의의 학교다』라고.
지금 한창 문제되고 있는 지방선거에서의 「정당 참여」문제도 「상식」의 선에서 본다면 결코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가 아니다. 적어도 민주사회에서 반대를 무릅쓰고 정당을 배제하는 선거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페터ㆍ슈뢰더에 의하면 정당이 제한없이 활동하고 있는 독일에서도 규모가 작은 자치단체에서는 의원의 절반이상이 무소속이다. 정당을 탁하느냐,무소속을 택하느냐 하는 선택권은 오직 유권자에게 있는 것이다. 그것을 법으로 묶는 것은 헌법에 규정된 정치적 자유권에 정면 도전하는 것이라는 점도 잊어선 안될 것이다.
우리의 정치에는 상식을 짓밟는 몰염치한 「권모술수」가 판을 치고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기만하는 지방자치는 그런 예의 하나다. 「내각제개헌」이라는 몰염치한 밀약도 부도덕한 3당합당의 권모술수극의 일부다.
하루아침에 밀실의 어둠속에서 짜낸 거대여당의 집안싸움에 정치는 어디까지나 떳떳해야 된다는 또하나의 상식을 되씹게 된다.<논설위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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