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돌아가고 있는 민자당 내부사정이 말씀이 아니다. 딱하고 한심스러운 지경을 지나 이젠 어쩐지 불길한 예감마저 든다.3당통합으로 민자당이 출범할 당시부터 많은 식자들은 민자당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으리라는 것을 예견할 수 있었지만 구국차원에서의 통합임을 강조하는 그들의 각오를 들으면서 국민의 눈을 의식해서라도 「추잡한 정치」만은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민자당의 내분은 골이 깊어져가고 있으며 그 내분의 동기와 원인이 계파간 주도권 싸움이라는 것이 분명해짐에 따라 민자당에 대해 국민이 가졌던 일련의 기대는 실망과 노여움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중이다.
오늘날과 같이 안팎이 극도로 어지러운 마당에 과연 민자당이 개헌문제를 둘러싼 파벌싸움이나 벌이고 있어야 할 것인지 그들 스스로 판단해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줄로 안다. 지난 5월에는 노 정권 자체가 현시국을 「총체적 난국」이라고 규정한 바 있고 얼마 전에는 각종 범죄에 대한 선전포고까지 한 주제에 당면한 정치회복,민생안정,치안확보 등 산적한 과제들을 뒤로 미뤄둔 채 파벌싸움을 벌이고 있으니 그들이 정말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정치인들인지 묻고 싶다.
내각제개헌 문제를 놓고 민자당이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들게 된 경위를 살펴보면 한심한 마음은 한층 더해진다. 연내 공론화 유보라는 당론을 재확인한 지 얼마되지도 않아서 당수뇌들이 서명한 「내각제개헌 합의문」이라는 것이 터져나왔다.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합의문의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중요한 보안사안이어야 할 비밀문서가 쉽게 밖으로 새나올 수 있는 민자당의 해이된 기강상태와 조직의 허술함이 집권당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불신과 불안 쪽으로 돌려 놓는다. 비밀이 지켜지지 않았던 이유는 우선 차치하고서라도 그러한 당내 비밀을 폭로해서까지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무서운 집권력에의 집착심이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누가 보더라도 내각제개헌 합의문의 폭로는 개헌에 유보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에게 멍에를 씌워 개헌작업에 앞장서게 만들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비친다. 그리고 그같은 전략은 곧 「김영삼 대통령후보」의 현실화를 사전에 철저히 봉쇄하기 위한 것이며 과거의 집권세력이 계속 대권의 본줄기를 거머쥐어야 하겠다는 집권의욕의 강력한 표시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겹겹이 싸인 나라 안팎의 중대사들을 외면한 채 개헌논의를 구실삼아 도당적 이해싸움이나 일삼고 집권욕이나 노골적으로 내비치는 것이 지금 이 시기에 집권여당이 취해야 할 자세인지 여당정치인들은 한번 자문자성해야 할 것이다.
정당이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정치집단에 불과하다. 아무리 계파간 합의사항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국민들의 원하는 바와 일치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파기되어야 하고 궤도수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민자당의 소승적 계파싸움은 당장 지양되어야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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