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파간 신뢰 치명상… 뿌리 “흔들”/유출책임보다 합의이행에 더 비중 민정계/YS,박 총장 면담도 거절ㆍ계파단속 민주계민자당 창당전당대회 직전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 세 최고위원이 내각제 개헌을 추진키로 합의ㆍ서명한 「비밀각서」가 유출,공개된 사건은 집권당의 근저를 흔드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박준병 총장은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김영삼 대표에게 전해줄 각서 부본을 일시 분실했었고 이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자당은 각서가 공개된 마당에 유출경위와 책임추궁도 문제지만 내각제 개헌문제를 이제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문제가 당장의 현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여권핵심인사들은 이날 하오 삼청동 안가에서 긴급모임을 통해 수습책과 향후 정국운영을 논의,당3역이 세 최고위원을 찾아가 전후과정을 설명하고 「건의」를 하기로 결정했으나 근본적 수습책이 없는 탓에 당분간 표류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삼청동 안가 회동의 결정에 따라 김윤환 총무는 박태준 최고위원을,최각규 정책위의장은 이날 밤 김종필 최고위원을 찾아가 「안가회동 결정」을 설명했으나 김영삼 대표를 담당한 박준병 사무총장은 면담에 실패.
박 총장은 이날 밤 9시께 상도동 자택으로 김 대표를 찾아갔으나 김 대표가 『특별히 만나 할 얘기가 없다』며 면담을 거절.
박 총장은 김 대표의 전갈을 현관에서 전해듣고 『종일 만나뵈려고 했는데…』라며 김 대표의 「문전박대」에 안쓰러운 표정이 역연. 그후 박 총장은 청구동으로 김 최고위원을 찾아가 1시간20분 동안 있었으나 여전히 침울한 안색.
그러나 김 대표의 한 측근은 『김 대표는 박 총장이 기자들에게 각서의 유출경위를 설명한 부분에 상당한 의문점을 표명했다』며 『김 대표는 이번 파문이 박 총장의 차원을 넘어선 조직적 움직임의 결과라는 심증을 굳히고 있다』고 김 대표의 「불편」함을 전달.
○…이날 민자당의 공식회의 대신 계보별로 모임을 갖고 대책을 논의하느라 여전히 두서없는 모습.
이날 박 총장은 김윤환 총무와 함께 박태준 최고위원방에서 소위 「민정계의 대책」을 숙의한 뒤 기자실로 내려가 분실경위를 밝히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언급.
박 최고위원은 『누구의 책임문제가 아니라 약속이 있었으면 지키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 유출경위보다는 내각제 합의이행에 비중을 두는 자세.
그는 『청와대 4인회동 때도 내각제 얘기가 나오면 「서명까지 마친 일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분실이니 유출이니 하는 것은 문제도 되지 않았다』고 설명.
박 최고위원은 비밀각서에 대한 도덕성문제에 언급,『정치판에 하도 앞뒤 안맞는 일이 많아서 각서까지 쓴 게 불행이라면 불행이지만,일종의 계약문서인데 이제와서 안지키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문제가 아니냐』며 문제의 초점을 내각제 추진 쪽으로 겨냥.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은 이날 당사에 출근했으나 굳은 표정으로 자파의 황병태 의원 등과 얘기를 나눈 후 일찌감치 당사를 떠나는 것으로 불편한 심기를 간접 표출.
김 대표는 그동안 내각제 합의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민주계 의원들의 반발이 거세자 이른 아침 이들을 전화로 불러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측근의원들을 보내 자파 의원들을 만나게 했다는 것.
민주계는 김 대표가 각서에 서명까지 하고 난 뒤 부인함으로써 입은 도덕성의 상처를 이날 「각서분실」의 진상이 공개됨에 따라 상황이 바뀌고 있다고 보는 분위기.
특히 민주계는 박 총장이 각서를 분실하고 나서 청와대에도,김 대표에게도 보고하지 않고 5개월 이상 방치했다는 사실을 순수한 사고로 보지 않고 의도가 개재됐음을 은연중 강조.
민주계는 『대통령까지 사인한 비밀문서를 김 대표가 부인했던 것은 3자간의 신의문제였다』며 오히려 합의문을 간수못한 박 총장 등 민정계는 물론이고 합의사실을 흘렸던 공화계에도 책임의 일단을 돌리기도.
김 대표의 향후 행보와 관련,황병태 의원은 『김 대표에게 더이상 할말이 없다』고 전제,『노 대통령에게 일이 넘겨졌다』고 주장. 그는 『김 대표가 야당통합 때 내각제에 마음이 있었지만 박철언 당시 정무1장관이 내각제 발설을 하면서 야당으로부터 영구집권의 음모라는 비난을 받고서는 문제가 있다고 느낀 것 같다』고 설명.
김 대표 측근들은 청와대회동에서 다짐한 「연내 내각제 공론화 유보방침」을 고수할 것이나 합의각서 유출로 인한 불이익이 자신에게 떨어질 경우 비장한 결심을 각오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김 대표 주변분위기 및 당 분위기를 묶어 민주계는 『이제 사건이 정치인들의 의지를 초월한 상황』이라고 요약.
○…김종필 최고위원은 이날 당사에 나와 당3역을 만났으나 이 사건에 대해 함구.
그러나 내각제문제에 관한 한 일관된 당위론을 주장해 왔던 공화계는 내각제 개헌의지를 적극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입장.
김용환 의원은 지난 23일 황병태 의원에게 각서 사본을 보여주면서 내각제 조기공론화를 촉구했다는 것인데,공화계의 주요 의원들에겐 「각서 존재」를 확인시켜 주었다는 후문.
○…당3역과 서동권 안기부장ㆍ노재봉 대통령비서실장ㆍ최창윤 청와대정무수석 등은 이날 하오 서울시내 모처에서 긴급회동,각서 파문대책을 논의.
당초 이 자리에는 김동영 정무1장관도 참석대상이었으나 김 장관이 지역구(거창)에 머무르고 있어 불참,공교롭게도 민정ㆍ공화계만 참석했으며 따라서 회의내용도 「걱정」을 함께하는 수준을 넘지 못했으리라는 추측.
회의 후 최각규 정책위의장은 『새로운 정치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일반적인 얘기만 나눴다』면서 『세 최고위원이 계시는데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느냐』고 언급.<신효섭 기자>신효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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