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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봉의 아픔/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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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봉의 아픔/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0.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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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을 다녀온 강영훈 총리가 구설수에 올랐다. 평양에서 남모르게 여동생을 만난 것,돌아와서도 이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이 공인답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일로 총리는 공개로 사과까지 했다.강총리를 향한 여론의 지적은 백번 옳다. 느닷없이 상봉을 주선한 북쪽짓이 경위에 어긋난 것은 사실이지만,총리로서의 처신을 좀 달리할 수도 있었으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45년만에 동생을 만나고 나서,총리가 흘렸다는 소회를 더 착잡한 심정으로 듣는다. 총리보다 4살 아래인 동생이,열살이나 더 늙어보여,마음이 서글프더라고 한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상봉의 아픔」이다.

내 친궁에도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가 있다. 우리 정부의 이름난 고관이다가,지금 외국에 살고 있는 그는,한두해전 평양을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그때 혹시나 해서,어려서 헤어진 여동생의 이름과 예전 주소를 일러두었더니,여행이 끝날 무렵이 돼서 느닷없이 호텔로 동생이 왔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동생을 만나본 그의 술회도 강총리와 비슷하다. 호텔별실에 들어서면서,웬 할머니인가 했더니,그것이 동생이더라는 것이다. 50대 초반인 동생이 60후반의 노파같더라는 얘기다. 그리고 광산에서 일한다는 동생의 거칠어진 손­. 결혼했느냐,애가 몇이냐,남편 성씨가 무엇이냐 했더니,조씨라고 해서,다시 「나라 조씨」냐 물었더니,『오빠,나 글을 못배웠어!』하면서 매달려 울더라는 것이다.

이 정경을 말할적마다 그는 60이 다된 얼굴을 눈물로 적신다.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이런 말을 거듭 뇌며 눈물 짓는다. 그의 말 언외에 「얼마나 핍박을 받았으면…」하는 뜻이 들어 있다. 나 때문에,남쪽에서 벼슬을 한 나 때문에­ 그런 뜻으로도 들린다. 이런 것이 「상봉의 아픔」이다.

전 원산농대 강사인 재일교포 이우홍씨가 쓴 「가난의 공화국」과 「어둠의 공화국」은,북한은 66∼81년에 재차 주민재등록사업을 진행했으며,그에 따라 모든 주민이 핵심계층(13개 성분) 동요분자(감시대상=27개 성분) 적대분자(특별감시대상=11개 성분)로 분류됐음을 밝히고 있다. 이들은 각각 겉과 속이 다 붉으냐에 따라 「토마토족」「사과족」「포도족」이라 불린다는 것이다. 저자는 안내원이 지녔던 책자에서 이를 확인했고,그 책자에서 베낀 성분분류표를 옮겨 놓고 있다. 그 표를 보면 월남자가족을 다시 3분류해서,월남가족②(남조선에 가서 노동자 농민이 된 자의 가족) 월남가족③(핵심계층이었으나… 월남한 자의 가족)은 「감시대상」으로,월남가족①(부농ㆍ지주 친일ㆍ친미주의자로… 월남한 자의 가족)은 「특별감시대상으로 구분하고 있다. 월북자의 분류도 월남가족과 같은 「특별감시대상」이다.

이로써 본다면,북에 있는 이산가족은 월남ㆍ월북 가릴 것 없이,모두가 「특별감시대상」인 셈이다. 이들의 처지가 어떤 것일지는,그 분류표에서 이들이 말살대상이라고 할 「반혁명분자」(남로당등 숙청된 자의 가족)와 같은 범주에 들어 있는 사실,북의 스탈린식 감시체제와 살림형편에 비추어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강총리나,앞의 내 친구가 겪었던 「상봉의 아픔」은 다분히 이런 사정에 연유한다. 이산가족문제에 소극적인 북의 자세도 것으로 설명될 수가 있다.

이런 사정을 남의 이산가족들은 익히 짐작한다. 북의 혈육들이 겪을 핍박과 고초는 그들이 떨치지 못하는 악몽이나 같다. 민족대교류의 방북신청이 생각보다 적었던 까닭중의 하나가 이것이다.

「이산의 아픔」은 이래서 더 길고 뼈저리다.

나는 이같은 이산가족들의 쓰라린 심정을 당자가 아닌 사람들이 얼마나 이해하는지를 의심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남북대화를 관장하는 당국자들을 볼적에 더욱 그러하다. 강총리를 비롯해서,지난번 평양길에 혈육을 만난 사람들의 잘못도,그들의 처신이 아니라,이산가족들의 아픔을,그들 자리에 걸맞게,우리 대화전략에 제대로 반영못했다는 데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북이 앞세우는 정치ㆍ군사,우리가 앞세우는 교류와 남북 정상회담,이 모든 것보다 이산가족문제를 더 앞세웠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총리 이하는 85년 남북 고향방문단을 보면 이산가족들의 착잡했던 마음을 상기해 주기를 바라고 싶다. 그때 그들이 느낀 것은 남북의 교섭,방북자 선정과정을 통한 소외였다. 그리고 「피바다」「꽃파는 처녀」 등 공연문제로 다음 고향방문단 사업이 결렬된데 대한 그들의 반응도 매우 착잡했던 것이다.

그 무렵에 만난,이북 5도민을 대변할만한 자리에 있는 어떤 사람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정부가 「피바다」를 용납해서 원칙을 저버리는 것은 원치 않는다. 40년 아픔을 참았으니,더 기다리겠다. 다만 연로한 부노들이 망향의 한을 품고 하나 둘 별세하는 것이 가슴 아프다』라고 했었다. 이런 심정으로 오늘의 남북대화를 지켜보는 사람들이,우리 주변에 적어도 5백만은 있다. 그들의 여론은 지금 남북대화에 어느 만큼이나 반영되고 있는 것일까.

이제 새달 들면,이산가족문제를 다룰 적십자 실무회담이 열린다. 우리측 독촉에 못이겨 회담에 응한 북측은,벌써부터 이 문제와 「꽃파는 처녀」등의 공연문제를 다시 관련시킬 것임과 이산가족문제가 지엽말단임을 공언하고 있다(한국일보 25일자 3면ㆍ한겨레신문 26일자 1ㆍ2면 등). 이에 대한 우리측 생각은 어떤 것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산가족문제는 결코 남북 당국간 대화의 부수적인 과제가 아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해결이 시급한 인도ㆍ인권의 문제다. 공연물따위 변죽으로 훼방받을 수는 없다. 공연물교환은,이번 범민족 음악회나 통일축구처럼,따로 떼어내 성사시키면 그만이지,그것으로 이산가족 재회를 가로막게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우리 당국에 묻고 싶다. 이산가족문제는 차라리 이산가족들에게 맡기면 어떤가. 대북교섭의 주역일랑 그들에게 맡기고,당국은 지원만 하면 어떠냐는 것이다.

「이산의 아픔」은 남북총리가 만나서 인사치레로 제기할 성질의 의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산가족문제가 해결안되면 총리회담도 어려워진다는,바꿔말하면 5백만 이산가족이 남북대화의 장기쪽일 수만은 없다는 정도의 인식이 우리 정부쪽에 먼저 있어야 하리라고,나는 생각한다.<상임고문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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