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을 다녀온 지가 일주일을 넘어 8일이 됐다. 그러나 지금도 평양에 있는 것만 같다. 매일매일 시리즈를 쓰며 평양에서의 기억을 되살린 탓도 있겠지만,초행의 평양에서 받은 인상이 잊을 수 없게 뇌리에 각인되어있기 때문일 게다.마음이 무겁기는 지난 19일 판문점을 넘어올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시리즈를 끝내는 아쉬움이 현장에서 확인한 「분단의 비극」에 미치면 이내 서글퍼진다.
시리즈가 계속되는 동안의 독자관심은 놀랄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평양의 오늘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고마움의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있는 그대로」를 좀더 많이 알려줄 것을 간곡히 주문했다.
기자는 여기에서 북한의 실상을 알려하는 우리 국민들의 엄청난 관심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평양은 먼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평양은 먼 곳이었다.
시리즈를 쓰면서 항상 염두에 두었던 것은 본대로 느낀대로,있는 사실을 그대로 써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는 지금도 같은 마음가짐이다.
그래서인지 「대혼란」이라든가,「큰 착각」,「2중성」 등의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
기자의 시각이 그러한만큼 어쩔 도리가 없다. 기자가 전달한 사실에 대해 독자들이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북한을 얘기할 때 있는 그대로를 가감없이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한 점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
더러는 기자의 이러한 사실 전달을 「시대착오적 냉전의 논리」라든가,「반통일적 사고의 발상」으로까지 지적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도 기자는 이상적이거나 낭만적인 통일에의 접근자세는 남북 관계개선에 하등의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섣부른 기대감은 이에 상응하는 실망을 가져올 것인 만큼,45년 분단의 한은 뜨거운 심장과 차가운 두뇌로 풀어야 할 것이다.
북한사람들은 우리 시각에서 본 그들 사회의 문제점이나 체제의 폐쇄성을 지적할 때면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정작 유념해야 될 부분은 우리의 자(척)로 분단의 저쪽을 재단하는 것에 대한 그들의 입장이다. 노골적인 반발은 물론 적대감까지를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3박4일,좀더 정확히 76시간의 머무름이었다. 짧다고들 하지만 기자는 45년 분단이 쌓아놓은 농축된 단면을 보고 또 느끼고 왔다.
평양행을 앞두고 서울에서 가졌던 기대와 상념이 무참히 깨질 때마다 공허한 느낌을 되풀이해야만 했다. 이러한 아픔은 시리즈를 끝내는 지금에도 마찬가지이다.
포용력 있는 신축적인 자세로 북한에 접근하되,분단의 저쪽에 있는 냉엄한 현실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분단 45년은 바로 오늘의 한이다.
서울에 돌아온 후,강영훈 총리에 대한 「주석각하」 호칭 시비는 기자를 몹시 당혹스럽게 만든 또다른 사건이었다.
북쪽의 연형묵 총리까지도 청와대 면담 때 「대통령각하」를 사용했던 「의전적 용어」가 말썽을 빚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북대화는 옳든 그르든,좋든 싫든 간에 상대의 실체를 인정하는 선상에서 출발해야 한다. 낭만적 환상이 금기이듯,감정적 접근 또한 금물이다.
기사를 쓰는 이 순간에도 『우리는 행복합네다』 『정말로 부러울 것이 없습네다』를 연발하는 북한동포들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양복 정장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던 대동강변의 강태공할아버지,치마저고리에 김일성 배지를 달고 싸리비를 들고 나온 할머니의 모습.
기자는 북한에서 마주치는 많은 인사들의 두 손을 일부러 꽉잡아보곤 했다. 여인의 경우는 살포시 안아도 봤다.
모두가 따뜻한 체온이 흐르고 있었다.
「통일」 「통일」. 「행복」 「행복」. 「관제허상」의 창출을 위한 교조적인 용어만 없다면 한겨레 한민족이었다.
남북을 갈라놓고 있는 이데올로기와 유일체제 확립을 위한 획일성의 상흔만 빼버리면 평양사람들은 그렇게 순박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자는 노동신문을 방문했을 때 『그놈의 사상성만 빼면 당신들이야말로 무공해 식품과 같다』고 말해주었다.
무엇이,그리고 누가 북한주민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에 생각이 미치면 가슴이 저며 온다.
시리즈가 시작될 때 북한축구팀 일행이 서울에 왔다. 북한에서 온 이들이 이제 그렇게 낯설지 않은 것은 기자만의 느낌이 아닐 것이다. 북한기자들은 한국일보 기자집을 찾아 심야정담을 나누기도 했다.
세월이 가고 자주 만나다 보면 모두가 이렇게 돼 갈 것이다.
그때가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처음엔 이상스럽기만 했던 일들도 그러려니하고 넘어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올 때 기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옛날의 이 기사」를 다시 읽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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