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ㆍ26」 사태가 일어난지도 26일로 벌써 12년을 맞는다. 지나간 11년간의 세월을 되돌아보면 세상이 많이도 변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특히 그동안의 정치일정을 되짚어 보면 많은 변혁을 거듭했음에 놀라게 된다. 두차례의 헌법개정이 있었고 3차례의 국회의원선거를 치렀으며 대통령선거도 3번을 한셈이 되었다.
두차례의 개헌중 첫번째는 5공화국 출범을 위한 것이었고 두번째는 6공화국을 탄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총선은 「제도야당」이라는 말을 유행시켰던 11대 국회선거,신야당의 돌풍을 몰고왔던 12대선거,그리고 4당체제를 낳았던 13대의원선거 등이다. 대통령선거는 통일 주체 국민회의에서 최규하씨를 선출했던 것이 첫번째이고 새로운 선거인단 선거에서 전두환씨를 뽑은 것이 두번째이며 현재의 노태우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한 것이 세번째이다.
정치를 담당했던 정당들도 부침과 변모를 거듭했다. 특히 제1야당은 민한 신민 민주 평민 등으로 어지러운 변신을 되풀이 했다.
현재의 여당을 10ㆍ26 당시를 기준으로 분류 분석해보면 재미있다. 10ㆍ26사태 이후 10여년간 정치를 이끌어온 세력과 사태 이전의 18년간을 주도해온 세력,그리고 이들 두세력에 항거하며 투쟁해 왔던 세력이 한데 모여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변화를 겪은 것 같은데도 인물만은 변하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새삼 깨달을 수 있다. 군출신의 신진인사를 빼고나면 3김씨를 비롯한 「그때 그사람들」이 여전히 정치의 주역으로 변함없이 건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김영삼,김대중씨는 같은 야당진영에 있다가 합당조치에 따라 여야로 입장이 바뀌었지만 두김씨간의 숙적 대결양상엔 변한 것이 없다.
그래서 오늘날의 우리 정치가 이처럼 황폐화 된 것은 정치주역들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는 의견이 많다. 10ㆍ26사태라는 뜻밖의 계기로 맞은 「서울의 봄」을 꽃피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 버렸던 장본인들이 1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큰소리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10ㆍ26사태가 났을 때 모든 국민들은 이제 민주주의로 가는 대로가 열렸다고 기대와 희망에 잔뜩 부풀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얼마안가 그것은 착각이요 환상이었음이 드러났다. 정권욕에 눈이 멀었던 김씨들의 싸움과 이로 인한 혼란을 핑계삼은 군부세력이 나타나 서울의 봄을 짓밟아 버렸던 것이다. 권위주의의 강권정치가 종말을 고하는가 했더니 제2의 강압정치 시대가 입을 벌리고 있는 줄은 아무도 몰랐었다.
10ㆍ26사태 12년을 맞으면서 이렇게 그당시 상황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당시의 무분별을 반성하는 뜻에서라도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앞으로의 정치일정을 풀어갔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사람도 그때 그사람들이고 생각도 그때 그사람들의 것이라면 국민들이 느끼는 염증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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