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고위인사 인터뷰/“독일식 통일 강요땐 바로 전쟁”/“사회주의체제 절대 포기못해”/연방제 고수… 남북 통일관 깊은 골 확인분단 45년. 남북의 시각차는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이 시각차를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과도기 시행착오없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냉철한 현상파악이 무엇보다도 급선무다.
체제와 이념을 달리하며 반세기를 각기 걸어온 「남북의 골」은 깊을 수밖에 없다. 통일문제를 보는 시각도 예외가 아니다.
이른바 남쪽의 「전향적 통일의지」의 상당부분이 북쪽에서는 반통일적 사고나 분단고착화의 논리,민족 분열의 기도로 오해됐다.
특히 남쪽이 개방과 공존이라는 세계사의 흐름을 북한에 적용시키려드는 「변화에의 기대」가 북에서는 변형된 반공의 논리로 받아들여졌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는 북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져 「적대감」까지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여기에 소개하는 인터뷰는 이같은 점을 잘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북한의 고위급 인사중 한 사람을 여러 차례 만나 허심탄회하게 나눈 밀도 있는 대화를 간추린 것이다.
남북회담 관계로 여러 차례 서울과 평양을 왕래했는데 남쪽의 변화,특히 통일 열기에 대한 느낌은.
『많이 변했고 건설도 상당히 많이 됐다. 이는 당연한 변증법이다. 남쪽의 절절한 통일의 열망도 느낄 수 있다. 통일은 더이상 뒤로 물릴 수 없는 경각의 문제라는 점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우리쪽 통일의지를 평가한다는 얘기같은데.
『남쪽에서도 기본 민중의 통일의지와 사고는 북쪽과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하나의 민족,하나의 국가로 가는 연방통일의 지향은 남북이 같다고 생각한다』
고위급회담 이후의 남북관계가 어떻게 발전돼 나갈 것으로 보는가.
『11월중 적십자회담 실무접촉이 열리면 연내 이산가족들의 교류가 일부나마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린 그때 남쪽에 가서 「꽃파는 처녀」를 꼭 공연하도록 하겠다』
(지난해 고향방문단 교환의 장애가 되었던 혁명가극 공연문제를 다시 제기할 것을 시사했다)
우리쪽에서는 전전세대와 전후세대,특히 젊은 신세대와의 사이에 통일에 대한 시각차이가 많은데 북쪽은 어떠한가.
『우리 구세대가 분단된 조국을 새세대에게 그대로 넘겨준다면 이는 역사의 죄악이다.
새세대들의 통일관이 구세대보다 더 절절한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구세대는 분단에 대한 책임감이 크고 새세대는 통일을 향한 의무감이 높다』
북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방북인사 문제를 거론하는데.
『남은 실정법을 이유로 방북인사 문제를 내정ㆍ내부문제라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남은 우선 북쪽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해 주어야 한다. 위대한 수령께서 임수경 학생과 문익환 목사가 온다고 하니까 동포의 정으로 환영해 주었다.
북쪽 사람들의 감정을 생각해봐야 한다』
만일 북에서 「방남인사」 문제가 생겼다면.
『우리 감정이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방북인사들에 대한 북쪽 사람들의 기대감정을 그대로 전해달라』
그래도 전하면 남쪽에서 오히려 반공교육이 될텐데.
『남쪽서 사회주의 교육을 시킬 생각인가. 우리가 중요시하는 것은 북쪽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느냐 못하느냐에 있다』(북한의 형법을 묻자 악수를 청하며 대답을 대신했다)
동서독 및 남북예멘의 경우를 보면 유엔 가입이 분단을 고착화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아닌가.
『유엔에는 하나의 국가가 민족을 대표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변함없는 방침이다.
동서독이나 남북 예멘의 동시가입도 그들의 실정에 다른 결과일 뿐이다. 이들 나라의 경우를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시키려 한다면 엄청난 착각이다.
유엔에 동시가입하자는 것은 두개의 조선을 고착화시키자는 분단의 논리이다』
팀스피리트에 대한 비난이 많던데.
『내년 2월에 또다시 팀스피리트훈련이 실시된다면 훈련규모에 관계없이 고위급회담은 열리 수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둔다』
통일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는가.
『남쪽에는 남쪽 나름의 40년 이상된 체제가 있다. 북쪽도 마찬가지다. 호상간의 체제가 있는 것이다. 제도적인 통일을 하자면 대결이 온다. 그럴 경우 북인들 남인들 가만히 있겠는가. 북에서 남쪽에 사회주의를 강요할 수 있다고 보는가.
마찬가지로 남쪽이 북쪽을 자본주의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남과 북의 체제를 그대로 두고 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양쪽의 체제를 인정하면서 하나의 국가,하나의 민족이라는 연방제 통일방안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남쪽은 과도적 형태의 국가연합을 내세우고 있다』(연방제 통일방안의 당위성에 대한 설명이 계속됐다)
북한은 변화하고 있다고 보는가.
『북에는 변화가 없다. 자꾸 개혁ㆍ개방하는데 그런 것은 없다. 굳이 북쪽에서 개혁을 찾는다면 사회주의 혁명이 완성단계로 가는 과정에서의 변혁이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북쪽은 해방 직후부터 개혁을 했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이것이 변화라면 변화다』
동구의 개방ㆍ개혁에 대한 생각은.
『(상당히 흥분한 목소리로) 결론적으로 말해 남쪽이 얘기하는 개방이란 지금까지의 「반공」을 바꾸어놓은 것이다. 남쪽의 정부는 물론 출판물이나 정계,학계 모두가 북한의 개방을 유도한다고 난리다. 심지어는 국군의 날 노태우 대통령의 연설문에서도 그러한 얘기가 나오고 있지 않는가.
「북을 개방으로 유도해 독일식 흡수통일을 하자」는 얘기인 것 같은데 천만의 말씀이다.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했지만 동구와 조선은 다르다. 망상이고 환상일 뿐이다. 정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른다. 자동차 몇대 더 많다고 통일이 된다고 생각하면 환상이다.
통일문제는 북남의 체제가 존재하는 것을 전제로 두 사상과 두 이념을 인용하는 기초 위에서 하나의 민족,하나의 국가로 돼야한다. 만일 한반도에서 동서독식의 통일을 기대한다면 그것은 바로 전쟁이다. 우리가 어떻게 사회주의를 포기한단 말이냐』
그의 얘기를 그대로 옮겨봤다. 어디까지가 진정한 주장이고,어디까지가 전술적 배려인지 헤아릴 수는 없다. 서너차례 만남으로 신뢰성 여부를 재단하는 것은 퍽이나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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