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세 변화 “우리 식대로” 해석/언론서 내용 선별… 획일 시각 제공/“소는 혁명 신념등 없는 나라” 비난평양에 가기 전부터 궁금했던 것중의 하나가 북한주민들의 주변정세에 대한 인지도였다. 어느 정도 알고 있고,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궁금증이었다.
왜냐하면 기자가 평양을 가게 된 것도,남북고위급회담이 가속되고 있는 것도 주변정세라는 「외생 변수」의 작용이 컸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북한이 엄청난 「폐쇄사회」일 것이라는 선입관이 작용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결론부터 말한다면,북한주민은 밖에서 일어난 사실은 잘 알고 있었으나 그 내용과 의미에 대해서는 철저한 아전인수격 해석을 하고 있었다.
북한당국이 생산해내는 주변정세에 대한 「관제 허상」이 그대로 북한주민들의 「외부를 보는 창」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언론매체는 북한당국과 북한주민을 획일적으로 이어주는 연결고리였다.
대외문제에 대한 획일된 시각을 제공하는 교과서는 단연 언론매체다.
조선노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1일 1백만부 이상」을 발행하는 북한 최대의 신문이다. 우리와 같은 지면크기에 6면짜리지만 광고가 없어 지면은 꽤 넓은 편이다.
백화원초대소 기자의 방에는 매일 아침 로동신문이 배달됐다. 17일자 로동신문은 이랬다.
널찍한 1면을 「시원스런」 3장의 사진이 덮고 있다. 1면의 3분의2를 차지하는 양이다. 김일성주석궁의 유명한 벽화 금강산 구룡폭포를 배경으로 한 김 주석의 외국인사 접견 사진이다.
「뻬루변혁 90운동 대표단」 「에꽈도르 볼룬따드 출판사 사장 일행」 「라틴아메리카 기자연맹 전 서기장 가족 일행」 등이 접견대상이다.
김 주석 특유의 뒷짐진 사진의 설명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일행을 접견하시고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로 3장 모두 토씨까지 똑같다.
우리측 대표단의 평양도착 기사는 하단 한 귀퉁이에서 찾을 수 있었다.
2면은 1926년 이후 64년이 됐다는 「김일성 주체사상의 원전」인 「ㅌ,ㄷ」(타도 제국주의 동맹)에 대한 강의 일색이다. 북한주민들의 「17일 학습자료」이다.
기자는 대외문제를 질문할 때마다 「어디서 그것을 알았는지」를 항상 물어봤다. 신문에서 봤거나 방송에서 들었다는 게 하나같은 답변이다.
한소 관계ㆍ독일의 통일ㆍ동구의 대변혁 등에 대한 천편일률적 내용의 답변은 바로 보도내용 그대로였다. 북한의 TV와 방송이 신문의 교조적 보도내용을 반복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문제는 언론매체들이 엄청난 영향력을 바탕으로 「상징조작」을 하고 있다는 데 있었다.
6면은 우리의 「외신면」이다. 17일자 외신면에는 조선중앙통신이 제공한 영국의 격조높은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를 인용했다고 주장하는 기사를 싣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1987년에 5백만명의 6살 미만 어린이들이 빈궁선 이하에서 생활하였는데 이것은 이 년령 어린이 총수의 25%이다」
「뉴욕의 일부지역에서 70% 어린이들이 중학교에 못가고 있다고 한다」
이코노미스트지의 성가를 활용해 「미제국주의의 폐단」을 이처럼 왜곡해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사가 곧바로 북한주민들의 학습자료가 되고 「미제」를 비난할 때 인용됨은 물론이다.
이러한 「관제 허상」은 사회주의체제의 우월성으로 이어지고 곧바로 「어버이 수령」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들은 한소 수교와 관련,『별다른 관심이 없다』고 하면서도 「혁명적 신념과 정치철학이 없는 나라」로 소련을 신랄히 매도했다.
『기회주의자디요. 초보적으로 생각해봐도 70년 가든 길을 버리고 돌아서다니… 그대로 뻗어나가야디요』
이 매도가 고르바초프 대통령에 이르면 인신공격으로 바뀌었다.
『눈치보다 나라살림 다 망쳐먹고 급하니까 동냥질이나 하고 다니지 않습네까』
기자는 「노벨평화상 수상」을 들어 다른 답변을 들어보려 했으나 막무가내다. 『오직 굽신거렸으면 노벨상 탔갔시요. 순수성 다 떨어진 그깐 놈의 노벨상,미국놈들 장난일께ㅂ니다』
고르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은 사회주의 지조를 배신한 것이고,한소 수교는 「달러로 사고판 외교」이며,「통일을 저해하는 분열주의 책동」이라는 로동신문의 방향제시가 때와 장소,그리고 전달자가 달랐을 뿐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루마니아사태는 아주 「예민스런」 대목으로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했다. 루마니아의 「루」자만 나와도 묻는 의도를 알겠다는 듯 즉각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세계정세에 논단을 해보자는 게요』 만찬장의 한 인사가 루마니아사태를 묻는 기자에게 정색을 하며 되묻는다.
『논단이 뭡니까』 논쟁(앉아서 하는 토론)과 논단(서서 하는 토론이나 강연)을 구별못한 기자의 질문이 북한인사의 「기」를 뺀 셈이 됐다.
속사정이 어떻든 최소한 외양상 「차우셰스쿠의 종말」을 북한사회에 그대로 대입시킨다는 것은 「착각」이었다.
독일 통일에 대해서는 피해망상에 가까운 알레르기반응을 보였다. 북한이 UN 동시가입을 「적극 저지」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연형묵 총리의 이번 회담 기조연설에 이러한 본심이 잘 나타나 있다. 「남의 경험을 참고로는 할 수 있으나 그것을 씹어보지도 않고 그대로 삼키면 소화불량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독일식 통일과정을 모방하려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것으로 오히려 분열을 지속시킬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변정세도 「우리 식대로」 보고,「우리 식대로」 소화하고 있었다.
북한의 대외시각중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아직 중국에 대한 동지애다.
『강택민 총서기가 말한 게 보도되지 않았습네까. 중국은 굽실거리며 양면성을 쓰지는 않을 겝네다』 굳건한 동지애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북한주민들의 논리는 아연스러울 만큼 궁색하고도 자의적이었다. 기자는 바로 이러한 그들의 시각 속에서 한가닥 가능성을 애써 기대해 보았다.
수도꼭지를 한번 틀기만 하면 한순간에 물이 쏟아져 내리듯이,지도부의 결심만 선다면 북한주민들의 주변정세에 대한 시각도 어렵지 않게 교정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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