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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준 정치부장(평양을 다녀와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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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준 정치부장(평양을 다녀와서:4)

입력
1990.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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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속 변화… 「남 착각ㆍ북 환상」을 확인/유연ㆍ다양성 기대 번번이 무너져/유행가사에도 “당” 단골 경직 여전평양 체류중 기자를 가장 괴롭혔던 것이 「사고의 대혼란」이었다.

이는 체제가 다르고 분단 45년의 퇴적물이 있어 그러려니했던 차원의 「단순혼란」이 아닌 「대혼란」이다.

기대했던 개방과 개혁에 대한 바람이 상상을 뛰어넘는 규격과 획일의 틀 속에 묻혀 버렸음은 물론이다.

우리의 「통일지향의지」는 그들에게 「반통일적 사고」나 「분단고착화의 논리」로 이해됐고,남쪽의 「변화에 대한 기대」는 북쪽에서 「흡수의 논리」나 「도전의 논리」가 돼 있었다.

『인민의 의사와 염원을 선생님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도해주셔야 합네다』 판문점을 넘어갈 때 들은 안내원의 첫 주문이고 넘어올 때 들은 마지막 당부다.

「정확하고 공정하게」,「보고 들은대로」의 신신당부는 고위급회담의 최고위 인사로부터 만찬장서 만난 대학교수,열차승무원까지 똑같다.

통일에 대한 「열화같은 인민의 염원」은 공통된 주문사항이다. 팀스피리트훈련의 중지,핵무기 철수,콘크리트장벽 얘기는 빠지지 않는 메뉴다.

첫 회담이 열렸던 17일 아침 기자는 회담장인 인민문화궁전 건너편 보통문거리를 거닐다 간이단물매대(청량음료판매점)에 일부러 들어가 보았다.

『서울서 온 기자』라는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야!』하는 환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주문의 봇물」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통일­」 「통일­」 「통일­」 얘기다.

『노래처럼 꿈 속에서도 자주 통일을 꿈꿉네다』 『속히 적으시라요. 있는 그대로 써줘야 합네다』

그곳을 빠져 나오자 길거리의 모녀가 보였다. 9살짜리 보통학교 3학년생인 한양은 병원을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선생님,「통일의 꽃」 우리 수경 언니가 하루속히 석방되도록 힘써주세요』 한양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했다. 이 소리를 입버릇처럼 졸라댄다는 게 엄마의 보충설명이다.

『보셨디요. 있는 그대로 써주셔야 합네다』 기자의 주변에 어느새 자신에 찬 10여명의 「평양시민」이 둘러싸고 있었다.

서울을 떠나면서 억지로라도 규격쪽보다는 유연성에,획일쪽보다는 다양성을 염두에 두었던 기자의 기대는 번번이 무참하게 무너졌다.

평양 이틀째,최문선 평양시 인민위원장이 대동강변 옥류관에서 주재한 만찬은 쏘가리회 등 산해진미로 가득했다.

짜릿한 백두산 들쭉술을 한잔 들이킬 때 트롯풍의 노래가 잔잔히 흘러나왔다.

<한번 만나도 잠깐 심장 속에 남는 사람 아­ 그런 나는 몰라> 꾀꼬리음의 인민가수 최연희는 「아­/아­/사랑 사랑/나는 몰라>를 후렴으로 되풀이했다.

『바로 이거로구나』 기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동석한 북쪽 고위인사에게 말을 건넸다.

『요즘 북쪽에서는 혁명가요보다 사랑을 주제로 한 트롯풍의 노래가 유행이라지요. 이 노래 곡목이 무엇입니까』

북한에서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휘파람」이라는 대중가요가 선풍적 인기를 일으키고 있다는 서울에서 들은 얘기가 생각나 물어본 것이다.

『부장선생. 이 노래는 지금 한창 상영중인 예술영화 「심장에 남는 사람」의 주제가입네다. 당 일꾼이 인민을 사랑으로 끌어안아준다는 내용이디요』 또한번의 좌절을 맛봐야만 했다.

기자가 묵었던 백화원초대소는 국빈용 숙소답게 30여명의 접대원들도 무척 세련돼 있다.

백옥같은 테토론 흰색저고리,새까만 비로도 치마에 살짝 받친 행주차림은 그렇게 정갈스러울 수가 없다.

전문대학을 나온 23세의 김양은 영어를 6년 동안 「학습」했다. 김일성대학에 다니는 애인이 있고,영자지 「평양타임즈」도 본다고 했다.

『디스코장이 뭡네까. 평양에 그런 게 있답네까』

『디스코장을 가보았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정색을 하며 반문했다.

서울보다도 넓다는 평양,3백만 가까운 시민이 사는 평양에 디스코테크는 중심가인 천리마거리 건너편 「안산각연회장」에 외국인 전용으로 단 한 곳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할 수 있었다.

김정일 주재의 연회가 주로 열린다는 목단관 15인조 밴드를 비롯,고려호텔의 5인조 등 평양에는 5∼6개의 그룹사운드가 있다는 게 북한인사의 설명이다.

이것이 북한 서구화의 한 단면이다. 물론 디스코테크나 그룹사운드 등이 변화의 자(척)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몇곳의 서구화된 전시용 장소나 한두 가지의 현상에서 「변화의 상징」을 찾으려 한다면 이는 분명 착각이다.

기자는 평양에 가기 전에 이러한 착각을 했음에 틀림없다. 어쩌면 북한을 제대로 알고자 하는 모든이들이 이같은 「착각」에 빠져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착각」과 냉엄한 북의 「환상」은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서예실의 서너살박이 고사리손들은 「조국통일」 「자주민주」를 스스럼없이 써댔다.

4살박이 한군은 「고양이와 쥐」를 가장 자신있게 그린다고 뽐냈다. 『고양이는 조선인민이고요. 쥐는 남조선 노태우예요』 그러면서 한군은 쌀을 훔쳐먹는 쥐와 쥐를 잡는 고양이를 종알거리며 설명했다.

『어떻습네까­』 정작 당혹스러운 것은 코흘리개들의 「교양」과 「학습」을 평가해 달라는 교사들의 득의양양한 질문이었다. 질문이 아니라 확인의 강요였다.

80년대 후반 대학가 일각에 번졌던 「주체사상」에 대한 개념도 특이했다.

『1926년 10월17일 어버이수령 김일성 주석께서 「ㅌ ㄷ」(타도제국주의동맹)를 조직한 게 주체사상의 시발입네다』

당시 고루했던 민족주의자와 세계공산당에 아부하는 공산주의자와는 달리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운명을 개척했다」는 게 줄거리다.

『김 주석이 불과 열다섯 살 때군요』라는 기자의 물음을 그들은 자랑스럽게 받아들였다. 북한에서의 주체사상은 「획일성의 모태」였고 유일지배체제의 지주였다.

가장 큰 혼란을 일으키는 것은 「하나의 변화」를 보는 남북간의 대칭되는 시각차다. 이 대목은 「별도의 장」으로 다룰 생각이지만 대충 이러하다.

만일 북한사회에 변화가 있다면,이는 동구사태 이후 세계적 조류인 개방과 개혁의 흐름이라는 게 우리의 시각이다.

반면 북쪽은 북한사회의 변화자체를 부정한다. 굳이 변화가 있다면,보다 공고하고 완고한 사회주의체제를 건설해 나가는 과정에 수반되는 변화일 뿐이라는 논리이다.

그들은 부정의 시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북한을 와해시켜 흡수하려는 「도전」으로까지 간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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