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총리,평양서 누이동생 만났다/북 끈질긴 요구로 밤 1시 만나/홍 장관 누나ㆍ임 원장은 누이동생 등 2명 재회/「보안유지」 약속깨고 북 축구팀 기자 슬쩍 흘려남북고위급회담의 우리측 대표중 이북출신인 강영훈 국무총리와 홍성철 통일원 장관ㆍ임동원 외교안보연구원장 등이 평양일정이 사실상 끝난 지난 19일 새벽 1시 숙소인 백화원초대소에서 북의 혈육을 만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강 총리는 45년 만에 생사조차 모르던 누이동생을,홍 장관은 지난 85년 고향방문단의 평양방문 때 만난 누나 홍경애 씨(72)와 조카를,임 원장은 40년 만에 누이동생 동연씨(54)와 남동생 동진씨(41)를 재회하는 기쁨을 나눴다.
당시 옆에서 이를 지켜본 수행원들에 의하면 강 총리 등의 혈육상봉은 여느 이산가족과 다름없이 기쁨과 눈물,그리고 회한이 얽힌 가슴찡한 만남이었다는 것.
한 수행원이 전한 강 총리의 누이상봉은 다음과 같다.
○…강 총리는 19일 새벽 1시 목란관 만찬을 마친 뒤 숙소응접실로 안내된 누이동생 영순씨(64)와 30대 중반의 조카를 보고 한동안 말문을 잇지 못했다. 누이동생 강씨가 강 총리를 한눈에 알아보고 『오빠…』라고 나직이 불러보고 이내 흐느꼈고 강 총리는 누이동생의 손을 다정히 잡으며 『네가 영순인가…』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수행원중 이흥주 총리실 제1행정조정관과 강병규 총리비서관이 이 자리에 배석했는데,강 총리 일가를 침실로 안내해 「가족만의 만남」이 가능토록 했다.
침실로 들어간 뒤에도 한동안 누이동생과 조카의 울음이 새어나와 1시간 만남 동안 10여분 이상이 해후의 아픔을 진정시키는 데 소요됐다는 후문. 배석자가 없었기에 구체적인 대화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가족들의 안부와 후일의 기약에 대한 얘기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라는 수행원들의 귀띔.
도중에 북측 안내원들이 과자를 들고 들어가려 했으나 이 조정관이 『지금은 세분끼리 마음껏 만나시도록 방해하지 말라』며 이를 제지했다는 것.
강 총리는 새벽 2시께 혈육들과 함께 응접실로 나와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눴다.
눈물로 얼룩이 범벅된 누이동생은 이 조정관과 강 비서관에게 『우리 오빠 잘 모셔달라』고 당부했고 이 조정관 등은 『걱정마시라』고 말했다.
이때 북측 안내원들이 들어오자 누이동생은 남측 사람을 쳐다보며 『통일이 앞당겨질 수 있도록 오빠께서 앞장서 주시라』고 말했고 강 총리의 조카도 이 조정관에게 『총리를 잘 보좌해 통일이 빨리오게 해주시라』고 정치성 있는 발언을 했다.
강 총리가 『그래,그래』라며 『내 열심히 할테니 염려세요』라고 누이동생의 「처지」를 배려하며 작별인사를 한 뒤 속내의ㆍ시계 등을 선물.
현관까지 함께 나온 이 조정관ㆍ강 비서관 등이 잘 걷지 못하는 강영순 씨를 보고 『허리 아프시냐』고 묻자 강씨는 불현듯 『우리 사회에는 무료의료시설이 완비돼 있어 아무 문제없시다』고 잘라 말했다는 것.
강씨는 총리보다 4살 아래지만 4∼5년은 더 늙어보였고 건강도 썩 좋아보이지 않았고 강 총리도 후에 이를 무척 가슴아파했다는 것.
○…강 총리 등의 혈육상봉은 당초 남북 양측의 책임연락관 접촉에서 「없는 것」으로 합의됐으나 회담기간 동안 북한측이 「인도적 차원」을 내세우며 끈질기게 요구해 이루어졌다는 것.
2차회담 전인 8일과 12일 양측 연락관 접촉에서 강 총리 등의 북한가족 상봉을 주선하겠다는 북측에 대해 우리측은 『1천만 이산가족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대표들만 혈육들을 만날 수 없는 일』이라며 거부통보를 했다.
이러한 우리측 입장에 동감을 표시했던 북한측은 회담기간중에는 태도를 돌변,『가족들이 평양시내에 와 있는데도 안만나느냐. 당신들은 입만 열면 인도적인 교류를 운운하며 가족조차 만나지 못하는가』라며 끈질기게 요구해와 우리측이 이를 수락했다.
한 관계자는 『숙소인 백화원초대소에 가족들을 대기시켰는데 가족들을 끝내 만나지 않을 경우 우리측의 냉정함을 이용한 역선전이 있을 것을 우려했다』며 상봉허락 배경을 설명.
그러나 북한측 대표단이 지난 9월초 서울에 왔을 때 우리측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이산가족 상봉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은 점과 대비할 때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는 지적이 많다.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측이 북한측의 가족상봉요구를 「연락관 접촉위반」이라고 지적했어야 했다는 비판도 있다. 또 북한측은 보안을 유지키로 했던 약속을 깨고 지난 21일 서울에 온 북한 축구선수단의 수행기자를 통해 이를 슬쩍 흘리는 2중플레이를 전개해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고 있다.<이영성 기자>이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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