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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0.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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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소련을 방문한 딕ㆍ체니 미 국방장관은 서방측 인사로서는 처음으로 모스크바 교외에 있는 지하 방공지휘본부를 시찰했다. 핵공격에도 끄떡없도록 지하 20m에 견고하게 지은 그 비밀기지에서 9개의 강철문을 지나 컴퓨터의 표시등이 부산하게 깜박이는 거대한 상황실을 둘러본 체니 장관은 수행한 관계관들과 기자들에게 「흥미있고 인상적」이라고 짤막하게 소감을 말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1950년대에 철근 콘크리트로 지었다는 그 벙커에서 드미트리ㆍ야조프 소련 국방장관과 관계장성들은 간단한 설명을 통해 그 지휘본부가 최소한 3백대의 요격제트기와 기타 대공미사일 등을 지휘 통제하며 매일 24시간 가동체제로 10일간 지탱할 수 있는 식량,물,기타 필수물자를 비축하고 있다고 밝혔다는 데 마치 오래된 우방대표에게 해준 친절한 브리핑 장면같아 야릇한 느낌마저 든다. ◆바로 비슷한 시기에 우리 총리일행도 평양을 방문하여 체니장관의 방소일정과 거의 평행을 이루고 있었다. 비단 군축뿐 아니라 나라와 나라 간 관계정상화에는 「상호신뢰」라는 바탕이 요구되는데 평양에서 있은 원론적 접근이나 모스크바에서 있은 비밀공개 등은 형태나 수준은 달랐지만 신뢰구축을 향한 값진 행보였다고나 할까. ◆우리 대표단이 평양으로 떠나기 전날 평양방송은 한국측이 팀스피리트 훈련을 중지하지 않으면 모든 남북대화들이 또다시 중단될지 모른다고 느닷없이 위협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보면 훈련중지만을 집요하게 요구할 게 아니라 종래 우리가 반복해온 훈련참관 초청을 먼저 받아들여야 하는 게 순서가 아니었을까. 북측도 그들의 군사훈련 상황을 우리에게 보여주어 상호 실상파악의 과정을 먼저 가졌어야 했다. ◆공개적인 군사훈련을 중지하라고만 강요하고 휴전선에선 병력을 전진배치나 하는 상황에선 보다깊은 신뢰구축이 어려울 것은 자명한 이치다. 모스크바 지하벙커까지 공개되는 판국이라면 남북간 군사연습의 상호 참관쯤 어려울 것 없지 않은가. 미소를 흉내내자는 게 아니라 남북이 서로 군사적 상황을 참관하게 된다면 백마디 말잔치에서 보다 훨씬 귀한 신뢰가 싹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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