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만사태가 막 시작됐을때 국제유가상승에 따른 국내유가인상문제는 그동안 모아놓은 석유사업기금이 완충역할을 마땅히 해야 한다는 명분론에 밀려 연내 불변론이 크게 우세했다.그러나 최근들어 오히려 물가ㆍ에너지의 장기적인 안정적 관리 차원에서 국내 유가등을 조기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새삼 제기되고 있다. 그 찬반 의견의 논리적 근거를 들어본다.<편집자주>편집자주>
◎내년부터 완만하게 인상해야/올해 요인 완충적립금으로 흡수/석유기금 관리실패 전가 안될말
중동사태는 누구도 그 앞날을 단언할 수 없을 만큼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그간 중동사태와 관련된 호악재가 터질 때마다 국제유가는 등락을 되풀이해 왔거니와 10월 첫째주에 들어 OPEC평균유가는 배럴당 34.4달러에 이르고 있다. 현시점에서 분명해진 것은 중동사태가 어떻게 해결되든 당분간은 고유가의 압력을 받게될 것이며 사태의 해결방향에 따라 국제유가의 인상폭이 달라질 것이란 점이다.
이렇듯 명약관화해진 고유가시대에 직면해서 정부가 선택할 대비의 형식,즉 국내유가 인상의 시기 및 정도를 두고 이미 설왕설래가 시작되었으며 내적 상황이 과거 석유파동때와는 사뭇 다른 까닭에 「어떻게 잘 되겠지」하는 한국인 특유의 낙관론마저 시들고 있다. 사실 이라크의 쿠웨이트 강점과 동시에 국제유가가 급등하였음에 정부는 국내유가를 연말까지 동결하겠다고 일찍이 천명했다. 그런데 최근에 이르러 정부는 연내 유가인상의 불가피성을 간헐적으로 내비치고 있는 실정이다.
중동의 군사적 충돌로 인해 국제유가가 배럴당 30달러선까지 치솟지 않는 한 국내유가는 원칙적으로 유가급등이 몰아칠 충격을 완화시킨다는 차원에서 내년부터 완만하게 인상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존중되어야 한다. 그 이유로 금년 유가인상요인이 유가완충 적립금의 방출로 충분히 흡수될 수 있는 점을 우선 꼽을 수도 있다. 주지하듯이 과거 석유파동때 국내유가가 1년사이에 3∼4회에 걸쳐 대폭 인상됨으로써 경제활동이 큰 타격을 입었다. 다시는 그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정부는 석유의 수급 및 가격안정과 석유개발사업의 효율적 추진을 목적으로 석유사업기금을 조성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79∼89년간에 조성된 기금의 총액은 5조2천4백45억원. 그중 유가완충적립금으로 배정된 것은 1조6천2백39억원. 따라서 예정된 잔여원유도입량과 관련,6천억원내외의 금년 유가인상요인은 관세인하(10%→1%)와 3천억원 정도의 적립금방출로 완전히 흡수되리라고 판단된다. 그리고 잔여적립금을 내년과 내후년에 할당함으로써 유가인상요인의 일부를 흡수한다면 최대한 급격한 인상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중동사태가 예기치 못한 돌발사태로 당장 전쟁이 벌어질 경우라면 연내라도 다소의 유가인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출경쟁력 강화의 필요성때문에 유가의 급격한 인상은 피해야 한다. 왜냐하면 국내여건의 변화와 기술개발력의 비교 열위로 수출경쟁력의 저하가 지속돼오다 최근 원절하로 수출(가격) 경쟁력이 겨우 회복되리라고 기대되는 시점에서 급격한 유가인상은 수출회생에 악영향을 끼칠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소비자보호의 측면이다. 국제유가가 오른다고 국내유가도 매번 덩달아 인상시킨다면 하락시에도 응분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국제유가의 하락시에는 석유사업기금의 조성때문에 국내유가가 높게 유지됨으로써 소비자는 소위 소비자잉여를 보상받지 못한다는 논리적 배반이 생긴다. 덤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회복 차원이다.
무엇때문에 정부는 여론의 반응을 탐지라도 하려는 듯 소비의 합리화운동의 전개와 함께 연내 유가인상의 불가피성을 슬며시 내비치고 있을까. 그 배경은 다름아닌 석유사업기금의 효율적 운용의 실패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환언하면 기금의 조성동기가 소위 3차석유파동에 대한 대비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그간 저유가로 인해 안이하게 기금을 운용한 결과,정작 위기에선 기금이 국내유가안정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만 확인시키는 것이다.
즉 유가완충적립금으로 기금의 약 30%만이 배정돼 당장 유가완충용으로 동원될 수 있는 규모는 4천2백39억원 뿐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기금의 약 40%가 할애된 석유개발사업에 대한 융자의 비효율성이다.
결국 금년내 혹은 향후 대폭적 유가인상의 불가피론 대두는 석유사업기금이 제기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데서 기인된 것이다.<장두영 쌍용경제연 연구위원>장두영>
◎대폭적인 조기현실화 바람직/긴축효과 극대화 구미와 보조를/유보하면 오히려 부작용만 불러
8월초 발생한 페만사태가 어떠한 형태로 해결되더라도 상당기간 고유가상태가 지속되리라는 전망이 대두되고 있으며,미국ㆍ일본ㆍ독일ㆍ영국 등을 비롯한 선진국은 물론 대만ㆍ홍콩ㆍ싱가포르 등의 개도국도 이미 자국내의 유가를 대부분 8월중에 현실화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우리나라도 국내유가와 내년초 인상이 계획되어 있는 공공요금의 대폭적인 조기 현실화가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유가 및 공공요금의 연내인상 불허 방침의 이유로서 흔히 올해 물가상승률의 한자리수 달성을 들고 있다. 내년도의 안정적 임금협상,인플레기대심리 억제등을 겨냥하여 내년에도 한자리수 물가를 달성하자는 의도로 취해진 정책이다. 그러나 대내외 여건이 크게 달라졌다.
이제 유가의 조기현실화를 유보할 경우 오히려 부작용이 더욱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다.
첫째로 유류의 과소비를 조장하고 궁극적으로는 합리적인 산업구조조정 및 국제경쟁력확보를 저해하게 된다. 정부가 이미 국제적 고유가상태에도 불구하고 국내유가의 인상을 연말까지 5개월이나 유보한다면 기업 및 일반 유류소비자의 신속한 자구노력을 저해하게 될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에너지의 효율적인 산업구조로의 순조로운 이행을 저해할 것이다. 일본은 석유 전량을 수입에 의존함에도 불구하고 현 페만사태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그 이유는 일본은 유류수입국임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어 일본 경제의 충격흡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 반대로 국내유가와 국제유가와의 가격격차가 존재해왔던 미국 및 동구유럽제국이 석유과소비국가로 분류되는 점은 가격기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나타내 준다.
둘째로,우리경제는 신속한 국내유가인상을 통하여 긴축효과를 극대화하여 선진각국과 경제정책에 보조를 맞추는 것이 요구되는 상황이며,그렇지 못할 경우 중단기적으로 우리경제에 심각한 해악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이다. 페만사태가 없었다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물가상승압력이 높은 경기국면에 처해 있어 긴축기조를 강화하여 총 수요를 억제해 나가야 할 형편이다.
그런데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미 다른 나라들은 자국내의 유류가격인상을 조기에 단행하여 총수요를 억제해 나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만 총수요를 억제하지 않는 것은 실익은 적고 부작용은 클 것으로 우려된다. 즉 다른 나라들이 긴축할때 우리만 고성장 고수출을 달성하려 하는 것은 그 성과는 적고 고인플레라는 부작용만 유발할 것이 우려되고,이렇게 되면 향후에 다른 나라들이 유가파동을 흡수한 후 성장궤도에 진입할때에 뒤늦게 우리만 고물가를 잡기 위해 긴축하는 것이 불가피할텐데,이는 경제에 큰 손실일 것이다.
셋째로 석유안정기금은 석유의 전략적 비축 및 국내외 석유자원개발등에 사용하고 유가완충자금은 유가변동이 일시적일때 한해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즉 현재와 같이 고유가상태가 상당기간 지속되고 이미 다른 나라들은 자국의 유류가격을 조정해 나가는 상황에서 장기간(5개월) 유가완충자금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유가문제를 재정문제화 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공공요금의 경우에도 위에서 지적한 세가지 사항이 그대로 해당된다. 즉 과소비방지(수돗물,전기등)와 합리적인 산업구조로의 이행,긴축효과,그리고 공공요금문제의 재정문제화 방지의 필요성등이 그대로 지적될 수 있다.
따라서 국내유가 조정시 동시에 공공요금도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가와 공공요금의 인상은 단계적으로 실시하자는 견해도 있으나,필자의 소견으로는 일시에 대폭 현실화하고 추후 상당기간 가격조정을 유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사료된다. 각국의 경험에 비추어보아 인플레상승압력이 높을때 가격조정이 자주 이뤄지는 경우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져서 고인플레상태에서 하이퍼(초고) 인플레상태로 변화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좋은 교훈이라 하겠다.<박우규 한국개발연 연구위원>박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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