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흠모」 상상 초월한 획일성/「독재」 지적 거부… “어버이” 맹신적/일사불란한 집단체조 안쓰러움평양에 있는 동안 기자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독일이 통일되던날 동독의 드메지에르 총리가 실토했던 「허상의 종말」이란 표현이다.
드메지에르는 45년에 걸친 동독의 이데올로기 지배를 「허상」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사회주의국가 건설을 목표로 「우리는 우리식대로 살아간다」는 북한의 이데올로기 지배는 과연 무엇인가.
북한 주민들의 김일성 주석에 대한 「흠모의 정」은 상상을 초월한다. 평면적인 이데올로기 사고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맹신적인 종교적 「숭앙심」이 바탕에 깔려있다.
여기에는 철저한 패쇄성을 방패로 한 교조주의적 상징조작이 동원되었음은 물론이다.
기자가 평양에 도착했던 첫날인 16일 하오,이날자 시내판 한국일보가 숙소인 백화원초대소에까지 전달됐다. 기자를 책임맡은 안내원을 비롯,몇몇 안내원들 사이에서는 이날자 3면에 실린 기자의 글,「평양행 대로 뚫리길」이 논쟁의 대상이 됐다.
『부장 선생. 글 잘봤습네다. 그런데 잘못 리해하고 쓰신데가 있습네다. 정말로 마음이 상합네다』
정중했지만 「정말로」 표정이 굳어 있었다.
분위기가 일순간에 긴장됐음은 물론이다. 「평양,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1인 지배체제가 수립돼 있다는 북한이 개방의 세계사적 조류속에서 과연 변하고 있을까」
바로 이 문장중 「1인 지배체제」라는 대목이 그들의 비위에 몹시 거슬린 것이다.
흠모와 존경의 정으로 온 인민이 떠모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를 「1인 지배체제」로 표현한 것은 아주 크게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학습」이 시작됐다.
「1인 지배는 독재를 뜻한다. 독재는 인민들의 염원을 거부하고 인민들의 지향을 배척한다. 그러나 위대한 영도자는 인민들에게 은혜를 줬고,걱정을 없애줬다」 때문에 김 주석은 지배자가 아니라 인민의 떠받침을 받는 「위대한 수령」이라는 주장이다.
그들은 조국 광복이 김 주석의 항일투쟁의 결과임을 맹신하고 있고,김 주석은 「먹고 입고 사는 걱정」을 덜어준 세계 유일의 지도자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접두어 마다 어른들은 「위대하신 어버이 수령님」,아이들은 「위대하신 아버지 원수님」을 붙인다는 게 대학을 나온 52세 된 안내원의 「학습」 요지였다.
『그렇다면 북한 사람들은 어버이 아버지가 두명씩 있는 셈이네요』 기자는 아주 조심스럽게 「학습」을 한다는 예의를 갖추며 물었다.
『그렇디요. 중요한 것은 육체적 생명이 근본이냐,사회적 생명이 근본이냐 하는 것이디요. 우리 인민들은 사회적 생명쪽으로 확신하고 있습네다』
그러면서 남쪽에서 얘기하는 「낳은 정 기른 정」을 모두 합친 것을 「흠모의 정」으로 이해하면 된다는 부연설명까지 했다.
「학습」을 받은 뒤 교예극장의 공연,모란봉 경기장의 집단체조,학생소년궁전,옥류관,목단관의 만찬장 등서 인사말마다 나오는 「어버이에 대한 충성심」을 지켜봤다.
만찬장은 항상 화기애애했다. 최문선 평양시 인민위원회 위원장이 옥류관에서 베푼 만찬도 남북의 대화로 떠들썩했다. 이때 한 인민배우(1급가수)가 무대에 올라서는 순간 옆자리의 숨소리가 들릴만큼 분위기는 돌변했다.
<내고향 떠나올 때 나의 어머니 문 앞에서 눈물 흘리며 잘 다녀오라 하시던 말씀 아아 귀에 쟁쟁해>내고향>
2절의 <뛰노는 모습 아아 눈에 삼삼해> ,3절의 <광복의 그날 아아 돌아가리라> 가 끝날 때 북한 인사들은 「감격스런」 박수를 끝없이 쳤다. 옆자리 50대 여류인사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기도 했다. 「위대하신 수령」께서 광복전선에 계실 때 손수 지어부르시며 대원들을 교양했던 노래였다. 광복의> 뛰노는>
북한 사람들은 「집단체조」 앞에 반드시 「대」 자를 붙인다. 그만큼 장중하다는 자신감이다.
「대」자 앞에 「초」자를 서너개 붙여도 모자랄만큼 북한의 집단체조는 정말 대단했다.
우선 하나의 체조에 5만명이 출연한다는 「집단성」이 그렇고,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획일성」이 놀라움을 확인시켜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체조장에 운집한 10만 관중 모두가 이 체조를 위한 엑스트라라는 사실이다.
행진곡이 모란봉 스타디움을 진동시키는 가운데 운동장에서는 집단체조가 펼쳐지고,본부석 맞은편에서는 카드섹션이 물결친다. 관중석의 청중들은 기계같은 박수로 분위기를 고조시켜나간다.
집단체조는 「일심단결」이라는 제목으로 「환영장」에서 「마감장」까지 1시간20분 동안 10장이 계속됐는데 한치의 오차나 한건의 실수가 없이 물흐르 듯 진행됐다.
『선생님. 어떻습네까』 경기장 안내원인 듯한 40대 여인의 질문이 겨우 기자의 제정신을 들게 했다. 만감이 교차하는 착잡함을 삭이려고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이 경기장에 입장한 것이 하오 6시. 일정이 밀려 당초 예정시간보다 4시간이나 늦어졌다. 경기장에 들어설 때 첫 눈에 들어온 것은 곤봉을 두손에 든 수천여 학생들의 긴장된 「차렷자세」였다.
순간 우리의 「유신」때 여의도 생각이 났다. 어느 여중생이 소변을 참기 위해 전날부터 물을 먹지 않았다는 「악몽」이다.
그리고 88서울올림픽 때 매스게임 연습을 거부했던 어느 여대생들의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모란봉 경기장의 여학생들이 수십명 남짓의 서울 손님을 위해 저렇게 오랜시간 서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메었다.
집단체조도 예외없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 체조로 마감했다. 예닐곱살이나 됐을까. 하나하나가 코마네치들이라는 생각과 함께,잠실경기장서 굴렁쇠를 굴리고 가는 남녘의 아이들과 오버랩이 됐다.
이들 앙증스런 소녀들이 신기에 가까운 체조를 마친 뒤 본부석 앞으로 몰려와 「통일」 「통일」을 외쳐댈 땐 『저 어린 것들이…』 하는 생각에 와락 설움이 북받쳤다. 3박4일 동안 어디서나 확인되는 「허상」은 거대한 획일성이었다. 지금도 이 획일성에 생각이 미치면 가슴은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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