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요인을 평양에서 만나는 김일성의 사진을 우리 신문에서 처음 본 것은 72년이었다. 7ㆍ4남북공동성명이 동시 발표되면서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맞는 김일성의 사진이 그야말로 대문짝만하게 실렸던 것이다.당시엔 7ㆍ4성명의 내용도 충격적이었지만 남한의 요인을 직접 만나는 김일성의 사진은 커다란 충격을 던져주었다. 장막에 가려서 원래 밖에 잘 내보이지 않았던 그의 얼굴이었고,남한 신문은 그의 얼굴을 싣는 것이 금기로 되어 있던 시절이어서 국민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더구나 그 사진은 김일성 혼자만의 사진도 아니고 남한에서 실력자로 꼽히던 이부장과 함께 있는 사진이었기에 더욱 신기하기조차 했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김일성의 모습은 그렇게 크게 우리에게 다가온 일이 없었다. 처음에는 혹부리영감의 캐리커처로 가끔 신문과 TV에 나타났을 뿐이고 얼마전부터는 북한행사가 소개되면서 가끔 나타났고 최근에는 일본 자민당의 가네마루 대표단을 반가이 맞이하는 장면이 TV에 등장했을 뿐이었다.
그러던 그가 18일 밤에는 우리의 안방에까지 성큼 들어왔다. 한두장의 사진으로만 들어온 것이 아니라 강영훈 총리를 맞아 평양의 주석궁에서 얘기하는 너무나 생생한 모습이 카랑카랑한 육성과 함께 TV화면에 수분동안이나 나타난 것이다.
안방에서 그의 얼굴을 처음대하는 순간 섬뜩한 느낌이었으나 의외로 부드러운 말씨와 표정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노태우 대통령께서도…」라고 깍듯이 경어를 붙이는 것은 강총리가 먼저 「수석각하…」라고 호칭했기 때문일까. 뒷목의 커다란 혹을 제외하면 평소 우리가 가지고 있던 김일성에 대한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인상이어서 어리둥절해 하는 시청자들도 많았을 것이다. 적어도 뿔달린 도깨비나 무시무시한 독재자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나마 혼란과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것이 진짜 김일성의 모습인지 얼른 분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답은 앞으로의 언동을 유심히 지켜보면 저절로 나오겠지만 이처럼 안방에서 김일성을 가까이 대한 사람들은 한마디로 세상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것 같다.
전세계가 변해도 북한만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고 개탄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북한도 많이 변하고 있다」는 말을 서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북한주민들의 안방에 노태우 대통령의 얼굴이 낭랑한 육성과 함께 불쑥 나타날 날은 언제쯤이 될까하는 생각도 해보는 것이다.
지난번 서울서 열린 총리회담에서는 연형묵 총리등이 노태우 대통령을 예방한 사진은 물론 그 사실조차 보도하지 않았지만 김일성이 어느날 갑자기 우리 안방에 나타났듯 노대통령이 북한주민의 안방에 나타날 날도 멀지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낙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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