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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의 전쟁」과 인권/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교수(정치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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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의 전쟁」과 인권/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교수(정치진단)

입력
1990.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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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수단ㆍ개혁 통한 병소치유를지난 13일 노태우대통령이 선포한 「범죄와의 전쟁」은 많은 이들에게 1964년 미국의 린든ㆍ존슨 대통령이 선언했던 「빈곤과의 전쟁」을 연상시켰다. 「위대한 사회」건설을 표방했던 존슨 대통령이나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를 선언했던 노태우 대통령이 똑같이 그 사회내 최대의 공적에 대하여 비장한 각오로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존슨 행정부의 「빈곤과의 전쟁」은 FㆍDㆍ루스벨트와 JㆍFㆍ케네디로 이어지는 미국 민주당내 진보적 이상주의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외관상 풍요를 자랑하는 미국사회 속에 뿌리깊게 존재해왔던 빈곤이라는 구조악을 근원적으로 퇴치하기 위한 정치적 승부수였다. 획기적인 제도 및 기구개혁과 더불어 수백개의 새로운 프로그램이 개발되었고 엄청난 규모의 재정자금이 투입되었으나 결국 이 전쟁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빈곤과의 전쟁」 실패 원인이 여러가지로 논의되고 있으나,흔히 지적되고 있는 것이 충분한 준비와 사전계획 없이 무모한 의욕이 앞서 졸속주의적 결정을 남발함으로써 집행과정에서 많은 차질이 생겼다는 것과,보다 본질적인 것으로는 정부주도 내지 중앙집권적 정책주도의 한계 등 이었다.

그러나 「빈곤과의 전쟁」은 개인의 자유만을 앞세우는 미국 사회에서 사회적 형평과 공동체의식을 크게 진작시켰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체제개혁적 의미를 갖는다. 이 전쟁은 현실적으로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을 망정 미국 사회내에 미만되어 있는 보수주의적 장벽에 대한 이상주의의 도전이라는 면에서 멀리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철학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이제 다시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서 「범죄와의 전쟁」을 살펴보자. 솔직히 말해 적지않은 국민들은 이 때아닌 전쟁선포에 어리둥절했다고 표현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동안 민생치안 부재로 온갖 범죄와 폭력 속에 시달릴대로 시달려 온 시민들에게,이제 위험수위를 훨씬 넘은 시점에서 정부가 새삼스럽게 전쟁을 선포하며 나선다는 것 자체가 썩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었다.

만각이나마 다행스럽다고 자위해야 할지,그간의 정책실기를 준열하게 꾸짖어야할지 씁쓸한 심경이다. 더욱이 보안사 사찰과 단식정국 등으로 국내가 어수선한 시점에서 때맞춰 터져나온 전쟁선포에 혹시 정국을 호도하기 위한 맞불작전이 아닌지 회의마저 감돈다.

범죄와 폭력으로부터 시민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일은 국가가 해야할 가장 원초적인,그리고 고전적인 과제이다. 다시말해 그것은 국가가 체제유지를 위해 해야할 최소한의 과업인 것이다. 따라서 민생치안 유지를 잘하면 기본점수는 확보되지만 그것도 못하면 자격미달의 판정을 받게 된다는 점을 바르게 인식해야할 것이다. 물론 민주화로의 이행과정에서 사회기강이 크게 이완되었고 공적 권위도 눈에 띄게 실추되어 민생치안 확보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오늘과 같은 사회규범 해체의 극한상황에 이르게 된데 대하여 정부는 그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전쟁선포의 결연한 모습에 앞서 빚진자의 겸허한 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

「범죄와의 전쟁」을 위한 관계부처의 후속조치방안을 보면서 우리는 또 깊은 우려에 휩싸인다. 부처마다 공권력강화의 호기를 맞은 듯,권력의 자의적 행사가 우려되는 각종의 초강경 처방을 다투어 선보이고 있다. 일언하면 그 대부분이 공권력의 편의를 도모하는데 역점을 둔 대안들로서,시민의 인권보장의 차원에서 깊게 생각하고 고민한 흔적이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이 이른바 전쟁선포의 목적과 연관하여 본질적인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만약 그것이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면,집행수단의 선택에 있어서도 그 바른 뜻이 분명히 그리고 충분히 지켜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현재 논란되고 있는 몇몇 초강경 범죄처방을 보면,이 전쟁선포의 숨은 의도중 하나가 국가의 억압기능을 강화하는데 있는게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강력범죄와 시국사건을 같은 범주로 한데 묶어 버리는 수법도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위에서 존슨 행정부의 「빈곤과의 전쟁」이 의욕과잉과 준비부족 그리고 정부주도 등의 문제점 때문에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이번 「범죄와의 전쟁」도 이러한 미국의 경험으로부터 산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빈곤퇴치정책은 이미 존슨의 선임자인 케네디 대통령이 그의 경제자문역인 갤브레이스의 조언을 얻어 실시하기 시작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훗날 정책평가자로부터 「졸속」의 비판을 받았음을 상기할 때,이번 한국판 「범죄전쟁」이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되고 조정된 것인지 자못 우려되는 바 크다. 무엇보다 창궐하는 범죄를 공권력의 강화만으로 대처하려는 발상 자체의 타당성에 대해 보다 심각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병든사회의 병소들을 힘으로만 치유하는데 분명히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같은 전쟁선포라고 하지만 미국의 「빈곤전쟁」은 미국 사회의 보수주의적 편견에 도전하는 이상주의의 꿈이 담겨 있었다.

따라서 빈곤의 깊은 수렁에 빠져 허덕이는 빈민들을 재활시켜 사회로 복귀시키기 위한 인도주의적 노력이 그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비록 단기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을 망정 그 개혁의지는 아직도 미국 사회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한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당시 우리에 못지않은 각종 범죄와 폭력에 시달렸던 미국사회가 왜 「범죄전쟁」을 선포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아마도 그들은 이 문제가 아무리 심각하다 해도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일상적ㆍ민주적 집행수단에 의존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그들은 이러한 사회범죄에 내재된 구조적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파헤쳐 내려가 끝내는 사회내의 뿌리깊은 빈곤문제에서 범죄의 원인을 찾아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를 기화로 공권력을 강화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 강한 민생치안 의지를 일상적,민주적 정책집행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표출하고,더 나아가 정부가 솔선해서 「경제정의」 구현에 역점을 둔 일련의 실천운동을 주도했으면 어떠 했을까. 지나친 기대감이 분명하나 적어도 노태우 정권의 후반에는 이러한 새로운 차원의 개혁정치가 우리 사회 전체의 생명력을 불어 넣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허구한 날 「눈에는 눈으로」,「이에는 이로」 대응하는 단순한 정치현상을 우리는 언제까지나 지켜보아야만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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