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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러브 뉴욕」/임철순 사회부차장(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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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러브 뉴욕」/임철순 사회부차장(메아리)

입력
1990.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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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지표는 두껍다. 1백50개국 사람들이 1백가지 언어를 토해내는 곳. 달러와 가능성과 기회를 찾아 몰려든 그들의 꿈과 눈물과 땀과 피와 정욕이 켜켜이 엉기고 속깊이 배어 있는 땅. 그 아메리칸 드림의 땅위로 뿌리 없는 사람들이 흔들리며 걸어간다.1백명중 1명은 집이 없고 9만명이 거리에서 뒹구는 8백만의 도시. 담요를 쓰고 벤치에 누운 흑인여자. 발치에 놓인 사과는 곧 썩어가는 빅 애플(뉴욕의 별칭)이다. 도심의 빌딩밑에 누워 흐린 불빛 속에서 책을 읽는 흑인. 그의 고달픈 삶에 언제나 안식이 찾아오나.

「임신했어요? 우리가 도와줄께요」 공허한 포스터. 다리는 아이처럼 가늘고 눈은 죄없이 큰 흑인여자가 배가 부른채 부자동네 보석상 앞에 주저 앉아 있다.

좁고 더럽고 덥고 답답하고 지저분하고 숨막히고 위험한 지하철. 벽면의 타일은 떨어지고 땀내와 지린내 노린내 화장내가 1달러15센트의 값싼 여행을 따라 다닌다. 누가 찌르고 어디서 쏠지 모른다.

옆에 아무도 앉지 않으려 하는 거지 흑인의 저주. 그의 검은 눈물. 지치고 피곤한 사람들의 감은 눈위로 죽음처럼 드리워진 잠.

고가도로까지 쫓아 올라가 악착같이 스프레이로 그려 놓은 무수한 낙서와 욕설,음담패설. 「지에미 붙을 놈」「날 잡을 자 누구냐」

성기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여성들. 「날 보러와요. 전화걸어요. 끝내 줄께요. 연애전화 섹스전화 24시간 OK」 밤의 광기와 열기속에서 끝없는 쾌락의 사육제가 벌어진다. 춤은 죽음이다.

「몸은 거짓말 안해요. 몸매를 가꾸세요」 굶지 않고 살빼는 법 12단계. 담배를 끊는 비결. 우리는 젊고 싶어라. 죽어도 늙고 싶지 않아라. 나는 아직 81세. 이식해줄 간을 가진 사람없나요.

「아이 러브 뉴욕」 나는 뉴욕을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 뉴욕에 살면서 뉴욕을 떠나고 싶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자지러든다. 내 고향은 시에라리온. 뉴욕에서 택시를 몰지만 아메리카는 나는 싫어.

「영어가 안돼요. 한국인들은 30년을 살아도 안돼요」 그러나 그 원수같은 영어가 실성한 아메리카 할머니의 입에서는 쉴새없이 끝도 없이 웅얼웅얼 잘도 흘러나온다. 땟국물이 흐르는 아우를 보는 것처럼 안쓰럽게만 여겨지는 코리안들.

하늘을 무찌르는 빌딩군. 하늘에 닿고 싶어하는 인간의 덧없는 욕망. 그리고 마천루 유리창 닦이의 닦이지 않는 슬픔. 간밤의 쓰레기와 인간의 찌꺼기,흐트러진 거지들의 잠자리를 보여주려고 오늘도 태양은 허위허위 빌딩숲위로 떠 오른다.

파리에 간 청년 릴케는 「말테의 수기」에서 말했다. 「사람들은 살려고 이곳에 모여든다. 그러나 내게는 죽으려고 모여드는 것 같다」 그렇다. 뉴욕으로 사람들은 죽으려고 모여드는 것 같다.<뉴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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