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열기도 없어 「축구」 때와는 딴판/북측 “문 목사 등 불석방ㆍ대범죄전쟁 때문” 주장/농촌 인적 드물어 썰렁… 만찬석엔 백두산 들쭉술○…45년 만에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정부 공식대표가 평양을 방문한 역사적 의미와는 달리 평양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역사적인 남북고위급회담을 갖기 위해 북행길에 오른 강영훈 총리를 비롯한 방북 대표단 일행은 16일 하오 1시20분 평양역에 도착,북측의 영빈관인 백화원초대소에서 첫 밤을 보냈다.
가을날씨는 청명했지만 아스라히 지펴진 평양시내의 안개처럼 북한주민들이 대표단을 맞는 표정은 냉랭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남북통일축구팀과 범민족음악회 참가자들을 맞이할 때의 그 열광적인 환영분위기와는 달리 평양의 연도에는 드문드문 모여있는 시민들만 일손을 흔들거나,간혹 창문을 열고 내다보던 시민들이 환영인사를 보내는 정도.
이같은 냉랭한 평양시민의 표정에 대해 북측 안내원들은 총리까지 오면서 임수경 양 석방 등 북측이 요구한 선결조건에 대한 조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강변했다.
○…북한이 예상과는 달리 비교적 냉담한 자세를 보인 것은 남한정부의 정책과 관련있는 것이라는 게 북한측의 한결같은 설명.
조평통의 한 관계자는 이같은 냉대분위기가 남한정부가 임수경 양이나 문익환 목사 등 방북인사를 석방하지 않은 게 첫째 이유고 둘째 이유는 지난 13일 노태우 대통령의 「범죄와의 전쟁선언」 때문이라고 주장.
그는 또 『노 대통령의 범죄와의 전쟁선언은 통일을 외치는 젊은 학생들을 탄압하기 위한 것 아니냐』며 『이런 선언이 통일성취에 장애요인이 되지 않겠느냐』고 우리측 기자들과 수행원들에게 질문.
▷평양 도착◁
○…이날 상오 9시37분 개성역을 떠난 대표단의 특별열차는 경의선을 따라 북으로 달려 3시간50여분 만인 하오 1시20분께 평양역에 도착.
강 총리는 평양역에 도착한 뒤 북측 안병수 차석대표의 안내로 열차에서 내려 카메라 플래시를 받으며 대기중이던 벤츠 1호차에 곧바로 탑승.
환영인파와 계획적인 환영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는데 이는 북측이 의도적으로 냉대하는 인상.
○…특별열차가 평양역 구내로 서서히 들어가 멈추자 판문점 통일각까지 마중나오지 않았던 북측 안내원들은 자신이 맡은 남측 수행원과 기자들을 찾느라 비지땀을 흘리며 우왕좌왕하면서 우리측 기자들에게 자신이 담당한 대표단의 이름을 소리쳐 묻는 등 소란한 모습.
평양역 구내에는 안내원 외에는 민간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등 썰렁.
○“대동강 보니 옛 생각”
▷백화원 환영◁
○…하오 1시35분께 대동강 상류 정부초대소(백화원)에 도착한 강 총리 일행은 초대소 로비에서 연형묵 북한 정무원 총리의 영접을 받고 응접실로 자리를 옮겨 약 5분간 환담. 먼저 연 총리가 『대표단 일행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말하자 강 총리는 『오면서 보니 우리 일행을 위해 추계 대청소까지 하는 등 준비가 대단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고 감사를 표시.
연 총리가 이어 『평양과 서울 사이가 매우 먼 것처럼 알았었는데 자주 내왕하다보니 가까운 것 같다』고 말하자 강 총리가 이를 받아 『대동강을 건너다보니 산색은 옛날과 같으나 인심은 조석변이라는 옛말이 생각났다』면서 『연 총리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을 것 같다. 기쁜 마음으로 왔다』고 말해 폭소.
강 총리는 뒤편에 있는 총석정 등 대동강과 금강산 그림을 둘러보며 『나는 아직 금강산을 가보지 못했다』고 하자 연 총리는 이를 받아 『다음 오실 때는 구경할 수 있겠죠』라고 말한 뒤 『오시느라고 피곤하실텐데 쉬시지요』라며 일층 숙소로 안내.
▷만찬◁
인민문화궁전 대연회장에서 열린 연 총리 주최의 만찬은 우리측 대표단 일행 90명과 북측 관계자 1백10명 등 2백여명이 참석.
북한측은 만찬테이블을 34개 만들어 한 테이블에 6∼7명씩 배치했는데 한 테이블당 우리측 일행은 2명씩 자리를 잡도록 조치.
만찬이 시작된지 1시간10분가량이 지난 하오 9시5분께에는 북한의 만수대예술단이 등장해 만찬분위기는 고조. 23명으로 된 만수대예술단은 도라지 타령을 시작으로 고향,꽃파는 처녀,노들강변,봄의 노래 등 남한측 대표단에도 귀에 익은 음악을 연주했는데 가사는 남한에서 불려지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
특히 인민배우인 주창혁과 함금주가 노래한 춘향전중의 사랑가는 만찬 참석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이들이 노들강변을 부를 때는 일부 참석자들이 따라 하기도.
만수대예술단은 문화예술부 소속으로 북한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예술단체.
○…북한측이 만찬석상에 내놓은 술은 용성맥주와 인삼주,백두산 들쭉술 등으로 도수가 우리측의 것보다 다소 강한 편.
백두산 들쭉술은 백두산에서 자라는 「들쭉」이라는 열매로 담근 술로서 붉은 빛을 띠면서 냄새와 감촉에서는 우리의 적포도주와 비슷. 북한측 관계자는 『이 술이 백두산의 민족정기를 담은 민족의 술』이라고 자랑.
▷교예관람◁
○…남한측 대표단 일행은 이날 하오 5시30분 평양교예극장에서 공중곡예,곰권투,외바퀴자전거 타기 등 14개 프로그램을 관람.
강 총리 등 우리측 대표단들이 교예극장에 들어서자 미리 입장해 있던 관중들은 힘찬 박수로 환영했고 강 총리는 손을 흔들어 답례.
요술을 한 인기배우의 김택성 씨는 공연에 앞서 빨간 글씨로 「조국통일」이라고 적은 광목을 펼쳐 보였고 관중들은 일제히 환호.
한편 관중들중 어린이는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한 극장 관리인은 『어린이가 울거나 소리를 지르면 공중곡예 같은 데서 불상사가 날 것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
○역마다 김 주석 초상화
▷평양행 열차◁
○…평양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양측 일행은 농담을 섞어가며 즐겁게 환담.
북측의 백남준 대표는 『강 총리선생과 홍 장관 두 분이 계실 때 끝장을 보지요』라고 회담에 관해 언급하자 북측의 안병수 대표는 『그말 내정간섭 아니냐』고 해 좌중은 웃음바다.
○북 팩시개통 늦어 곤욕
강 총리는 이어 북측 중앙방송기자와 즉석 인터뷰를 가졌는데,임수경 양 석방에 관한 질문에 『같은 경우에 북한측은 그대로 두겠느냐』고 응답하자 안 대표가 계속 질문을 하려는 북측 기자에게 『이제 됐다』고 제지.
○…열차가 지나는 연도는 완만한 구릉에 군데군데 과수원,인삼밭,그리고 20호씩의 농가들이 보일 뿐 인적이 드문 한적한 풍경.
안내원들은 벼 베기 등 농사가 끝난 지역이어서 다른 지역에 작업을 나가 마을이 비어 있다고 설명.
완만한 야산에도 거의가 개간이 안돼 나무가 별로 없었는데 일손이 달려 개간을 못하고 있다는 게 안내원의 설명.<평양=이성준 특파원>평양=이성준>
▷서울 프레스센터◁
○…삼청동 남북대화사무국 1층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는 이날 아침 일찍부터 내외신 기자 2백여명이 몰려 수시로 전달되는 회담 관련사항을 취재하느라 북새통.
방북 취재단의 송고를 위해 설치됐던 남북직통전화와 팩시밀리ㆍ사진전송 시설 등이 이날 하오 4시께부터 3시간여 동안이나 불통돼 이의 복구에 남북 모두가 한때 법석.
또 북측으로부터의 행낭이 예정보다 3시간여 늦은 하오 8시30분께야 도착.
이날 남북통신회선의 불통은 북측의 낙후된 통신시설이 원인이라는 게 우리측 관계자들의 설명.
즉 우리측의 대화사무국과 북측의 통신통제소 사이의 회선에는 별문제가 없었지만 북의 통신통제소와 우리 대표단 숙소 사이의 회선이 일제시대의 것으로 워낙 낡아 지장을 초래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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