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쟁점화 사전차단 포석/유엔가입 저지 「협상카드」 병행/1차 고위급회담 때 합의사항 불이행 책임 모면도/접촉날짜 관행 깨고 한달 후로 제시… 시간벌기 인상북한이 16일 상오 전화통지문을 통해 적십자회담 실무접촉을 오는 11월15일 갖자고 우리측에 제의해온 것은 이번 2차 남북고위급회담을 겨냥한 다목적용 사전포적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우선 적십자회담 실무접촉의 개최일자를 제시함으로써 이번 회담에서 우리측의 중요한 거론표적인 이산가족 문제를 사전에 봉쇄하겠다는 의도를 내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북한은 지난달 서울 1차 회담서 합의된 적십자회담 재개를 이행치 않은 데 대한 책임추궁을 회피하기 위한 전술적 제스처를 취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측은 서울 1차 회담에서부터 이산가족 상봉 및 전화ㆍ편지교환 실현문제를 주요한 목표로 삼고 북측과 협상에 임해왔다.
특히 우리측은 이산가족 문제가 인도적 차원에서 다른 어떤 남북간 현안보다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긴급한 문제라고 인식,이번 2차 회담에서도 이를 집중 거론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측은 또한 지난달 서울회담에서 남북 양측이 각자 적십자사에 이산가족 왕래 및 고향방문단 문제 논의를 위한 적십자회담의 조기개최를 촉구키로 합의했음에도 불구,북측이 실무접촉을 미루고 있는 현 상황을 이번 평양회담에서 지적,북측의 성의있는 태도를 촉구한다는 입장이었다.
이같은 배경아래 북한측은 적십자회담 문제를 놓고 상당히 고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현 단계에서 개방의 부담을 안겨주는 대규모 고향방문단의 교환이나 이산가족 왕래,전화ㆍ편지교환을 원치 않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적십자 본회담의 재개도 꺼리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북한은 지난달 서울고위급회담 이후 우리측이 2차례나 적십자회담 실무접촉 개최일자를 제의했으나 『추후 연락하겠다』며 합의사항 이행을 피해왔다.
북한은 그러나 우리측이 이번 2차 회담에서 이산가족 문제에 강한 입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분단 45년 동안 편지 한 장 오가지 못하고 있는 비인도적 남북 현실에 대한 국제적 비난이 자신들에게 쏟아질 상황이 조성되자 이에 대한 타개책을 모색하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함께 북한은 이산가족 문제를 유엔 가입문제와 연계해 카드화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측은 서울 1차 회담에서의 합의에 다라 유엔 가입문제 논의를 위한 실무대표 접촉을 2차례 가졌으나 북측이 계속 단일의석 가입을 주장하자 이번 2차 회담에서 동시가입에 대한 최종 설득작업을 편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회담에서도 북측이 단일의석 가입주장을 고수할 경우 단독가입을 추진할 것임을 북측에 명백히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45차 유엔총회에서 우리의 유엔가입 지지분위기가 어느 때보다 고조됐고 오는 11월 유엔 안보리의장국이 미국으로 예정되는 등 우리의 유엔 가입여건은 상당히 유리한 국면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중국이 EC 등 세계 각국으로부터 한국의 유엔가입을 반대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고 있어 중국의 거부권행사 자체가 대단히 유동적인 상황이다.
북한은 이같은 상황변화에 따라 우리의 유엔가입 추진을 저지하기 위한 카드로 적십자회담 개최문제를 활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즉 적십자회담을 개최할 의사가 있는 듯한 움직임을 보임으로써 우리측으로부터 유엔 단독가입 보류를 얻어내려는 계산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북한은 이날 우리측에 보낸 전화통지문에서 지나치게 회담전술적인 측면을 드러냄으로써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은 이날 전통문에서 지난해 10월 이후 적십자회담 실무접촉이 중단된 책임을 우리측에 전가하고 『실무접촉을 전개하려는 남측의 태도에 유의한다』고 밝힘으로써 또다시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 교환과 관련해 혁명가극 공연을 문제삼을 것임을 강하게 시사했다.
북한은 또한 실무접촉의 경우 일반적으로 회담날짜를 10일 정도 후로 제의하는 종래 관행과 달리 한달 후로 제시함으로써 다분히 시간벌기용인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이밖에 북한은 이날 전통문을 고위급회담 우리측 대표단이 북한 땅에 들어간 직후인 상오 10시10분께 우리측에 전달해 이번 2차 회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려는 속셈을 드러냈다.
북한은 이처럼 최소한 이산가족 문제에 관한 한 불성실한 태도로 이번 회담에 응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의 이같은 전술적 대응자세는 북한이 현재 처한 어려운 상황과 험난한 남북대화의 여정을 함께 가리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정광철 기자>정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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