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집에 침입해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부녀자를 욕보이는 범죄가 유행인 것은 과문한 탓인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라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가정파괴범을 근절시키는 일은 최우선 과제일 수밖에 없다. 대낮에 멀쩡하게 처녀들을 납치해 가는 인신매매범과 강·절도사건에 시달려온 국민이니 범죄자에게 총기를 사용하는 권한을 대폭 강화한다 해서 범죄자의 인권을 크게 말하지도 못할 분위기이다. 아무도 투기,과소비,퇴폐풍조를 뿌리뽑으려는 의지를 나쁘다고 탓하지 못한다. 「폭력범죄와의 전쟁선언」은 그래서 나무랄 데 없는 발상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그 「선언」은 그 선언이 나오게 된 배경과 시점에서 간과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음도 부인할 수가 없다 할 것이다.
이 사회가 왜 이렇게까지 됐는가 하는 데 대한 인식에 균형이 깨져 있다. 잘못하는 쪽이 국민이니 정부가 바로 잡겠다는 접근방식이라면 국민의 공감을 얻기가 힘들다. 범죄가 많아진 것은 치안상태가 나빠진 데 근본 원인이 있고,치안능력이 약화된 것은 정부의 국가지도력이 약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소박한 국민의 인식일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과소비,투기,퇴폐풍조의 만연에도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이나 확고한 정책집행의지 부재가 큰 원인이었다고 국민은 볼 것이기 때문이다. 공직자의 기강 해이와 해이된 분위기를 장악하지 못하는 공권력의 우유부단 때문에 생명을 걸고 범죄자와 싸워야 할 경찰관이 몸을 도사린다는 얘기가 나돈 것도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따라서 범죄현상을 쫓기에 앞서 나라의 구심력부터 복원·강화하는 노력이 선행됐거나,아니면 최소한 병행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손상된 통치력을 보강하고 신뢰를 회복한 뒤에 범죄라는 공적에 손을 댔어야 선후가 맞아 떨어졌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았을 때 국민은 정부의 선언에 동감하면서도 우선 순위가 바뀐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일단 방관자일 수가 있을 듯하다.
야구에서도 타이밍이 맞아야 홈런이 나온다. 그런 점에서 적절한 시점과 여건을 택한 것인가에 논란이 있는 이 「선언」이 과연 만족할 만한 성과를 끌어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런데 이해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여론을 읽고 이를 수렴,반영하는 과정에서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는 것은 야권쪽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문제는 끝까지 따질 쟁점이지만 국민여론은 장외에서 규탄대회로 해결되길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13일의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규탄대회 결과가 그것을 증명한다. 인원동원에서 대회의 내용에 이르기까지 야권의 기대와는 동떨어진 것이 되었다. 김대중 총재 단식과 평민당 의원들의 동조단식도 지나간 시절의 필름을 보는 것처럼 호소력도,현장감도 떨어져 보인다.
왜 이럴까. 여야가 나름대로 지모를 짜낸 정치적 작품이 왜 위력과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 의문에 마주해 우리는 여야의 진지한 반성과 성찰을 권고할 수밖에 없다는 데서 무력감까지 느낀다. 이유는 간단한 데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치가 국민수준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기에 생기는 시행착오적인 현상이다. 국민은 지금 말없이 통치권 행사의 우선 순위가 제대로 잡혀가길 기다리고 있고,3년 전까지 통하던 투쟁방식이 이제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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