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통합ㆍ동구개발 따라/외국자본 철수 조짐 뚜렷유럽에 자본주의가 정착하기 시작한 지난 18세기 무렵부터 수백년간 이 지역 자본시장의 중심으로 군림해온 영국의 런던이 최근 주변정세의 급변으로 그 빛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불과 지난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자국의 과다 관세,각종 자본규제 조치 등을 피해 몰려든 금융자본가 회계사 무역상 변호사들이 자유로운 환전에서부터 채권및 증권거래 수출입 업무 등을 활발히 벌이던 런던은 최근 ▲EC(유럽공동체) 경제통합가시화 ▲동구권 경제개발 본격화 ▲독일통일과 지위상승 등 제반여건의 변화로 인해 종래 이지역에서 가장 자유로운 자본시장이란 명성과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오는 92년이면 이 지역 경제통합이 완료돼 상호간 무역ㆍ금융ㆍ재정지원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한 자유거래가 실현됨에 따라 지금까지 외국자본가 및 기업가들을 위한 「피신처」로서의 런던의 기능은 필요치 않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즉 하나의 경제단위로 똑같은 조건에서 각국이 더이상 보다 유리한 투자조건을 찾아 외국에 진출할 이유가 없어진다는 얘기다.
따라서 유럽 각국의 자본가들은 상당수가 이미 자국으로 철수를 서두르면서 제2의 거점을 부지런히 모색하고 있다.
여기에 무게 중심의 이전을 한층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 최근 개방을 가속화하고 있는 동구권 국가들의 경제개발이다.
유럽투자자들 뿐 아니라 미국등 여타지역 선진국 기업들까지도 동구권에 대한 투자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거점 이전을 위해 대거 빠져나가는 바람에 요즘의 런던은 불과 1∼2년전에 비해 눈에 띄게 썰렁해진 인상을 주고 있다.
그 규모가 시티은행에 이어 미국에서 두번째로 큰 은행으로 꼽히고 있는 체이스 맨해턴은행은 지난달 런던지점의 현지 고용인 5백여명중 3분의1이 넘는 1백70여명을 올해안에 감원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순차적으로 이 지역 은행의 기능을 축소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런던 외국은행의 감량 경영정책은 이미 2년전부터 미국의 시티은행,퍼시픽은행,케미컬은행 등 굵직한 은행들이 공통적으로 채택해 왔는데 모두 동구권에 대한 투자를 위한 사전 재원확보 작업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다.
또 지난해까지만 해도 극심한 공급부족 현상을 빚어 임대료가 이상 폭등하기도 했던 런던 중심가 사무실의 공실률이 이번달 들어 15%를 기록했고 내년 이맘때쯤이면 20%가 넘을 것으로 전망돼 런던의 경제 중심으로서의 기능상실 징후는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 3일 통일을 이룩한 독일의 상업도시인 프랑크푸르트의 도전도 런던의 지위를 크게 흔들어 놓고 있다. 이 지역에서 독일경제의 지위상승에 힘입어 최근 열린 회의에서 프랑크푸르트가 EC통합 후 중앙은행 소재 도시로 긍정적으로 검토되는 등 실질적으로 자본시장의 무게중심은 이미 런던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옮겨 갔다는 의견도 많다.
만약 EC가 궁극적으로 단일통화를 채택한다면 독일의 마르크화가 가장 유력한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현실적으로 프랑크푸르트는 지정학적으로도 동구권 진출에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데다 무역ㆍ증권거래 등 제반업무 과정을 완벽한 전산화를 통해 단순화시켜 매매브로커들의 마진을 최소화함으로써 외국 투자자들에게 편리함과 함께 최대한의 수익률을 보장해 주고 있다. 평소 같으면 30%를 상회하던 런던의 총생산중 금융ㆍ보험ㆍ재정 부문의 비율이 올들어 20% 아래로 급강하 하는 추세와 비례해 프랑크푸르트의 입지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영국은 최근 범정부차원에서 런던의 실지회복을 위해 자본관계 업무의 전산화와 각종 제도의 개선에 뒤늦게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경제전문가들은 어차피 근본적으로 달라진 제반여건하에서 런던이 옛 영화를 다시 찾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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