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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 공화국/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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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 공화국/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0.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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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병이 국방장관의 목을 날렸다. 입대 4개월짜리 신병이 폭로한 보안사정치사찰 사건의 충격이 정국을 파국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새삼 6공정부의 도덕적ㆍ정치적 기반이 허약함에 놀란다.목이 달아난 장관은 『군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 왔으나,보안사는 손을 쓸수가 없었고,알지 못하는 부분도 많았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이를 받듯,새장관은 『장관이 확실하게 장악할 수 있는 보안사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 역시 『밤늦게 임명통보를 받았기 때문에,후임 보안사령관 인선에 장관으로서의 의견개진기회가 없었다』고 했다. 새 장관의 취임 첫 다짐도 좀 어정쩡할 수 밖에 없다.

보안사령부는 분명 국방장관 직속부대다. 대통령령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 그것은 합참도,각국 참모총장도 아니고,국방장관만이 이 부대를 통제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역대 국방장관이 보안사령부를 파악못했다느니,앞으로는 장악하겠다느니­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들인가. 우리국군의 계통이,또 이나라 국방장관의 체통이 그쯤 밖에 안된다는 말인가.

이런 의문의 화살이 이를 곳은 한 군데 밖에 없다. 새 국방장관의 표현대로 겨우 「도망간 2등병 하나」때문에 통치권의 기틀마저 흔들리는 듯한 것은 이때문이다. 사건폭로의 처음 충격이야 차차 가시겠지만,자칫 통치권 자체에 회복못할 상처를 낼 수도 있는 판국이다.

이에 이르러 지난 5월초 정부ㆍ여당이 만들어 냈던 「총체적 난국」이란 말의 절묘함을 깨닫는다. 말을 만들어 낸 사람은 그때의 경제침체,부동산투기,증권파동,노사분규,민생치안 악화등 악재의 복합을 그저 막연하게 「총체적」이라 했던 것 같다. 그런 뜻의 「총체적」은 한낱 수사에 불과하다. 이 정도의 인식은 총체적 난국의 대처방안을 밝힌 노태우대통령의 5ㆍ7 시국담화도 마찬가지였다. 담화문의 시국진단은 「전환기적 현상이 가시지 않은데다 최근의 몇가지 사태가 상승작용을 한 것」이라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담화문은 아예 「난국」이니 「위기」니 하는 말은 쓰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에 되풀이되고,더욱 심화된 위기상황은 대통령의 그런 인식이 너무나 느슨한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그 잘못은 나라의 형편을 「과도기적」「최근의 몇가지 사태」등 현상적인 것으로만 파악하고 보다 본질적인 것을 외면한데 있다. 그 탓으로 위기관리는 대증적인데 그쳤다. 그러다보니,통치권은 총체성을 잃고,정치와의 괴리,행정과의 괴리,국민과의 괴리,말과 실천의 괴리를 빚는다. 그 결과로 통치권에 대한 신뢰성과 도덕성의 위기,효율성의 위기가 증폭된다. 이것이 오늘의 위기상황 아닌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라 할 수 밖에 없다.

많은 사람이,대통령을 쳐다보는 까닭이 이것이다. 그들은 오늘의 위기를 본질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그 본질적인 것은 국정의 최고지도자만이 풀수가 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설때다」「대통령의 단안이 필요하다」는,절박한 어투의 여러신문 사설제목들이 그런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그 논조는 그래도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다.

사정은 지난 5월에도 비슷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그때 국민들의 심정에 제대로 부응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지금,국민들이 초조한데 비추어서는,대통령의 행보가 너무 느린 것처럼 비친다. 그래서 그들은 더 불안하고 답답하다.

대통령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기대는 대통령의 막강한 권능에,나라의 위기관리능력 거의 모두를 위탁한 대통령제의 당연한 귀결이다. 그들은 대통령의 순발력을 기대한다. 그리하여 최고책임자가 직접 위기와 맞서,최종 결단을 내리기를 기다린다. 그것이 「고독한 결단」이 되리란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그들은 그 결단이 위기의 본질을 꿰뚫는 것이어야 함을 절감하고 있다. 그 본질이란 정치의 불안정과 무기력,도덕성의 실종이다. 그렇다면,대통령의 「고독한 결단」은 먼저 정국운영에 대한 대통령으로서의 소신을 먼저 세우고,향후 정치일정에 대한 선택을 확고히 하는 일에서 비롯될 수 밖에 없다. 요즘 정치불안의 뿌리인 내각제ㆍ지자제에 대한 결단이,좌하든,우하든,이제는 있어야겠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민자당의 내부구조도 재단이 가능해진다. 최대 현안인 지자제에 대해서는 이견을 조정못해 당론이 없고,당헌에까지 비친 내각제는 당론 없음을 표방하는 거대여당이라면,차라리 다시 헤쳐 모임만도 못하다. 여기에도 3파안배,그 사람이 그 사람인 요직개편을 넘어서는,정말 「고독한 결단」이 있어야 한다.

이런 본질문제는 지난 5월 시국담화가 거의 외면했던 대목이다. 그때 담화문은 인사치레처럼,『민자당이 하루빨리 단합된 모습을 갖추도록 하고,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씻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라고만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정국과 민자당 형편을 보아서는 그 정도의 다짐도 낯이 뜨거울 판이다. 이처럼 본질문제에 차질이 났으니,여타 대증방안인들 실효가 있을 까닭이 없다.

요즘 신문 증권면에 「깡통계좌」란 말이 자주 보인다. 증권을 신용거래하다 원금을 날리고,대부금에 대한 담보마저 모자라게 된 부실계좌를 이름인데,증시대책으로 강제정리를 해보니,그 규모가 엄청나서,투자자들의 항의ㆍ시위가 잇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기사를 읽다가,문득 「깡통공화국」이란 말이 떠올랐다.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머릿속의 그 다섯 글자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지금같은 위기국면에 어떤 전기가 마련되지 않는다면,이 나라가 정말 빈 깡통처럼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전기마련의 결단은,아무래도 대통령에게 기대할 수 밖에 없다. 그의 고독을 강청할 수 밖에 없다.<상임고문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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