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막힌 단식정국 가냘픈 숨통/요구 수위ㆍ협상 가능 서로 교감/때맞춘 여권 물갈이 긍정작용/솔직한 현안 논의… 노김 대표 「결단」 위한 탐색용 성격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단식으로 장기화될 것 같았던 「단식정국」이 김영삼김대중 두 김씨의 전격회동과 민자당 3역을 포함한 핵심 당직개편으로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기 위한 암중모색 단계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두 김씨의 11일 회동은 성과보다는 만남 자체의 상징성에 하중이 실려 있지만 그 시의성이나 때맞춰 단행될 민자당 당직개편의 파장으로 미뤄볼 때 난국이 타개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희망적 관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 평민 총재가 단식에 들어가자 정치권은 문제해결 능력이 없음을 스스로 드러내면서 뚜렷한 무기력 증세를 보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김영삼 민자당 대표가 예상보다 빠르게 능동적 태도를 취하고 민자당이 당직개편을 통한 자기쇄신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실낱같은 기대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김 총재의 단식에는 난국수습에 임하는 여권의 무성의와 의지 부족에 대한 강력한 항의의 뜻도 담겨 있기 때문에 두 김씨 회동이 갖는 상징성은 결코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또 민자당의 당직개편은 사의표명의 이유와 수순이 어떠하든지간에 여야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인사란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은 틀림없다.
두 김씨는 13대 들어 처음인 단독회동에서 배석자를 물리친 가운데 1시간여 가까이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이례적인 장시간의 대화에서 두 사람은 「경쟁과 협력」이라는 옛날의 특수관계로 돌아가 허심탄회한 얘기를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김 대표는 김 총재로부터 단식투쟁의 구체적 요구 수위를 확인했을 것이고 김 총재는 김 대표에게 최후의 마지노선을 통고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날 회동의 내용과 분위기가 김 대표를 통해 노태우 대통령에게 전해져 여권의 최고결정에 결정적 요인이 될 것임은 물론이다.
특히 김 총재가 거듭 강조했듯이 난국수습을 위한 결단을 노 대통령에게 되풀이해 촉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두 김씨는 이날 회동에서 민자ㆍ평민 양당의 주요당직자들이 빈번한 접촉을 갖고 현안에 대한 의견접촉을 모색해나가기로 했다. 단식정국에서 꽉 막혀버렸던 여야 협상창구가 구성된 셈이다.
의도된 것이기보다는 약간의 우연성이 있지만 민자당의 당직개편이 두 김씨 회동의 긍정적 평가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여 대화와 협상가능성을 점치게 하고 있다.
두 사람은 김 총재가 요구한 4개항에 대해,특히 지자제와 내각제 개헌 포기에 대해 비교적 솔직한 견해를 교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 대표는 12일에 이어 내주초에 잇달아 청와대를 방문할 예정이어서 이날 회동은 노김 대표의 시국수습 결단을 위한 탐색 용의 성격도 있다.
김 총재는 『4개항 요구 등에 대해 원칙을 가지고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했다고 김태식 대변인은 전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민자당의 내부사정을 들어 내각제 개헌 포기선언이 명시적으로는 어렵다는 점을 설명하고 지자제의 경우 최대한 성의를 보이는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의견을 전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가 김 총재 방문을 결정한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우선 노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정국운영의 1차 책임을 지고 있는 여권의 최고책임자로서 파국으로 치달을 게 뻔한 단식정국을 수수방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김 총재와의 「특수관계」를 감안할 때 단식이 장기화돼 관심이 김 총재의 건강에 쏠릴 경우 자신에 쏟아질 따가운 눈총을 미리 감안했을 것이다. 사퇴정국 때부터 김 대표와 민주계에 집중되고 있는 책임론이 단식정국에서 더욱 증폭될 것이라는 점을 고려에 넣은 여권내부용이라는 측면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이에 반해 김 총재가 김 대표 방문에 대해 지니고 있는 입장도 몇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김 총재는 김 대표와의 대화보다는 이 대화내용이 굴절없이 노 대통령에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점을 우선 의식했을 것이다. 김 총재는 줄곧 김 대표와의 대화를 사양하면서 노 대통령과의 직접담판을 요구해왔다. 또 김 총재가 3당합당 이후 김 대표에 대해 지니고 있는 「복합적인 감정」과 사퇴정국에서 평민당이 민주계에 대해 표출했던 불만요인 등도 이날 회동의 분위기에 상당히 작용했을 것이다.
김 대표가 전격적으로 김 총재 방문을 결정한 데다 두 사람 사이에 얽히고 설킨 주변요인 등을 감안하면 이날 회동이 상징성에 머물 수밖에 없음이 더욱더 분명해진다. 그리고 회동이 끝난 뒤 불과 몇시간 만에 이뤄진 민자당 당직개편 결정은 이같은 의미부여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따라서 단식정국의 향방은 김 대표의 노 대통령 면담 및 여권의 결단 여부,범야권이 연대해 개최하는 13일 보라매공원 대회의 파장 등을 지켜봐야만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단식 당사자인 김 총재의 완강한 태도와 실기라는 지적을 받을 만큼 여러 차례에 걸쳐 결정을 유보해야만 했던 여권의 구조적 문제 등을 감안하면 단식정국의 출구마련이 그리 쉽지 않은 것만은 틀림없다.
또 당직개편 후 민자당이 갖출 새 진용의 성격과 대야 협상에서 보일 태도도 좀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분명한 것은 지자제 실시,특히 자치단체선거에 대해 지니고 있는 김 총재의 강한 집념으로 미뤄볼 때 이 부분에 대한 타협이 선행되어야만 돌파구가 열릴 것이라는 점이다.
어쨌든 단식정국이 하루빨리 수습되어야만 한다는 데는 이론이 없어 두 김씨 회동과 민자당 당직개편이 수습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당위론이 팽배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이병규 기자>이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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