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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인독립문제」 세계 다시 “주목”/「유혈인티파다」 3년째 계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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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인독립문제」 세계 다시 “주목”/「유혈인티파다」 3년째 계속에

입력
1990.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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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영구합병」ㆍ차별대우에 불만누적/평화적 해결 기대 못해… 서방 적대감도 증폭페르시아만사태로 중동정세가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위태로운 상황에서 돌출된 8일의 동예루살렘 유혈사태는 중동의 최대 난제인 팔레스타인 독립투쟁(인티파다)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다.

아랍어로 봉기를 뜻하는 인티파다는 지난 87년 12월부터 이스라엘 점령지인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벌이고 있는 비무장 독립투쟁을 의미한다.

이번 동예루살렘 유혈사태는 지난 34개월간 7백20명의 사망자와 5만명 이상의 부상자를 기록한 인티파다중 최악의 사건으로 꼽힌다.

원래 인티파다는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인이 몰던 트레일러 1대가 팔레스타인인 승용차를 덮쳐 4명이 사망한 평범한 교통사고로 촉발됐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 사고가 앞서 일어난 이스라엘인 피살사건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하며 항의시위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소년 1명이 숨지자 항의시위가 전 점령지역으로 번지면서 인티파다로 발전한 것이다.

이후 중무장한 이스라엘군에 맞서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항거하는 팔레스타인인의 인티파다는 점령지구의 일상적 모습이 됐으나 한편으론 팔레스타인 문제를 중동의 화급한 현안으로 부각시키는 성과를 낳았다.

인티파다는 이스라엘 점령지구에 거주하는 1백40만 팔레스타인인들의 누적된 불만이 일시에 폭발해 빚어진 것이다.

이스라엘은 지난 67년 3차 중동전에서 승리한 뒤 요르단으로부터 요르단강 서안,이집트에서 가자지구,시리아에서 골란고원을 각각 빼앗아 점령해왔다. 이들 점령지는 기존 이스라엘영토의 4분의1에 해당하는 방대한 지역이다.

이스라엘은 이들 점령지에 이스라엘 정착촌을 속속 건설,영구합병을 기도함으로써 팔레스타인인들의 반발을 샀다.

또 경제적으로도 소수의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점령지구의 토지 절반이상을 소유할 정도로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팔레스타인인들은 취업ㆍ승진 등에서 극심한 제약을 받음으로써 한층 불만이 가중됐다.

이같은 배경에서 시작된 인티파다가 세계여론의 호응을 얻게되자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제적 노력도 활발해졌다. 특히 인티파다에 고무된 이라파트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의장은 88년말 테러포기와 이스라엘 생존권 인정을 선언하고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를 팔레스타인 독립국으로 선포,협상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에 따라 미국은 튀니지에서 최초로 PLO대표와 직접협상을 개시했으며 89년 5월에는 제임스ㆍ베이커 미 국무장관이 점령지구에서 제한적 자치를 실시한뒤 5년후에 팔레스타인 독립국 건설문제를 최종 결정한다는 내용의 평화안을 발표했다.

이 제안은 이스라엘야당인 노동당의 지지를 받기도 했으나 강경파인 이츠하크ㆍ샤미르총리가 거부,결국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이처럼 팔레스타인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답보를 거듭하자 팔레스타인인들의 좌절감과 반서방 적대감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전서방의 압력에 맞서 쿠웨이트문제를 이스라엘 점령지문제와 연계,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담ㆍ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을 「구원자」로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후세인대통령의 속셈이 어떻든간에 인티파다를 외면하고는 중동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그의 주장은 이번사태로 더욱 호응과 설득력을 얻게 됐다.<배정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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