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로 없는 전면전… 「정치」 없는 「투쟁길」/「차기」 겨냥 지자제 관철 주목표/야권통합논의 봉쇄도 노려… 사찰파동전 결심 평민/예상밖 강수에 긴장… 계파간 입장정리 덜된듯/“「정권」등원 바꿀 순 없다” 주류 민자○야권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무기한 단식투쟁선언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파행정국이 더욱더 정면대치국면으로 치달을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김 총재는 단식이란 극약처방으로 노태우 대통령과 여권에 대해 최후통첩을 했으며 상황전개에 따라 제2 제3의 결단을 내리겠다고 말해 난국타개를 위한 초강경대응이 계속될 것임을 분명히했다.
김 총재가 말한 제2 제3의 결단중에는 지자제 실시 등에 대한 진전이 없을 경우 자신의 정치적 거취문제까지를 재고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돼 단식선언이 강경투쟁의 초기조치임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김 총재는 요구조건으로 내각제개헌 포기선언 지자제 실시에 대한 약속이행 민생문제 해결 보안사 해체 등을 내걸었지만 귀착점은 지자제 실시,특히 지방자치장 선거에 대한 노 대통령의 결단에 모아진다고 할 수 있다. 김 총재는 『지자제 실천을 위해 평민당은 당의 존폐를 걸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끝까지 싸우겠으며 개인의 어떠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한 집념을 되풀이 강조했다. 김 총재가 지자제에 대해 이같은 집념을 보이고 있는 것은 지자제가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는 정치적 견해 외에도 지자제 실시를 통해 기초토양을 조성해 놓아야 93년의 대권고지 점령이 가능하다는 현실적 이유도 깔려 있다. 다시 말해 대권을 위해 단식을 시작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김 총재는 단식이 개인적 결정이라는 점을 들어 회견문제에서는 이를 전혀 언급치 않았지만 단식에 들어갔음을 구두로 알린 뒤 『노 정권은 정국을 풀려는 의지가 없고 오히려 야당을 깔보고 있다』고 단식이 여권의 무성의에 대한 항의의 의미도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김 총재는 이미 지난달말부터 『정치를 안했으면 안했지 이대로는 국회에 못들어간다』 『옥쇄할 각오로 등원조건 관철을 위해 싸우겠다』고 말해 대여투쟁방안이 강성으로 기울었음을 강조해 왔는데 단식에 대한 최종결심은 지난 4ㆍ5일의 워커힐 체류 때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보안사의 정치사찰 문제는 이미 김 총재가 단식결심을 굳힌 뒤에 돌발사건으로 터진 것이어서 분위기 확인에 일조를 했을 뿐 결정적 요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김 총재는 지난달 대수해가 났을 때부터 등원 5개 조건을 사실상 지지제 실시문제 하나에 맞춘 뒤 노 대통령의 결단을 계속 촉구하면서 여권 수뇌부와 많은 간접 접촉을 통해 정국정상화방안을 모색했다. 그러나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하자 여권의 무성의에 분노하기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따라서 김 총재의 단식선언에는 여권의 무성의,즉 노 대통령의 난국해결의지에 대한 비난이 강하게 실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김 총재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영구집권 음모를 차단시키고 민주화의 초석을 깔겠다』고 말해 그동안 여권에 대해 취해온 화ㆍ전 양면태도가 「전」쪽으로 기울어졌음을 분명히했다.
김 총재가 과거 반독재투쟁시대에나 볼 수 있는 비정상적 투쟁방법인 단식을 결정한 이유는 이밖에도 있다. 김 총재는 지금의 정국상황을 민주 대 반민주가 대립하는 상황으로 파악하면서 비정상적 상황에서는 비정상적인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김 총재의 단식결정에서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은 야권통합 논의의 부진을 단식돌입으로 희석시키면서 평민당 내의 단합을 그 어느 때보다 공고히 하자는 점을 고려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 총재는 당내서명파 의원들이 야권통합을 둘러싼 집단 행동을 재연시킬 조짐이 보였을 때 「결단을 내릴테니 시간을 달라」는 입장을 보였고 등원문제를 둘러싸고 당내일각에 등원주장이 있음을 감지하고 있던 차였다.
김 총재는 초강경 선택을 함으로써 야권내부와 평민당내에 충격요법을 사용하려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김 총재가 야권통합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수차 연기시키다가 이날 회견에서 단식투쟁을 선언한 것도 같은 이유이며 이날 회견에서 야권통합 문제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은 것도 이러한 추측을 가능케 한다.
김 총재의 단식결정이 어떤 형태로 귀결될지와 소기의 성과를 거둘지는 아직은 미지수이다. 평민당내에도 공개석상에서 김 총재의 단식투쟁이 광범위한 여론의 공감대를 형성해 소기의 성과를 얻어내기 어렵다(이해찬 의원의 의총발언)는 견해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실정이며 이러한 견해는 갈수록 세를 얻어낼 가능성도 적지 않다.
김 총재가 단식을 풀자면 지자제 실시에 대한 여권의 결단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지금 상태에서는 이를 기대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김 총재가 아직도 완벽하게 행사하고 있는 평민당과 지지기반에 대한 장악력은 김 총재의 단식 결정이 지니고 있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충분히 예고하고 있어 정국은 서서히 활화산대에 접근해 가고 있는 느낌이다.<이병규 기자>이병규>
○여권
여권은 김대중 평민 총재가 「단식」이란 초강수로 배수진을 치며 대여 전면전의 태세를 취하고 나오자 김 총재의 「계산」을 저울질하며 대책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보안사 사찰파문 등의 여파로 8일의 김총재 회견이 강성기조를 띨 것이라고 어느 정도 예견됐지만 아울러 등원에 대한 시사도 함께 담길 것을 기대했던 게 사실. 이날 보안사 사찰관련,문책인사를 서둘러 단행한 것도 평민의 강수에 대한 맞불작전의 성격이 짙다는 지적인데 결국 김 총재가 극약처방을 선택하자 허를 찔린 듯한 당황감마저 느끼고 있다.
김 총재 회견 후 열린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민자당 대표의 청와대 회동도 일단 「선 등원 후 협상」이란 종전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데 그쳐 문제를 보는 여권의 시각이 정리되지 않은 인상이다.
회동에서 두 사람은 『국내외 상황이 단식과 같은 극한 투쟁을 선택해야 할 시점인지 의문』이라며 유감을 표시하고 『단식이 오히려 정치ㆍ사회불안을 증폭시킬 우려가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어 두 사람은 『지자제든 내각제든 평민이 제기한 문제는 국회에서 여야의 협상 및 대화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입장아래 『앞으로 최대한의 설득과 대화를 계속,정국 수습방안을 마련한다』며 선 등원을 재촉구했다.
이처럼 당수뇌부의 1차적 대응이 우려와 유감표명 수준에 머문 것은 김 총재의 행보가 예상궤도를 벗어난 탓도 있지만 아울러 김 총재가 노리는 목표를 분명히 읽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풀어 말해 김 총재가 내각제 포기선언과 지자제 전면실시를 재차 요구한 것은 두 조건을 이른바 92년 대권접근의 수단으로 삼고 있음을 명백히했다는 얘기다.
또한 김 총재가 『한때의 충동이나 일부 여론에 밀려 경솔한 등원은 않겠다』고 한 대목은 나름대로 등원거부의 손익계산을 끝낸 결론으로 시간이 갈수록 정국파행의 책임이 여권에 쏠릴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했다고 보고 있다.
김 총재의 단식엔 이같은 배경과 함께 등원의 장기화에 따른 당내 반발,야권통합의 부진 등 김 총재의 야권내 리더십을 위협할 수 있는 요인들을 일거에 불식시킨다는 뜻도 담겨 있다는 게 여권의 시각.
때문에 여권은 섣부른 대응을 할 경우 김 대표의 수에 말려들 수 있고 특히 등원조건을 대권문제와 결부시킨 이상 이에 대한 대처도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노 대통령과 김 대표 회동결과는 정국운영 방안을 3가지로 정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선 김 총재가 「원칙없는 등원」은 있을 수 없다며 단식을 택했다고 해서 평민에 끌려다니는 「원칙없는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첫째. 평민이 등원할 경우 내각제와 지자제에 대한 정치적 이견절충에서 최대한의 협상카드를 제시할 수 있으나 중요한 정치적 이해,나아가 정권적 이해가 얽힌 문제를 등원과 「바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여권은 이런 관점에서 평민과의 대화채널을 열어 놓고 예산 등 민생ㆍ쟁점법안처리 시한의 한계선까지 평민을 기다리겠다는 양면전략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노 대통령이 김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의 결속과 일사불란한 당기강 확립을 강조한 데서 보듯 대야,대국민 전열을 강화하겠다는 것. 김 총재가 단식으로 대여 공세의 최대효과를 겨냥한 이상 정치적 파장이 엄청날 수밖에 없고 이에 대응하는 민자당의 태세도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같은 강성기조와 함께 여권이 정국의 단독 또는 일방운영이란 말을 「아끼고」 있는 것은 관심의 대목.
현재론 여야의 대치상태가 해소될 전망이 불투명하지만 김 총재의 요구조건의 「최후통첩」인지의 여부는 좀더 두고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민자당관계자는 『김 총재가 정치적 문제를 초정치적으로 해결하겠다는 태도를 분명히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당분간 냉각기를 갖되 여야 의견을 접근시킬 수 있는 방법이 모색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당지도부가 「국민과 야당이 반대하는 개헌은 않겠다」고 거듭 밝혀온 이상 크게 문제될 것 없다』며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관련,여야의 입장이 현격히 대립돼 있다면 피차 안을 국민에게 물어보는 방법도 고려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반면 김 총재의 극약 정국처방은 민자 내부의 갈등을 겨냥한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견해가 많다. 노 대통령이 당과 정부의 기강확립을 어느 때보다 강하게 주문했지만 당내 여러 세력간의 권력적 이해는 여전히 조성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김 총재 단식에 따른 정국경색과 후유증이 장기화될 경우 그 파장은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 전반을 뒤흔들 것이라는 관측인 것이다.<이유식 기자>이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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