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가입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외형상으로나마 변화의 기미를 보이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지금까지 남북한의 동시 또는 개별가입을 영구분단의 고착화라고 비난해온 북한이 「단일의석에 의한 공동가입안이 절대적이라고 간주하지 않는다」고 유엔에 밝힌 것이다. 이것이 북한의 진심이고 또 뒤늦게 단일의석 가입의 불합리성을 자각한 데서 나온 대유엔정책의 수정이라면 지극히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그러나 유엔가입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5일 판문점에서 두번째로 열린 실무접촉에서 북한이 보인 완강한 태도를 보면 앞서 유엔 안보리에 제출한 북한의 입장 수정가능성의 진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판문점 접촉에서 북한은 동시가입을 분단고착의 합법화기도이자 민족문제를 외세에 의존하려는 반민족적 행위라면서 예의 단일의석에 의한 공동가입안을 거듭 주장하는 2중성을 다시한번 보여준 것이다.
유엔가입에 관한 북한의 이같은 더블플레이는 왜 나오고 있을까. 우선 유엔쪽에 정책수정을 시사한 것은 한반도문제가 20여년 만에 크게 부각됐던 금년 유엔총회에서 자신들의 단일의석가입안을 지지한 국가가 거의 없다는 점을 의식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기조연설을 한 1백5개국중 71개국이 한반도의 평화문제를 언급했고,특히 48개국이 한국의 동시 또는 개별가입안을 지지했던 것이다.
다음으로 한소 수교합의 후 마지막으로 믿었던 중국 역시 아시안게임 뒤 대한 접근의사를 표명하면서 국제적 대세를 수용할 것을 충고한 것도 커다란 자극으로 받아들였을 게 분명하다. 이와 함께 단일의석 가입을 수정할 듯이 비친 뒤 앞으로 총리회담에서 남북한이 이 문제를 매듭지을 것으로 인식시켜 시간을 벌겠다는 계산으로 관측할 수도 있다.
우리는 여기서 북한에 대해 세기적인 대변화의 시대에 국제적 현실을 냉엄하게 직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오늘날 어느 나라도 이념이나 혁명적 방법으로 인접국을 제압 또는 접수한다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탈피하지 않는 한 결코 존립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금은 대화해와 공존의 시대이다. 따라서 유엔동시 또는 개별가입정책은 결코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것이 아니며 남북한이 당당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세계평화에 대해 기여하고 함께 번영하자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관련,주변강대국과 남북한간의 교차승인을 분단의 영속화를 꾀하는 것이라고 못박고 바로 어제 노동신문은 한소 수교를 통일에 역행하는 행위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그렇다면 일본과의 수교에 합의한 것은 무엇이라고 설명할 것인가. 대일 수교추진은 명백한 교차승인임에도 분단의 영구화가 아니라 북한의 대외정책 노선에 부합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어불성설이다.
한편 정부는 한소 수교,한중 접근 등으로 북방정책이 잇달아 성공하고 있는 올해를 유엔가입의 호기로 여기고 있는 듯싶다. 그렇다고 해서 단독가입을 서둘러서는 안된다고 본다. 적어도 금년 유엔총회기간중에는 가입안의 제출을 자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북한이 어려운 입장에 있다고 해서 서두를 일이 아니라 계속 설득하고 또 여건을 더욱 탄탄하게 조성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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