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외교 결실이자 도전의 시작/대미안보ㆍ경제등 변화불가피/북 개방 소 협조 본격요청할 듯/KAL기사건등 과거매듭ㆍ냉철한 경협접근 숙제한소간의 역사적인 국교정상화는 신데탕트로 요약되는 세계질서의 재편조류가 마침내 한반도를 위시한 동북아에까지 밀려왔음을 웅변으로 실증하는 사례이다.
동시에 한반도의 위상을 국제무대의 전면에 부상시키고 한반도를 축으로 한 주변국가에 대해 정치ㆍ외교적 파급효과를 엄청나게 증폭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준 셈이다.
결국 한소 수교는 양자간의 관계재정립만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동북아질서의 궁극적인 재편을 뿌리내리는 전환점으로 인식돼야 마땅할 것 같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기존의 한미동맹관계,즉 미국과의 「블록체제」를 스스로 흔들 수밖에 없는 부담을 떠안게 됐다.
미국이 한소 수교에 어떤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관계없이 지난 수십년간 지속돼온 미국과의 안보협력 및 정치,경제,외교적 측면에 대해 우리는 새로운 모색에 착수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더이상 한국은 미국의 「종속변수」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독립변수로서의 독자적인 틀을 서둘러 마련해야 하는 과제와 맞닥뜨린 것이다.
따라서 한소 수교는 자주와 주체를 확보하게 된 우리외교의 성공적 결실인 동시에 커다란 도전의 시작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같은 외교적 결과 역시 어차피 우리가 추구해온 북방정책의 시간표에 포함돼 있었던 만큼 결국 국제사회에서의 동등하고 공식적인 입장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할 후속조치에 우선적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한소 양국은 국교정상화를 위한 공동코뮈니케에 서명,공식관계의 시작을 공표한 데 이어 노태우대통령의 방소를 통한 정상회담에서 양국관계의 순항을 위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확정짓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소 수교의 급속한 추진이 가능했던 배경으로 알려진 경협문제에서부터 한반도에서의 궁극적 탈냉전을 도출해내기 위한 협력방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의견교환이 이루어짐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맞은 양국관계의 현실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우선 경협문제의 경우 투자보장협정 및 2중과세방지협정 등의 안전보장책은 이달 중순께 소련정부 대표단의 방한으로 매듭지어질 것이기 때문에 모스크바 정상회담에서는 그다지 비중있는 의제가 되진 않을 것 같다.
때문에 우리측은 소련에 대해 한반도의 문제,즉 남북관계의 획기적 전환을 위한 소련측의 협조를 선결과제로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
한소 수교가 장기적으로는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해 커다란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이지만 단기적으로는 남북대화의 진전된 분위기에 역기능을 초래할 수도 있는 측면이 있어 우리로서는 이점을 제일먼저 경계해야 될 것 같다.
이는 다시말해 한반도에서의 평화무드 지속을 위한 안전장치를 담보받는 동시에 남북관계의 전도와 관련해 우리가 취해야할 이니셔티브의 정당성을 소련측에 설명하는 일이다.
유엔 가입문제 및 남북한 군비통제,평화협정 체결 등 현재 남북간에 논의되고 있는 주요현안들에 대해 원만한 타결을 위한 소련측의 조력이 우선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소 수교는 결과적으로 소련과 북한의 관계를 당장은 어색한 분위기로 만들어 놓았지만 소련의 대북영향력은 계속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소련카드를 통해 「대북외압」을 어느 정도 꾀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일ㆍ북한관계개선이 전격적으로 진행되는 상황까지를 감안하면 소련카드의 적절한 활용은 매우 긴요한 것임에 틀림없다. 한중 관계개선의 촉진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이며 한소 수교는 이를 위한 긍정적 변수로 작용될 것이 확실시된다.
이밖에 소련과의 수교를 기점으로 양국 관계가 선린우호관계로 발전되기 위해서는 「과거사의 정리」 문제 또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벌써부터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언급돼야 할 항목으로 제기되고 있는것 중 하나가 바로 KAL기 격추사건에 대한 소련측의 유감표시문제다. 양국의 새로운 관계를 국민적인 공감과 합의로써 출발시키기 위해 우리측은 이 문제에 대한 정리과정을 거쳐야하며 이는 소련을 위해서도 소망스럽다는 점을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 경협문제역시 호혜적인 차원의 냉철한 접근이 요망되고 있다.
경제협력을 위한 파트너십을 우선 확인해야하며 일방적인 경제지원이 가능할만큼 우리가 소련에 비쳐졌다면 그 자체가 허상이란 점을 인식시켜줘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중급소비재의 새로운 시장으로 대소 활로를 개척한다든지 우주항공ㆍ유전자공학 등 소련의 첨단기술과 이론을 우리의 제품생산능력과 접목시키는 방안 등도 긍정적인 동반자관계를 위해 매우 구체적으로 협의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소 수교로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보다 탄탄한 지위를 확보하게 됐지만 이의 적절한 운영여하에 따라 그 지위의 유지가 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하자는 것이다.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내고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도모하자는 게 우리의 북방정책이라고 한다면 한소 수교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향한 험로의 첫번째 관문통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정진석 기자>정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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