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노력의 결실… 주변국 충격/북,큰 혼란… 대남정책 근본 수정 불가피/「소 추월」 의식 중국,대한접근 속보 예상한소 수교는 한반도 주변의 거대한 지각변동을 단적으로 가시화한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한반도 분단과 6ㆍ25전쟁의 한 당사자로 지난 48년간 적대시해온 소련과 외교관계를 맺었다는 사실 자체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음을 실증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구체적으로는 북방외교의 종착점,즉 중소를 통해 북한을 개방사회로 끌어낸다는 최종 목표에 우리가 거의 도달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향한 「거보」가 내디뎌졌음을 뜻한다.
한소 양국간 수교는 북한을 비롯 중국,일본 등 주변 국가들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양국간에는 이미 관계개선을 위한 분위기가 어느 정도 성숙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나 수교가 예상보다 빨리 이루어진 데다 수교 자체가 갖는 정치적 의미가 심대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일단 45년간 동맹관계를 맺어온 소련이 해방의 대상일 뿐 실체로서 인정치 않던 한국을 국가로 인정했다는 사실에 감정적 충격과 체제논리의 모순에 빠지게 됐다. 즉 한반도에는 정통성 있는 국가가 스스로밖에 없다고 주장해온 북한은 최대 동맹국인 소련과 한국의 수교로 인해 그동안 체제를 유지케해온 「하나의 조선」 논리의 근간을 위협받게 된 것이다.
또한 북한은 폐쇄정책으로 인한 외교적 고립감을 상대적으로 더욱 느끼게 됐으며 이는 최근의 경제난과 함께 체제 유지에 대한 불안감으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북한은 최근 들어 한소 관계 급진전에 대한 맹비난과 더불어 외교적 돌파구를 열기 위해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적극 모색하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이러한 논리적 혼돈과 서방과의 관계개선 움직임은 결과적으로 북한을 개방사회로 유도하는 한편 교차승인 효과를 통해 「하나의 조선」 논리 등 기존 대남정책의 근본적 수정을 강제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소 양국 외무장관이 30일 회담에서 『한소 관계개선이 한반도 평화정착 및 동북아ㆍ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은 한소 수교에 대해 북한 다음으로 충격을 받은 나라일 것으로 생각된다. 정치대국을 자임해온 중국은 6ㆍ4 천안문사태 이후 국제무대에서 발언권이 약화된 이래 한소 수교로 동북아에서의 주도적 영향력마저 상실하게 될 것을 우려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의 실질관계 개선을 이미 80년대초부터 시작해왔으며 현재도 양적인 측면에서 소련보다 많은 실질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은 따라서 소련에 한없이 추월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게 외교관계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국은 북경아시안게임과 일ㆍ북한간 관계개선 움직임 등 한중 관계개선에 대한 잇단 긍정적 변수발생의 와중에 한소 수교를 맞게 됨에 따라 한중 관계개선의 보폭을 신속히 넓혀갈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도 이번 한소 수교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경제뿐 아니라 정치적 강대국으로의 부상도 계획하고 있는 일본으로선 북방 4개 도서문제로 대소경협 등 소련과의 실질관계가 답보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북방정책이 가속적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에 깊은 자극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샌프란시스코 한소정상회담 개최를 뒤늦게 통보해준 데 대한 불쾌감이나 최근의 일ㆍ북한 접근속도 등은 급속한 한소 관계개선에 대한 일본의 반응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한소 관계정상화에 지지를 표시해온만큼 환영의 반응을 보이고 있으나 한소 관계정상화에 따른 향후 한소 관계의 위상 변화에 적잖은 신경을 쓸 것이 예상된다. 특히 소련이 남ㆍ북한 군축논의 등 동북아지역에서의 군축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경우 태평양함대의 감축가능성이나 소련의 동북아지역 집단안보체제 구성 주장 등에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는 미국은 균형 있는 한소 관계를 우리측에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한반도 주변정세에 중대한 상황변수로 작용할 한소 수교가 당초 예상보다 빨리 이뤄진 배경에는 소련의 탈냉전사고 및 내부 경제난의 가속과 우리의 적극적인 대소 수교 노력이 맞아 떨어진 측면이 있다.
유엔의 외교관계자들은 소련이 이번 유엔총회 기조연설 등에서 미국보다도 더 앞서간 「탈냉전」의 시각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한다. 소련은 이러한 탈냉전과 화해의 외교정책 아래 한국과의 수교도 어떠한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와의 수교합의 직전에 이스라엘과 수교협상을 한 것도 이같은 사실을 반증한다.
우리측은 지난 9월4일 소련으로부터 한소 외무장관회담 개최의사를 통고받은 뒤 모든 외교경로를 통해 이번 회담을 수교합의로 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여기에 「즉시 수교」라는 노태우 대통령의 지침을 받은 최호중 외무장관 등 수교협상팀의 끈질긴 대소 설득은 이번 외무장관회담을 일정기간 후 발효되는 수교합의가 아니라 즉시 수교로 골인하는 역할을 했다.
이제 한소 양국은 이날 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양국 정상의 교환방문을 통해 관계증진의 틀을 더욱 확고히 하게 될 것이다.
다만 우리측은 앞으로 추진해야 할 대소경협과 국제정세 급변에 따른 미 일 등 우방과의 관계변화 등에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함으로써 한소 수교를 국가발전에 순기능적인 요소로 작용케 하느냐 하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정광철 특파원>정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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