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소수교 역사적 의미73년의 「6ㆍ23 외교정책선언」과 88년의 올림픽을 거치면서 우리가 꾸준히 추구해온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이 이제 한소간의 수교로써 그 실을 거두게 되었다. 이것은 미국을 위시한 전통적인 우방의 협력과 우리의 국력을 바탕으로 끈질기게 노력한 결과라고 하겠다.
오늘의 한소 수교를 단순한 역사의 변화로 생각할 수는 없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고 강자가 역사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역사의 변화를 우리의 기회로 살릴 수 있을만큼 자주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했더라면 이 변화하는 역사가 우리편에 설 수 있도록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외교적 승리는 과거 20여년간의 민족적 노력의 결과였다고 자부하고도 남을 일이다.
돌이켜보면 1백여년전 한말의 궁정외교에서 러시아제국의 힘을 빌려 청일의 횡포를 막아보려 한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대영제국은 신경을 곤두세웠고 급기야 일본을 부추겨 러시아와 전쟁을 하게 하였고 그 결과 일본이 한반도를 차지하는 것을 지원하였다. 이때는 한민족이 러시아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제2차대전 후 공산주의국가 소련은 미국과 한반도를 분할점령하였고 50년에는 김일성을 시켜 우리민족이 최대의 시련을 겪게 하였다. KAL기의 참변도 아직 기억에 새롭다.
이러한 모든 일들이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나고 한소 양국은 새로운 앞날을 향해 각기 바쁜 걸음으로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은 한국과의 수교없이 아시아의 평화구조를 만들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한다. 그것은 정곡을 찌른 말이다.
제2차대전 후 소련은 미국의 애매한 정책실기의 시기를 틈타 한반도를 소련권으로 만들 시도를 했다가 유엔군에 의해 저지되었는데 바로 그 유엔안보리 의장실에서 한소수교가 이루어지게 되었으니 감회가 없을 수 없을 것이다.
이때 이래 아시아에서는 한반도문제가 동서냉전의 가장 큰 문제였다. 한반도분단과 동서대결의 책임국인 소련이 그들 강국정치의 희생이었던 한국과 수교를 하게 되었으니 이제 이 지역에서 냉전시대는 정식으로 끝난 셈이다. 그런데 남은 문제가 있다. 그것은 북한과 일소관계이다.
북한은 스탈린시대의 마지막 남은 체제이다. 소련은 북한이 시대의변화에 응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한국과 수교하면서 북과의 관계를 지속시키고 있으며 지난 7월 그들의 동맹관계를 자동연장시키면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한편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의 고집스런 북방영토 정책때문에 소련은 일본을 제치고 한국과 먼저 수교를 서둘렀다. 전쟁이 끝난지 45년이 지나면서도 강화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일소관계이다.
이러한 소련의 정책에 반발이라도 하듯이 북한과 일본은 국교수립을 시도하고 있는 것 같다. 71년 미 중공의 관계개선 움직임이 보이자 친구미국이던 인도가 중공과의 대립때문에 소련에 기울어져 오늘까지 인소간 동맹조약이 유효한 상태로 있다. 오늘날 일 북한이 인도와 비슷한 외교술수를 부릴 가능성은 없다고 보고 싶다. 우리가 소련과의 수교를 실천에 옮김에 있어 명심해야 할 일은 강대국의 이해대립을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유럽외교에서 터키가,아시아에서는 청국이 서투르게 강대국의 대립관계를 이용하려다 망한 예를 보아왔다.
우리는 미국을 위시한 전통적인 우방국과의 관계를 외교의 바탕으로 해서 우리의 능력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우리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수교국 소련과 성실한 자세로 협력에 임해야할 것이다. 소련은 분명히 70년의 실패한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이 태어나야 하는 사정에 있다. 이것은 크게는 세계사를 위해,작게는 우리에게 다행한 일이기 때문에 여기에 협력할 수 있다면 과감히 뛰어들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편 소련은 아직 군사력으로써 이 지역의 강대국의 지위를 고수하고 있다는 면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유럽에서는 독일의 통일로 소련의 군사력은 정치적 의미를 상실했다고 하겠다.
그러나 소련은 아시아에서는 한국과의 수교가 페레스트로이카 운동에 따르는 최초의 변화를 실증한 것이라 하겠다. 물론 89년 5월 고르바초프가 중국을 소련 지도자로서는 30년만에 방문해 그들간의 기본문제는 해결하였다. 그러나 긴 국경과 정치변동에 대한 태도의 면에서 그렇게 깨끗한 관계도 아니다. 캄푸치아 문제에서도 최근 양국간 큰 진전이 있기는 하나 아직 완결된 것은 아니다.
여하튼 소련의 아시아에서의 새로운 정책에 따른 첫 작품이 한국과의 수교이다. 우리로서도 어떻게 보면 이것은 외교에 있어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다.
이러한 새로운 역사가 국민적인 경사로 되게하기 위해 정부는 이제 정부간의 수교가 국민간의 수교로 결실을 맺어 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소수교를 경하해 마지 않는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