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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크로 풀면­./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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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크로 풀면­./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0.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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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람들은 조크를 좋아한다. 조크 책도 많다. 내트ㆍ슈마로위츠라는 미국의 호사가 한 사람이 모은 고금의 조크 책이 자그마치 1만7천권이나 된다. 이 책들은 지금 샌프란시스코 공립도서관 조크문고가 소장하고 있다.일본사람들은 조크를 좋아 하지는 않지만,조크로 장사할 줄을 안다. 일본의 어떤 출판사는 서양의 조크들을 문고판 시리즈로 엮어,장기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냈다. 한 10년 걸려 그 시리즈는 18권이나 나왔고,나오는 책마다 판을 거듭하고 있다. 비록 문고판이라고는 하나,여기 실린 조크는,한책에 4백∼5백건,지금까지 나온 18권을 통틀면 조히 1만건에 가깝다. 이들을 남과여,정치등으로 분류해 권별로 수록하고,권말에 그럴싸한 해설까지 곁들인 것이다. 과연 일본 출판사답다. 그만한 품을 들여서 돈을 번다는 뜻도 된다.

나는 심심파적으로,이따금 이 조크 책들을 뒤적인다. 10분,20분의 자투리 시간을 보내기에 알맞다. 그러다가,그 많은 조크중에,우리나라에 관계된 조크는 꼭 2건뿐임을 발견했다. 이런 내용이다.

­선생님이 물었다.

『인디언들은 아시아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인종이라고 한다. 그 증거는?』

존이 대답했다.

『작년에 저는 콜로라도주의 인디언 거류지역을 여행했습니다. 그 곳 기념품 가게에서 인디언인형을 샀는데,돌아와서 보니까,「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기자들이 북한의 김일성을 만났다. 집무실 책상위에 전화기 여러대가 놓인 것을 보고 기자들은 어디 쓰는 전화냐고 물었다. 김일성이 대답했다.

『이 전화는 베이징,이 전화는 모스크바,이 전화는 아바나(쿠바),이 전화는 트리폴리(리비아)직통이지』

『그럼 서울 직통은 없습니까』

『아,서울? 그 쪽은 확성기를 쓰지』

별로 수작이라고 할만한 조크들은 아니지만,밖에 비친 한반도 남과 북의 이미지를 제법 잘 드러내고 있다.

첫번째 조크의 「코리아」는 물론 수출깨나 한다는 남한이다. 우리들 사이에서도 모처럼 외국여행에서 사입은 와이샤쓰가 알고보니 「메이드 인 코리아」더라는 말을 들을 수가 있다.

두번째 조크는 한반도의 긴장된 분단상태,북한의 공격적인 자세와 고립을 꼬집고 있다. 거기 나열된 나라들은 모두가 북한과 동맹조약(우호협력 상호원조조약)을 맺고 있는 나라들이다. 조크의 작자는 상당한 정보통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조크들은 아무래도 나온지가 오래된 것들 같다. 지금의 한반도 형세에는 꼭 들어맞지를 않는 것이다. 이 며칠 사이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에 비추어 본다면 이들 조크가 「옛말」이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우리의 북방정책이 지금처럼 쾌속진행된다면,아마 인디언 인형의 조크를 들먹이던 사람들은,조만간 러시아를 상징하는 관광기념품 마트료슈카 인형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딱지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고르바초프의 블라디보스토크 연설이 강조한 대로,소련은 아시아ㆍ태평양 국가임에 틀림없다는 새로운 조크가 나옴직도 한 것이다.

앞 두번째 조크의 전화배선도 이 며칠 사이 크게 바뀔 형세를 보이고 있다. 한소 관계 진전에 항의하여,지난주 북한이 발표한 대소 비망록은 평양­모스크바 직통전화의 성능이 크게 떨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한소 수교가 됐다고 해서,그 전화선이 끊어지지야 않겠지만,앞으로의 통화가 전과 같지 못할 것만은 분명하다. 대신 김일성 책상위에 평양­도쿄간 직통전화가 새로 놓일 것이란 소식이 어제 오늘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그렇다면 평양­서울간 확성기는 어떻게 될까? 이 결말에,「김일성과 직통전화」조크의 수명이 달렸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조크의 세계는 현실의 세계 못지 않게 바쁘다. 세상 달라짐을 따라 조크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현실을 반영하고 꼬집어,웃음을 자아내는 조크의 한 속성인 것이다. 그렇다면 작금 한반도에 일고 있는 지각 변동은 어떨까.

조크에는 여러가지 형식이 있다. 앞에 든 두 조크처럼,의문을 제기하고 해답을 내놓는 것이 그중의 하나다. 이번 지각변동에는 워낙 의문이 많기 때문에,그 해답을 잘 찾아보면,새로운 조크를 탄생시킬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예컨대 이런 의문들이다.

­북한은 대소 비망록과 김일성ㆍ가네마루 회담을 통하여 줄곧 「하나의 조선」을 주장해 왔다. 가네마루와 만나서 당대 당의 관계만을 말하던 김일성은,떠나던 손님을 불러세우고,느닷없이 대일 수교를 제안했다고 한다. 몇시간 사이에 그런 변신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 속셈은 무엇인가.

­북한의 변신이 이미 일본에 통고되었을 즈음해서,우리 정부는 「국교전 배상」과 일ㆍ북한의 과속접근을 서둘러 항의했다. 아무래도 시간의 핀트가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7ㆍ7 선언을 모양새 좋게 내놓았던 우리 정부가,남북총리회담과 북한의 대일 접근이라는 시나리오를 미리 상정해본 적이 없는 것일까. 북방정책이 나오면 남방정책이 나오리란 생각은 아니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중 첫번째 의문은 카멜레온을 등장시켜 풀면 훌륭한 동물조크가 될지도 모른다. 두번째 의문 역시 좀 멍청한 동물을 등장시키면 좋은 조크 소재가 될 듯하다. 내 생각에 그에 알맞는 동물은 나귀­여마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이번 대변동의 가장 큰 의문점은 일ㆍ북한의 급속한 접근이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냐다. 그 해답은 10월16일 남북총리의 평양회담을 기다려서야 얻어진다. 현명한 조크작가라면,그때까지 모든 해답을 미룰 것이 틀림없다. 특히 그가 한국인이라면,조크의 웃음보다는 미심쩍은 생각이 더 앞설 것이기 때문이다.<상임고문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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