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문가들 사이에는 논쟁거리가 없어졌다고 한다. 페만사태에다 수재까지 겹쳐서 뭐라고 시비를 붙일 계제가 되지 못한다는 분위기다. 덕분에 경제각료들만 속 편하게 됐다고 가시돋친 농담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가도 좋은 핑계거리가 생겼고 수출이나 경기도 둘러대기 좋은 변명거리가 생겼다는 얘기들이다. 수해복구에 정신들이 없고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는 페만사태 때문에 모두들 불안해 하고 있는 판국에 네탓이니 내탓이니 하며 입씨름질이나 하고 있는 것이 바람직스럽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먼저 일부터 수습해 놓고 난 다음에 이유를 따져 보는 것이 옳은 태도라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다.이번 수해를 놓고 일부에서 제기된 인재냐 천재냐 하는 논쟁이 널리 확산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일 수습을 앞세우는 우리사회의 오랜 관습 때문일 것이다.
물가불안에다가 수출부진 생산위축 폭락증시와 중소기업들의 연쇄부도 우려 등 어느모로 보나 우리 경제는 어려운 모습이다. 불과 6개월여 전,조순 전부총리 때 같았으면 벌써 난리들이 났을 것이다. 조순 전부총리는 사실 인재론에 몰려서 자리를 물러났다고 할 수 있다. 실기에다 오판에다 거듭된 정책실패로 경제를 망쳤다며 요란한 여론의 질책을 받은 끝에 자리를 그만두게된 것이다. 지금와서 따져보면 억울한 일일 수도 있다. 이렇다 할 좋은 핑계거리가 없었던 것이 불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조순 전부총리 때나 지금이나 따지고 보면 안팎의 경제여건이 크게 달라진 것도 없다. 페만사태로 유가가 오른다고 하지만 10년동안이나 생돈을 갹출해서 수조원의 기금을 쌓아둔 것이 있고 수해도 연례행사처럼 겪어왔던 것이다. 또 설령 올해 수해가 유별나고 페만사태가 대처불능의 돌발변수라고 하더라도 이 두가지 요인만 없으면 경제가 잘 돌아가게 되느냐 하면 반드시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조순 전부총리때 보다 최근 6개월동안에 오히려 더 정책의 실기와 오판,갈팡질팡이 많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때 분위기라면 지금 경제팀도 조순 전부총리때와 마찬가지로 인재론에 몰려 곤욕을 치러야 할 상황이다.
『일을 당했을 때 시비를 걸지 않는다』는 우리사회의 좋은 전통과 너그러운 인심 때문에 지금은 인재론시비가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어떻든 경제부터 살려놓고 보자는 것이 지금의 분위기다. 인재냐 천재냐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경제를 회생시키는 일에만 전념하자는 분위기인 것이다. 수해와 페만사태가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부와 기업 근로자나 일반 국민들이 심기일전해서 경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합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6개월의 경험을 축적한 이승윤 경제팀의 솜씨가 새롭게 기대를 모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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