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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무의 합리화부터(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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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무의 합리화부터(사설)

입력
1990.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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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모부대에서 1백㎞ 행군 훈련중 낙오한 병사를 고참병이 꾀병을 부린다고 때려 숨지게 한 사고가 발생했다. 「훈련에서 땀을 더 흘리면 전투에서 피를 덜 흘린다」는 오래된 강병주의에서 보면 극기훈련중 일어날 수도 있는 과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군의 민주화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고,이번 10월1일의 건군 42주년 국군의 날 행사를 종래의 위용과시 위주의 형태에서 국민축제 형식으로 전환하려는 큰 흐름과 연결시켜 생가해보면 가볍게 지나칠 일도 아니다.표면상으로는 단순 과실치사라고 할 수 있으나 따지고 보면 「군의 민주화」가 역설하고 있는 구일본군대식의 기합 일소정신에 위배된 사례로 보아지는 것이며,하사관 등 고참병과 하급지휘관 사이에서 특히 만연돼 있는 이같은 기합주의가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은 기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지난 7월9일에는 육군 모부대 방위병 8백여명이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 5시간이나 강행군을 하다가 3명이 졸도 사망한 일도 있었다. 이 사건은 기합의 개념은 아니지만 훈련을 합리적으로 진행시킬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지휘관의 구태의연한 사고구조를 읽게 해주었던 사건이었다.

정부는 이달초 군기확립을 빙자한 구타와 세칭 기합 등 가혹행위를 종식시키고 내무생활에서 사병들을 불필요하게 괴롭히는 각종 신고,점호 등 악습을 시정,병영생활을 긍지있게 영위하도록 하는 구체적 조치를 취하기 위해 군인복무규율 개정안(대통령령)과 병영생활 규정안(국방부 훈령)을 성안,법제처에 넘긴 바 있다.

그러나 제도를 아무리 개선해 보았자 군내부의 높고 낮은 지휘관과 상급자들이 이를 소화해내는 사고전환을 하지 못한다면 모처럼의 새 제도가 유명무실해질 수도 있다.

「군의 민주화」라는 거창한 구호는 군내부에 의해 「군무 합리화」라는 내실있는 변화의 뒷받침을 받을 수 있을 때 점진적이나마 실현가능성이 생기지 않나 생각되는 것이다.

물론 훈련은 실전에서 이기기 위한 준비과정이라는 관점에서 실제상황과 같은 수준의 강도 속에서 엄격한 규율 아래 실시돼야 한다는 원칙에 이의는 없다. 그러나 건강한 병사가 쓰러질 정도의 상황이라면 지휘자는 일단 합리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훈련과정을 재검토해야 할 것이고,낙오자가 생기면 구타할 것이 아니라 위생병에 인계한다든가 하는 구호조치를 먼저 취하는 게 상식일 것이다.

그러한 사소한 일이 몸에 배갈 때 병영생활의 합리적 운영이 체질화 돼 갈 수 있을 것이고 대소부대의 합리적 운영이 체계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단계를 거치면 군의 민주화는 보다 진척이 빠를 것이다. 군의 정치로부터의 중립화도 중요하지만 「군무의 합리화부터 실현하자」는 국민의 요청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자율로 단련된 강병­그것이 90년대 우리 군의 자화상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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