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위원 발언 「김 대표 격하」 포문인가/두 김 정치ㆍ합당불안 신랄 비판/민주계선 발끈ㆍ민정계 “할 말했다” 공감/박 위원 수정원 고둔 채 강행… 진의주목당내 갈등의 내연상태가 오래 계속되는데도 목소리를 의식적으로 낮추어오던 민자당의 박태준 최고위원이 27일 최근 일련의 정치행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표출하고 나서 정가의 주목을 끌고 있다.
박 최고위원은 이날 전남 화순ㆍ곡성 및 장흥지구당 창당대회에 각각 참석,격려사를 통해 정치의 「후진상」을 「패도정치」라고 규정했는데,이는 곧 뿌리깊게 자리 잡아온 「두 김 씨」의 정치문화를 지칭한 것이란 해석을 낳고 있어 발언의 진의와 목적을 놓고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박 최고위원은 『지금까지 우리 정치문화의 선진화를 가로막아온 패도정치를 이젠 변화시켜 나가야만 한다』며 『그 대신 국민이 원하는 것에 눈을 돌리고 국민의 불편과 불안을 덜어줄 수 있는 실물정치 민생정치의 뿌리를 정착시켜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 최고위원은 또 『우리는 일체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거듭날 것을 국민 앞에 약속했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슨 일을 하기 위해 우리당이 창당됐는지에 대한 공통된 인식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해 3당 합당의 계속된 불안정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박 최고위원의 이같은 공개적인 발언이 나오자 「패도정치」의 한 당사자인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의 민주계가 발끈하는가 하면 이에 비해 민정계 쪽에서는 공감의 표정을 굳이 감추지 않고 있어 누적돼온 계파 갈등의 골을 더 한층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박 최고위원의 발언은 특히 바로 전날 김 대표가 중랑갑 지구당 창당대회에서 3당 합당의 당위성을 역설하면서 『노태우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처럼 불행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3인이 합친 것』이라고까지 합당을 옹호한 사실과 다소 대칭된다는 점에서 더욱 미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형국이다.
이에 더해 그는 『이제 우리당은 더이상 모양을 갖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을 할 수 있는 당체제를 갖추기 위해 지혜를 짜내야 한다』고 계파간 나눠먹기식 인사를 겨냥하는가 하면 『국민들의 정치불신은 시대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정치권의 구조적 문제점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현 대통령제 권력구조변경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요컨대 거듭된 정국교착의 원인과,민자당내의 끊이지 않는 파쟁에 대한 평소 불만을 비교적 광범위하게 적시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내용들이다.
이는 특히 김 대표나 김종필 최고위원과는 정치적 지분이나 계파내 위상에 있어 또다른 입장에 놓인 박 최고위원이 두 사람으로부터는 듣기 쉽지 않은 「언어」들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어 박 최고위원이 독자색채의 발색에 본격 나서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강하게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계쪽의 반응이 날카롭게 나오는 것은 그간의 당내 흐름으로 볼 때 「패도정치」 불식론이 세대교체론으로 직결되는 고리일 뿐만 아니라,3당 통합의 조기정착 실패에 대한 책임론 역시 스스로 통합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자임해온 김 대표로 쏠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당연할 수 있다.
김 대표의 막료인 황병태 의원은 『민자당이 어떻게 패권정당이냐』고 반문하고 『박 최고위원의 발언이 김 대표를 겨냥한 것이라면 과두체제인 민자당의 구조를 크게 잘못 파악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서청원 의원 등은 『당내 화합에 저해되는 발언은 삼가야 할 것』이라고 직설적 반격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의 소지는 박 최고위원의 이날 발언파동이 김 대표의 당내 속보에 대해 끊임없이 견제를 가해온,주로 민정계의 분위기를 크게 반영하고 있다는 게 지배적인 지적들이라는 것이다.
최근의 당비 과다사용 문제나,수해지구방문을 둘러싼 잡음,그리고 월계수회를 지목한 것으로 여겨지는 당기강 확립문제에 이르기까지,민정ㆍ민주계의 공방은 표면적인 사소함에 비해 치열한 신경전으로 전개돼온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정계의 「상징」이자 「대표」일 수밖에 없는 박 최고위원이 자신의 연설내용이 담고 있는 인화성을 충분히 상정한 채 발언을 「강행」한 것은 구심체 형성에 있어 타계보에 비해 월등이 불리한 조건을 염두에 둔 장거리 포석으로까지 비쳐지기도 하는 실정.
박 최고위원측은 그러나 그의 발언이 『정치발전을 염원하는 일반론의 표현일 뿐』이라고 확대해석을 견제하며 이에 따른 당내파문을 크게 우려하는 모습이다. 이는 이날의 발언들이 비록 박 최고위원이 합당 이후 갖게 된 나름대로의 정치관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복잡하기만한 당내사정에 비추어 시기상의 무리를 인식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박 최고위원측은 이날 문제 발언들이 파장을 불러올 기미를 보이자 서둘러 표현의 강도를 조절하고 문장전체를 삭제하는 등 사전 진화를 시도했으나 정작 박 최고위원은 수정원고를 둔 채 당초 내용대로 연설을 마쳤다.
이는 바로 민정ㆍ민주계간의 엄존하는,더 나아가 확대가 충분히 예상되는 갈등상을 억지로 덮어둘 이유가 없다는 그의 심중이 개재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내각제 개헌 문제를 포함한 제반 갈등요소들의 해결과정은 적지 않은 마찰음을 필연적으로 수반할 것이라는 전망이다.<조재용 기자>조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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